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없다는 것”…한국·대만 찾은 젠슨 황, '이 나라' 건너뛰자 나온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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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이 일본만 건너뛰자…현지서 나온 'AI 패싱' 위기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한국을 방문해 국내 주요 기업 경영진과 연쇄 회동을 하고 미래 테크 산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황 CEO는 고향인 대만과 한국을 차례로 찾으며 파트너십을 공고히 했지만, 정작 일본 방문 일정은 소화하지 않았다.
이에 일본 현지 언론과 정보기술(IT) 산업계에서는 자국의 AI 기술 역량과 글로벌 시장 내 위치를 점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 생태계의 주요 공급망 허브가 한국과 대만을 축으로 견고해지는 가운데, 일본이 향후 핵심 파트너십 논의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도 나오고 있다.

황 CEO는 지난달 말 고향인 대만을 방문해 약 2주 동안 머무르며 현지 제조 인프라 기업들과의 결속을 강화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대만 체류 기간 그는 글로벌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선두 기업인 TSMC를 비롯해 대형 전자기기 제조사 폭스콘 등 핵심 협력 기업의 최고경영진과 만나 잇따라 비즈니스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황 CEO는 대만 지역을 대상으로 연간 1500억 달러(약 227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장기 협력 구상을 공표하기도 했다.
대만 일정을 마친 황 CEO는 이달 초 곧바로 한국으로 이동해 총 4박 5일간의 공식 방한 일정을 이어갔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 저녁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국내 재계 주요 관계자들과 삼겹살을 메뉴로 한 만찬 자리를 갖고 파트너십을 부각했다.
방한 기간 황 CEO는 최태원 회장 외에도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등 대한민국 정보통신기술(ICT) 및 제조업을 대표하는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잇달아 만났다. 이들 회동을 통해 각 기업은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운영 구조와 고성능 반도체 공급망 협력 방안 등 주요 글로벌 비즈니스 현안을 폭넓게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황 CEO는 비즈니스 미팅 외에도 국내 방송사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녹화 현장을 찾거나 프로야구 경기 공식 시구자로 마운드에 오르는 등 대중과 교감하는 일정도 병행했다. 시간을 쪼개 한국 기업 및 대중과의 접점을 넓힌 이러한 행보는 일본 산업계가 자국의 공급망 환경과 AI 산업 경쟁력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을 비롯한 현지 매체들은 황 CEO의 이번 아시아 순방 동선을 연일 상세히 보도하며 자국 산업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닛케이는 14일 보도를 통해 “젠슨 황의 ‘재팬(일본) 패싱’은 일본이 AI 혁명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시사한다”라며 현지 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 언론들의 분석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이끄는 글로벌 AI 하드웨어 생태계는 현재 한국과 대만을 중심으로 견고한 생산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AI 반도체의 전반적인 위탁생산은 대만의 TSMC가 맡고 있으며, 고성능 AI 연산의 핵심 요소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한국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주도적으로 생산해 공급하는 구조다. 엔비디아가 이들 국가의 기업들을 일반 거래처가 아닌 미래 혁신을 함께 도모할 협력 파트너로 보고 공을 들이는 이유도 이러한 공급망 지위와 맞닿아 있다.
반면 일본은 반도체 제조 장비 분야의 도쿄일렉트론과 어드반테스트, 화학 소재 분야의 신에츠화학공업 등 특정 기초 산업 분야에서 강점을 유지하고 있으나, 엔비디아의 핵심 설계 및 생산 가치사슬과 직접 연결되는 고리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진단을 받고 있다. 현재 일본 기업과의 협력 사례는 후지쓰가 진행하는 AI 반도체 개발이나 화낙의 로봇 공학 연계 프로젝트 등 일부 영역에 머무르는 한계를 보인다.
이에 대해 닛케이는 “젠슨 황이 시간을 쪼개 직접 찾아가 협력을 제안할 만큼 매력적인 기업이 지금 일본에 얼마나 있느냐”고 지적하며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일본 정보통신 업계는 황 CEO의 일본 방문 생략이 단지 일정상의 우연이 아니라, AI 전환 국면에서 일본 기업들이 파트너로서의 존재감이 약화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 경제계 전반에서는 자국이 겪는 소외 현상이 단기적인 비즈니스 조율 실패가 아닌 기술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개최된 엔비디아의 연례 기술 콘퍼런스 ‘GTC 2026’에서 발표된 내용은 이러한 격차를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당시 황 CEO는 향후 글로벌 AI 시장의 혁신을 주도할 ‘AI 네이티브 기업’ 103곳의 명단을 전 세계에 공개했다. 해당 명단에는 미국의 오픈AI, 앤트로픽, xAI를 비롯해 유력 기술 기업들이 대거 포함됐다. 유럽의 미스트랄AI와 코히어 등 글로벌 각국의 대표 주자들도 이름을 올렸으나, 일본 기업은 단 한 곳도 포함되지 못했다.
이는 현재 일본 시장 내에 글로벌 무대에서 유의미한 경쟁을 펼칠 만한 자체 초거대 언어모델(LLM) 개발사가 부족하고, 인공지능 분야의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 정도도 미국이나 중국 등 주요국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평가와 맞물린다.
과거 스마트폰 혁명이 전개되던 시기에는 소니, TDK, 무라타제작소, 키옥시아 등 정밀 부품 및 하드웨어 제조 역량을 지닌 일본 기업들이 애플 생태계에 진입해 성장 기회를 확보한 바 있다. 그러나 거대 소프트웨어 인프라와 고도화된 지능형 서비스 모델이 시장을 주도하는 현재의 AI 흐름에서는 과거와 같은 부품 공급 방식만으로 핵심 파트너십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일본 시장을 기술 개발의 동반자라기보다는 자사의 완성된 서비스나 솔루션을 판매하는 일반 소비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현재 일본 IT 업계 전반에서 불안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등 해외 AI 기업들이 일본을 방문하고는 있으나, 이를 공동 개발 목적의 파트너십 구축보다는 판로 확대 및 서비스 판매처 확보 차원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짙다는 진단이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및 디지털 인프라 전반의 대외 의존도 심화는 향후 일본 경제에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글로벌 디지털 서비스 수입 증가세가 지속되면서 발생하는 ‘디지털 적자’ 규모가 오는 2035년에 연간 18조엔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젠슨 황 CEO의 방한 행보를 둘러싸고 일본 주요 언론들이 연일 심층 분석을 쏟아내는 핵심 이유도 이러한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인공지능 산업이 반도체 가치사슬을 넘어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분야로 부상한 가운데, 일본이 글로벌 선도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트너 지위로 도약할 수 있을지, 아니면 해외 기술의 소비 기지로 머물게 될지 향후 흐름이 주목된다.
닛케이는 이와 관련해 “AI 시대 일본이 엔비디아 같은 선도 기업의 고객으로 남을지, 아니면 진정한 파트너로 도약할지는 앞으로 일본 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제언하며 산업계 전반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 필요성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