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못한 건 맞는데…” 선관위 내부서 나온 하소연

작성일

선관위 직원들 "1명이 투표소 100곳 이상 관리" 업무 과중 호소
몰디브 출장·골프 연습·개인정보 유출 논란에 여론은 싸늘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선거관리위원회 내부에서도 “잘못은 인정하지만 구조적 한계도 봐야 한다”는 취지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선관위 직원들이 내부 게시판에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한 글을 잇따라 올리며 적은 인원과 과도한 업무량을 호소했다고 SBS가 14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 선관위 직원은 지난 5일 내부 게시판에 “선관위가 잘못한 건 인정하더라도 선거 시스템이 과부하된 현 상황은 알려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 직원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살인적 업무량과 적은 인원”을 지목했다.

또 다른 직원도 지난 10일 글을 올려 “1명이 100곳 이상의 투표소를 관리하는데 용지가 부족하다는 연락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면 혼자 처리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단순한 현장 실수만이 아니라 기초 단위 선관위의 인력 부족과 업무 과부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직원 13명이 투표소 146곳 관리”…내부서 나온 호소

실제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던 서울 송파구 선관위의 경우 직원은 13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3~4명 정도가 관할 투표소 146곳의 투표 상황 관리를 맡고 동시에 개표 준비까지 해야 했다는 게 선관위 측 설명이다.

투표소마다 상황을 확인하고 부족한 투표용지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현장 대응이 쉽지 않았다는 취지다. 다른 시군구 단위 선관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게시판에서는 동시선거에서 구·시·군 선관위가 감당해야 하는 업무량과 물류량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직원들은 선거 현장을 관리하는 기초 단위 선관위의 업무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몰디브는 왜 갔나”…해외 출장 논란까지 재점화

다만 선관위 내부의 업무 과중 호소를 바라보는 여론은 곱지만은 않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선관위의 기강 해이 논란이 함께 불거졌기 때문이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선관위가 2023년 몰디브 대통령 선거를 참관하기 위해 7박 9일간 해외 출장을 다녀온 보고서가 다시 주목받았다. 보고서에는 전국 선관위 직원 5명이 2023년 9월 6일부터 몰디브를 방문해 선거사무소 방문, 선거운동 참관, 투·개표 참관, 공식 만찬 등의 일정을 소화한 내용이 담겼다.

출장 목적은 변화된 외국 선거환경 파악과 선거법제 비교 연구였다. 그러나 몰디브가 대표적인 휴양지로 알려진 데다 보고서에 해변과 바다 인근 선거운동 사진 등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중심으로 "세금을 들여 꼭 몰디브까지 갔어야 했느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몰디브 대통령선거 참관 결과보고서' 사진.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몰디브 대통령선거 참관 결과보고서' 사진.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관위는 이에 대해 몰디브 측의 공식 초청을 받아 참관단 자격으로 방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선관위가 총선을 앞둔 시기 30차례 넘는 해외 출장을 다녀온 사실까지 재조명되면서 여론의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재선거를 치른 독일 출장까지 다녀왔음에도 정작 국내 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해외출장 논란 이어 골프 연습·개인정보 유출까지

해외 출장 논란에 이어 지역 선관위의 기강 해이와 개인정보 유출 사고도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대구시선관위 등에 따르면 대구 중구선관위 직원 A 씨는 지난 9일 오후 7시 50분쯤 청사 4층 계단에서 개인 골프채로 스윙 연습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청사 앞에서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시민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선관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된 상황에서 청사 내부 직원이 골프 연습을 하는 장면이 외부에서 촬영돼 SNS로 확산되면서 논란은 빠르게 커졌다.

특히 A 씨가 당일 저녁 3시간의 시간외근무 수당까지 신청한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은 더 거세졌다. A 씨는 자체 조사에서 몇 달 전부터 개인 골프채를 사무실에 가져다 놓고 종종 연습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시선관위는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품위유지 의무와 성실의무 위반 여부를 따져 징계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선관위에 대한 국민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부적절한 처신이 더해지며 내부 기강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대구 중구 선관위 직원 골프 스윙 연습 영상 모습. / SNS 캡처.
대구 중구 선관위 직원 골프 스윙 연습 영상 모습. / SNS 캡처.

개인정보 유출 사고도 있었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선관위에서는 선거공보물 발송 과정에서 유권자 80명의 이름과 주소, 선거인명부 등재번호 등이 담긴 투표안내문 44장이 한 가정집으로 잘못 배송됐다. 해당 안내문은 원래 아파트 44세대에 각각 전달돼야 했지만 한 봉투에 담겨 특정 가정으로 발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선관위는 선거 전 선거공보물 발송 과정에서 누락 세대를 확인하고 추가 발송 작업을 하던 중 이 같은 실수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선관위가 오발송 사실을 즉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선거가 끝난 뒤인 지난 10일에야 잘못 배송된 사실을 확인했고 다음 날인 11일 해당 안내문을 회수했다.

달성군선관위는 이후 피해 유권자들에게 공문을 보내 개인정보 유출 사실과 경위를 안내했다. 선거인명부 정보는 유권자의 이름과 주소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어 선거 관리기관의 부실한 행정 처리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능력에 대한 의문이 커진 상황에서 해외 출장 논란, 청사 내 골프 연습, 개인정보 유출 사고까지 겹치며 조직 전반의 기강 해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직원들은 내부 게시판을 통해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량을 호소하고 있지만 여론은 “기본 관리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국회에서도 선관위 개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여야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 특위 구성에 큰 틀에서 뜻을 모아가고 있다. 감사위원회 설치, 선관위원 연임 제한, 선거철 휴가와 휴직 제한 등 선관위 운영 전반을 손보는 입법 논의도 이어질 전망이다.

유튜브,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