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규모는 선진국인데…한국 증시에 내려진 의외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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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CI 선진국지수 편입 또 불발…관찰대상국에도 포함되지 않아
외환시장 접근성·투자 편의성 지적…33년째 신흥시장 분류 유지
한국 증시의 오랜 숙원으로 꼽히는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이 올해도 불발됐다. 정부가 외환시장 개방과 투자 환경 개선을 추진해왔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시장 접근성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23일(현지시간) 발표한 연례 시장 분류 검토 결과에서 한국을 기존과 같은 신흥시장(Emerging Market)으로 유지했다.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첫 단계인 관찰대상국(Watch List)에도 한국을 포함하지 않았다. 국내 증권가에서는 올해가 수년 만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한국 증시는 다시 한번 선진국지수 문턱 앞에서 멈춰 섰다.
MSCI 선진국지수, 왜 이렇게 관심이 클까
MSCI는 세계 주요 지수 산출 기관 가운데 하나다. 전 세계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ETF 운용사 상당수가 MSCI 지수를 기준으로 투자 대상을 정한다. 쉽게 말하면 MSCI가 어떤 나라를 선진국 시장으로 분류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자금의 흐름도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갖고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글로벌 기업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MSCI 분류상으로는 여전히 신흥시장에 속한다. 국내 금융투자업계가 선진국지수 편입에 관심을 가져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진국 시장으로 인정받으면 한국 증시를 바라보는 해외 투자자의 시선이 달라지고 장기 투자 성격의 자금 유입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증시는 글로벌 증시가 흔들릴 때 외국인 자금 이탈이 크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금리와 달러 강세, 글로벌 경기 불안 같은 변수가 생기면 국내 증시가 더 큰 폭으로 흔들리는 흐름도 반복됐다. 선진국지수 편입이 이런 구조를 한 번에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한국 시장을 장기 투자 대상으로 보는 자금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와도 맞닿아 있다. 기업 실적이나 경제 규모에 비해 주가가 낮게 평가받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낮은 주주환원과 지배구조 문제, 외국인 투자자의 접근성 문제가 꼽혀왔다. MSCI 선진국지수 편입 논의는 결국 한국 자본시장이 글로벌 기준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경제 규모는 선진국인데 왜 또 탈락했나

MSCI는 국가의 경제 규모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가 해당 시장에 얼마나 쉽게 접근하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지도 주요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외환시장 접근성, 거래와 결제 시스템, 자금 이동의 자유로움, 투자상품 활용 가능성 등이 주요 기준이다.
이번 평가에서도 가장 큰 걸림돌은 외환시장 접근성이었다. MSCI는 한국 시장당국이 오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들을 인정하면서도 투자자들은 근본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도 개선의 방향은 긍정적으로 봤지만 실제 투자 환경이 충분히 달라졌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뜻이다.
핵심은 원화 거래다. 원화는 해외 외환시장에서 실물 인도 방식으로 자유롭게 결제되기 어렵다. 달러나 유로처럼 해외에서 자유롭게 거래하고 결제할 수 있는 통화가 아니라는 점이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국 주식에 투자하려면 주식 매매뿐 아니라 환전과 결제 과정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제약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외환시장 거래 시간을 연장하고 해외 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참여를 허용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섰다. 거래 시간이 야간까지 확대되면서 겉으로는 접근성이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MSCI는 연장된 시간대의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아 글로벌 인덱스펀드 운용사들이 원하는 수준의 외환 운용 유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공매도와 투자 절차도 남은 숙제

외환시장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실제 한국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느끼는 절차적 부담도 함께 언급됐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여러 투자자의 자금을 통합해 운용할 때 활용하는 옴니버스 계좌와 관련한 불편도 여전히 개선 과제로 남아 있다.
공매도 제도 역시 완전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한국은 지난해 3월 이후 공매도를 재개했고 불법 공매도를 막기 위한 감시 체계도 강화했다. 하지만 MSCI는 새롭게 도입된 시장감시규정 체계 아래에서 시장 참가자들이 상당한 운영상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봤다.
MSCI가 보는 핵심은 제도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편하게 활용할 수 있느냐다. 공매도가 재개됐고 외환 거래 시간이 늘었다고 해도 글로벌 투자자가 거래 과정에서 복잡함과 부담을 느낀다면 시장 접근성 개선으로 보기 어렵다. 정부가 발표한 제도 개선이 실제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뢰가 쌓여야 다음 평가에서 달라진 판단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불발이 곧바로 악재는 아니다

다만 이번 결과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선진국지수 편입은 상징성이 크지만 편입 직후 무조건 대규모 자금이 들어오는 구조는 아니다. 한국이 신흥시장지수에서 빠지고 선진국지수로 옮겨가면 기존 신흥시장지수를 추종하던 일부 자금은 이탈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편입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한국 시장의 체질이 얼마나 개선되느냐다. 외환시장 접근성이 좋아지고 투자 절차가 간소화되며 주주환원과 지배구조 개선이 함께 진행되면 한국 증시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질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글로벌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MSCI의 판단 기준은 달랐다. 해외 투자자가 원화를 환전하고 국내 주식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제약이 남아 있다는 점이 이번에도 한계로 지적됐다.
다음 도전은 내년으로
한국은 1992년 MSCI 신흥시장지수에 편입된 뒤 30년 넘게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2008년 선진국지수 관찰대상국에 올랐지만 이후 편입에 실패했고 2014년에는 관찰대상국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이후에도 편입 논의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외환시장과 투자 접근성 문제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MSCI 선진국지수에 편입되려면 먼저 관찰대상국에 올라야 한다. 이후 최소 1년 이상의 검토 기간을 거쳐 실제 편입 여부가 결정된다. 올해 관찰대상국 진입이 무산된 만큼 한국의 실제 선진국지수 편입 시점도 그만큼 뒤로 밀리게 됐다.
MSCI는 잠재적인 시장 재분류 논의가 이뤄지려면 제기된 문제들이 해결돼야 하고 개혁이 완전히 시행돼야 하며 시장 참가자들이 변화의 효과를 충분히 평가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다음 평가의 핵심은 정부가 무엇을 발표했느냐가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이 실제로 한국 시장이 달라졌다고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증시는 올해도 선진국지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다만 이번 결과는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라기보다 자본시장 접근성과 투자 환경이 아직 선진국 시장으로 인정받을 만큼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내년 재도전을 위해서는 외환시장 개방과 투자 절차 개선이 실제 시장의 변화로 이어졌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