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인 내 딸이 병원서 매일 겪는 일을 전합니다” 공포의 태움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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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차 신규 간호사 사연에 네티즌 공분
한 번 알려준 것을 두 번째로 물으면 난리가 난다. 밤마다 공부하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병동을 뛰어도 돌아오는 말은 "배울 의지가 없다. 너랑 일 못 하겠다"다. 첫 직장에 출근한 지 한 달 된 신규 간호사가 매일 겪는 일이라고 한다. 간호사 딸을 둔 한 여성이 온라인 커뮤니티 82쿡에 12일 이 같은 사연을 올렸다.

글쓴이 딸은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병원에 취업해 한 달째 일하고 있다. 글쓴이는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고 병동에서 말 한마디 걸어 주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 번 설명을 듣고 같은 것을 다시 물으면 면박이 돌아오고, 잠을 줄여 공부하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도 일 못 한다는 말만 듣는다고 했다. 같은 시기 다른 병원에 들어간 딸의 친구들은 시달리다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뒀다. 딸은 간호사가 적성에 맞아 평생 하고 싶다면서 "나가라는 소리만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운다고 글쓴이는 전했다.
비슷한 사연이 쏟아졌다. 한 회원은 친구 딸이 집에 와서 욕을 하며 운다고 했고, 만 3년 차 대학병원 간호사를 딸로 둔 한 회원은 "두 달 동안 8㎏이 빠졌다. 오피스텔 계약을 정리하고 그만두라고 했지만 입사 동기가 많아 서로 의지하며 버티고 있다"고 적었다.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그만뒀다는 한 회원은 "지금도 병원만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며 "딸은 병원 근처에서도 일하지 못하게 말린다"고 했다.
엄격함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일부 있었다. 한 회원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 초보 간호사의 실수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데 어찌 웃으며 넘길 수 있겠느냐"고 했다. 반론이 거셌다. "그 갈굼에 신입은 정신을 차리는 게 아니라 있던 정신도 없어지고 머릿속이 백지가 된다"는 반박성 댓글이 나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구조를 짚는 댓글도 많았다. "큰 병동이 아닐수록 시스템이 엉망이고, 끼리끼리 똘똘 뭉쳐 순한 사람을 몰아간다"거나 "같은 간호대 출신끼리 무리 지어 다른 출신을 편견으로 대하고 이간질한다"는 경험담이 이어졌다.
조언과 권유도 줄을 이었다. 한 시간씩 미리 출근해 연습하며 버텼고 익숙해지니 견딜 만해졌다는 경험담과 "무조건 1년만 버티면 일이 보인다"는 격려, "부당한 일은 녹음해서 대응하라"는 현실적 조언, "영어를 익혀 호주나 미국으로 가면 근무 환경이 차원이 다르다"는 권유가 섞였다. 아예 사표를 내고 임용시험을 준비해 국공립 유치원의 보건교사로 옮긴 뒤 "방학도 있고 출퇴근이 정확해졌다"는 회원은 "참지 말고 나오라고 하시라. 사람이 피폐해진다"고 적었다.

간호사 사회의 괴롭힘은 '태움'으로 불린다. 후배의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은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직장 내 괴롭힘이다. 학계에서는 태움의 배경으로 과중한 업무와 높은 노동강도, 만성적 인력 부족, 위계적 조직문화, 짧은 교육 기간을 꼽는다. 본인 업무만으로도 벅찬 선배가 신규를 차분히 가르칠 여건이 안 되는 구조가 괴롭힘으로 번진다는 것이다.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끼니를 거르며 일한다는 호소가 끊이지 않고, 이런 업무 강도는 임신 순번제 같은 또 다른 관행과 맞물려 고질적 문제로 지목돼 왔다.
통계도 현장의 호소를 뒷받침한다. 대한간호협회가 병원간호사회의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사직률(2022년 기준) 57.4%나 된다. 간호사 평균 근무연수는 7년 8개월. 일반 직장인의 15년 2개월에 견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사직 사유로는 '업무 과다와 부적응'이 가장 많이 꼽힌다.
태움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계기는 2018년이었다. 한 대형병원의 신규 간호사가 괴롭힘 등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일이 알려지면서 묵인돼 온 악습이 널리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고, 신규 간호사 교육을 전담하는 교육전담간호사 배치를 의무화한 의료법 개정안이 2024년 5월, 간호사 처우와 업무 범위를 담은 간호법이 지난해 6월 차례로 시행됐다. 정부는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돌보도록 개선하고 신규 간호사에게 1년간 체계적 교육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현장에서는 제도만으로 태움이 사라지긴 어렵다고 본다. 인력 부족과 과중한 업무가 그대로인 한 신규를 가르칠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화의 조짐이 없지는 않다. 한 82쿡 회원은 빅5 병원 수간호사인 지인에게 들었다면서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오히려 윗선이 역태움을 당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고 젊은 간호사들은 참지 않고 녹음까지 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변화가 규모가 작은 병원까지 닿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