[대한루마니아인 한국생활] 한국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변했다 외국인이 고향에 돌아가서 들킨 ‘한국식 습관’들
작성일
한국에 오래 살면 말투보다 먼저 습관이 바뀐다. 어느 순간 “어, 응” 하고 리액션하고, 면을 후루룩 먹고, 수프 앞에서 밥을 찾게 된다.

한국에 오래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내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몸이 먼저 적응하고 있었다는 것을. 대화 중 “어, 응”을 반복하고, 면을 후루룩 먹고, 국물 옆에 밥을 찾는 순간 외국인은 자신도 모르게 한국식 생활 습관을 갖게 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말투, 식사 방식, 친구들과 대화하는 분위기, 식탁 위 음식 조합까지 하나하나 새로웠다. 처음에는 “나는 외국인이니까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한국에서 배운 행동들이 나도 모르게 내 몸에 익기 시작한 것이다. 더 신기한 건 한국에 있을 때는 그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고향에 돌아갔을 때, 가족과 친구들의 반응을 통해 깨닫게 된다. “너 왜 자꾸 대화 중에 끼어들어?” “왜 파스타를 그렇게 소리 내서 먹어?” “수프 먹는데 왜 밥을 찾아?” 그때 알았다. 나는 어느새 한국식 습관을 가지고 집에 돌아간 외국인이 되어 있었다.
대화할 때 자꾸 “어, 응”이 나온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몸에 밴 습관 중 하나는 대화 중 반응을 자주 하는 것이다. 한국어로 대화할 때 상대가 말하는 동안 “어”, “응”, “맞아”, “아 진짜?”, “그렇구나” 같은 짧은 반응을 계속 넣는 일이 많다.
처음에는 이것이 단순한 말버릇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내다 보면 이런 반응이 대화를 부드럽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처럼 느껴진다. 상대방에게 “나 듣고 있어”, “계속 말해도 돼”, “네 이야기에 관심 있어”라고 알려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습관을 그대로 루마니아에 가져갔을 때였다.
고향 친구들과 대화하는데, 나도 모르게 계속 “어, 응”처럼 짧은 반응을 넣고 있었다. 나는 그저 열심히 듣고 있다는 뜻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말하는 중간중간 내가 소리를 내니, 마치 계속 끼어드는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결국 한 친구가 말했다. “너 왜 자꾸 말을 끊어?”
그 순간 조금 당황했다. 나는 말을 끊으려던 게 아니라, 오히려 잘 듣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가 다르면 같은 행동도 다르게 해석된다. 한국에서는 적극적인 리액션이 될 수 있는 말이, 루마니아에서는 방해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한국식 ‘경청’이 고향에서는 ‘interrupting’이 됐다 이 경험은 꽤 흥미로웠다. 한국에서 대화를 할 때는 조용히 듣기만 하면 오히려 상대가 “내 얘기에 관심 없나?”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짧은 추임새와 리액션이 자연스럽다. 특히 친구 사이에서는 “어, 응”, “맞아”, “헐”, “진짜?” 같은 말이 대화의 리듬을 만든다.
하지만 루마니아에서는 상대가 말할 때 중간 반응을 너무 자주 넣으면 대화를 방해한다고 느낄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상대가 문장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이 더 자연스럽게 여겨질 때가 많다.
나에게는 이것이 한국 생활이 남긴 첫 번째 흔적이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어와 문법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듣는 방식까지 배우는 일이었다.
한국에 살면서 나는 어느새 한국식으로 듣고 있었다.

면을 후루룩 먹는 습관까지 생겼다
두 번째로 들킨 습관은 면을 먹을 때였다.
한국에서는 라면, 칼국수, 냉면, 잔치국수처럼 면 요리를 먹을 때 후루룩 소리를 내는 것이 크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뜨거운 면을 먹을 때 자연스럽고, 맛있게 먹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나도 면을 조용히 먹으려고 했다. 루마니아에서는 식사 중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예의 없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면을 후루룩 소리 내며 먹는 것은 매너가 좋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라면을 먹고, 국수를 먹고,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후루룩 먹는 모습을 계속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방식에 익숙해졌다. 어느 순간 나도 면을 소리 내어 먹고 있었다.
진짜 문제는 루마니아에 돌아갔을 때 생겼다. 집에서 파스타를 먹는데,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 라면 먹듯 후루룩 먹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엄마가 바로 나를 쳐다봤다. “왜 그렇게 먹어?”
그때 정말 웃음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는데, 루마니아 집 식탁에서는 엄마에게 혼날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라면도 아니고 파스타를 후루룩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웃겼다.

밥 없이 수프를 못 먹는 몸이 됐다
세 번째 변화는 음식 취향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나는 수프를 먹을 때 빵을 곁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루마니아에서는 수프나 국물 요리를 먹을 때 빵을 함께 먹는 경우가 많다. 빵을 찍어 먹거나, 옆에 두고 한 입씩 먹는 방식이 익숙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국물 옆에는 밥이 있어야 한다는 감각이 생겼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설렁탕, 국밥처럼 한국 음식은 국물과 밥이 함께 있을 때 완성되는 느낌이 강하다.
처음에는 그저 한국식 식사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국물 요리를 보면 자동으로 밥이 생각났다.
루마니아에 돌아갔을 때도 그랬다. 엄마가 수프를 만들어줬는데, 나는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밥 있어?” 엄마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루마니아에서는 수프 옆에 빵을 두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데, 내가 밥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또 한 번 깨달았다. 내 식습관도 바뀌었구나.
한국에서 살기 전에는 빵이 더 익숙했지만, 이제는 국물 음식 옆에 밥이 없으면 뭔가 허전하다. 특히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거나, 국물 한 숟가락과 밥 한 숟가락을 번갈아 먹는 방식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한국 생활은 생각보다 몸에 빨리 스며든다
이런 습관들은 일부러 배운 것이 아니었다. “오늘부터 한국식으로 말해야지”, “이제부터 면을 후루룩 먹어야지”, “수프에는 무조건 밥을 먹어야지”라고 결심한 적은 없다. 그냥 매일 한국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들어왔다. 친구들과 대화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에서 라면을 끓이고, 국물 음식을 먹는 과정에서 조금씩 바뀐 것이다.
문화는 생각보다 조용하게 사람을 바꾼다. 처음에는 낯설던 행동이 어느 날 편해지고, 편해진 행동이 어느 순간 나의 습관이 된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갔을 때, 그 습관이 갑자기 눈에 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나는 한국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내 일상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외국인이 한국화됐다는 건 이런 순간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적응했다는 것은 꼭 한국어를 잘하게 됐다는 뜻만은 아니다. 길을 잘 찾고, 지하철을 잘 타고, 김치를 잘 먹는 것만도 아니다.
때로는 훨씬 사소한 순간에 드러난다.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어, 응” 하고 반응할 때, 파스타를 먹다가 무심코 후루룩 소리를 낼 때, 루마니아 수프 앞에서 빵 대신 밥을 찾을 때.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한국 생활이 몸에 남긴 흔적이다. 처음에는 문화 차이 때문에 당황했지만, 이제는 그 변화가 조금 재미있다. 나는 여전히 루마니아 사람이지만, 어느새 내 안에는 한국에서 배운 작은 습관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가끔 고향에서 엄마에게 혼나거나 친구들에게 지적받을 때마다 생각한다. “아, 나 한국에 꽤 오래 살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