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난리였는데…선관위, 인쇄 예산 145억 중 82억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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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부족 사태 불거졌지만 예산은 절반만 집행
인쇄 기준 낮추고 계약 단가 제각각…예산 운용 논란 확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인쇄 예산으로 145억 원 넘는 예산을 편성하고도 실제 집행은 82억 원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이 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투표용지 인쇄 예산을 선거인 수의 110% 기준으로 확보하도록 요구했다.
전국 지자체가 이 기준에 맞춰 편성한 투표용지 인쇄 예산은 총 145억 1957만 원이었다. 그러나 실제 집행액은 82억 498만 원에 그쳤다. 편성액의 56.5% 수준이다.
이번 자료는 선관위가 투표용지 인쇄에 필요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 놓고도 실제 인쇄 단계에서는 상당 부분을 집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선관위가 각 지자체에 요구한 기준은 선거인 수보다 10% 많은 물량을 전제로 한 예산 확보였다.
하지만 실제 집행액은 전체 편성액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치면서 예산 산정과 실제 계약 및 인쇄 물량 사이에 큰 괴리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투표용지 인쇄 예산 집행률은 지역별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울산은 90.3%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집행률을 기록했다. 제주 79.2%, 경남 75.2%, 강원 71.7%, 대전 71.1%도 70%를 넘겼다. 반면 세종은 27.2%로 가장 낮았다. 대구는 36.8%, 부산은 46.6%, 인천은 48.2%, 광주는 48.4%로 집계됐다. 서울은 55.0%, 경기는 55.1%로 전국 평균 집행률인 56.5%를 밑돌았다.

예산 확보하고도 절반 수준만 집행
이번 논란의 핵심은 예산 부족이 아니라 확보된 예산이 실제 인쇄 물량으로 충분히 이어졌는지 여부다. 선관위는 선거인 수의 110%를 기준으로 예산을 확보하도록 했지만 실제 집행률은 56.5%에 그쳤다. 일부 지역은 예산의 70~90%대를 집행한 반면 일부 지역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을 보였다. 지역별 예산 편성 기준과 실제 계약 방식이 얼마나 일관되게 관리됐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예산 집행 과정에서는 계약 단가 차이도 드러났다. 선관위가 예산을 편성할 때 적용한 투표용지 인쇄 단가와 실제 계약 과정에서 적용된 단가가 달라지면서 같은 금액으로 인쇄할 수 있는 투표용지 물량이 크게 줄어든 사례가 확인됐다. 단가가 올라가면 예산 총액이 같아도 실제 인쇄 매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는 서울 송파구다. 송파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지역으로 꼽힌다. 자료에 따르면 송파구청장 선거 투표용지 인쇄 단가는 예산 편성 당시 장당 30원으로 적용됐다. 그러나 실제 계약 과정에서는 장당 45원이 적용됐다. 당초 산정 기준보다 50% 높은 금액이다.
송파구청장 선거 투표용지 인쇄에는 총 1272만 원이 집행됐다. 예산 편성 당시 단가인 장당 30원을 기준으로 하면 약 42만 4200장의 투표용지를 인쇄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는 송파구 선거인 수 56만 5368명의 약 75%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 계약 단가가 장당 45원으로 높아지면서 인쇄 물량은 28만 800장에 그쳤다. 같은 집행액이라도 단가 적용 방식에 따라 인쇄 가능한 물량이 14만 장 이상 줄어든 셈이다.
이 대목은 투표용지 부족 논란과 맞물려 특히 주목된다. 선관위는 예산 단계에서는 선거인 수 110% 기준을 적용하도록 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인쇄 비율과 계약 단가에 따라 물량이 달라졌다. 송파구처럼 투표율이 높게 나온 지역에서는 실제 인쇄량이 선거인 수에 비해 부족한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일부 지역에서는 반대로 실제 집행액이 당초 편성액을 넘어선 사례도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청장 선거의 경우 투표용지 인쇄 예산으로 1105만 원을 편성했지만 실제 집행액은 1330만 원이었다. 편성액보다 225만 원이 더 쓰인 것이다. 서울 서초구청장 선거 역시 편성액보다 41만 원을 추가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지역별로 예산 집행률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예산 운용의 일관성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동일한 선거 사무를 두고도 지역별 계약 단가와 집행액이 큰 차이를 보인 만큼 예산 편성 기준과 실제 계약 체결 과정이 적정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 의원은 선관위가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고도 실제 인쇄 물량을 줄였고 지역별 계약 단가와 집행 내역도 들쭉날쭉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 예산 편성과 집행, 계약 체결 과정 전반에 위법한 사항이 없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쇄 기준 낮추고도 부족 대응 매뉴얼 없었다
앞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투표용지 최소 인쇄 기준을 기존 유권자 수의 60%에서 50%로 낮춘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된 바 있다. 국민의힘 김승수·김민전 의원이 중앙선관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는 지난해 12월 10일 별도 공식 회의 없이 사무총장 전결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종합관리지침’을 개정했다. 같은 달 24일에는 선거정책실장 전결로 ‘공직선거 절차 사무편람’도 같은 내용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송파구선관위는 잠실3·4동을 제외한 나머지 25개 동의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50%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송파구 투표율은 65.8%를 기록했다. 서울 평균 63.6%보다 2.2%포인트 높은 수치였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서도 서초·성동·양천구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인쇄 매수 하한 기준을 낮춘 배경으로 사전투표율 증가와 짧은 인쇄 시간에 따른 인쇄소 확보 어려움, 수백만 장에 달하는 투표용지 검수 및 보관 부담, 잔여 투표용지 분실 우려 등을 들었다. 또 선거일 투표율에 비해 과도한 양의 투표용지를 인쇄할 경우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투표용지 부족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대응할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선관위는 선거별 일련번호 기재, 추가 교부 매수 기준, 배부 절차 등이 마련돼 있지 않아 신속한 대응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또 소수 인원이 투표관리, 우편투표 접수, 개표관리 등 여러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면서 사건 발생 직후 보고와 상황 전파도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곳은 전국 91개 투표소로 집계됐다. 서울이 42곳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23곳, 인천 11곳, 대구 4곳, 부산 3곳, 울산·경남·전남 각 2곳, 충북·전북 각 1곳이었다.
부족분은 당초 4726장으로 보고됐으나 이후 선관위가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는 7194장으로 늘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최대 105분간 투표가 중단됐고 송파구 투표소 3곳은 투표 중단 시간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