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금지구역 갔다가 석방된 활동가 “여권법은 악법”

작성일

정부까지 나서 무사 귀국을 끝까지 도와줬던 사례

여행금지지역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진입을 시도했다가 여권이 무효화된 활동가 김아현 씨(활동명 해초)가 여권법이 시민의 이동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법원에 처분 취소를 요구했다.

김 씨는 25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권법이라는 악법이 시민의 이동권을 제한하는 사례가 이후에도 생길 수 있다. ‘국가가 가지 말라는데 왜 가냐’는 문장에 담긴 태도와 생각이 섬뜩하다”며 “악법과 부당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냐”라고 말했다.

그는 “인종학살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위해 연대하려 했을 뿐인데 국가가 이를 막고 있다”고도 했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에서는 김 씨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여권반납명령 처분취소 소송의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외교부는 김 씨의 가자지구 진입 시도가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활동가 김아현 씨 / 유튜브 'JTBC News'
활동가 김아현 씨 / 유튜브 'JTBC News'

김 씨는 지난해 10월 국제 구호선단을 타고 가자지구로 향하던 중 이스라엘군에 의해 선박이 나포되면서 현지에 구금됐다가 이틀 만에 석방됐다. 이후 외교부는 여권 반납을 명령했지만, 김씨는 이를 송달받기 전에 다시 가자지구 항해를 준비하며 출국했다. 이에 따라 여권법 규정에 따라 여권 효력이 자동 상실됐다.

현행 여권법은 정부가 여행금지국가나 지역 방문을 시도한 국민에게 여권 반납을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여권 효력이 자동으로 소멸된다. 현재 가자지구는 우리 정부가 지정한 여행금지지역으로, 원칙적으로 방문이 금지돼 있다.

김 씨는 여권 재발급을 원하고 있지만 외교부는 가자지구 재방문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 씨는 관련 조항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이를 각하했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이유로 이동을 제한할 수 있는 범위와, 개인의 이동의 자유 및 정치적·인도주의적 활동의 자유 사이에서 어디까지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에 맞춰질 전망이다.

활동가 김아현 씨 / 유튜브 'JTBC News'
활동가 김아현 씨 / 유튜브 'JTBC News'
김 씨는 이스라엘군에 붙잡혔다 석방돼 지난달 21일 귀국했다.

석방 직후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 영사가 김 씨를 접견해 건강 상태를 확인했고, 당시 김 씨의 여권은 무효화된 상태였는데, 외교부가 발급한 여행 증명서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김 씨 귀국날 브리핑에서 "이재명 정부는 이스라엘이 나포 행위를 통해 우리 국민을 체포한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 다만 이스라엘 측이 우리 국민을 즉시 석방한 점을 높이 평가하며 이를 환영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안과 관련해) 정부는 필요한 영사 조력과 외교적 대응에 만전을 기했고 그 결과 이스라엘 측이 특별한 한국 국민 두 명에 대해 구금시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추방했다"라고 설명했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여행금지국가' 지정

가자지구는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지정한 대표적인 여행금지 지역 중 하나다. 외교부는 여권법에 따라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 전쟁, 내전, 테러, 납치, 무장 충돌 등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할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여행금지'를 발령할 수 있다. 가자지구는 수년째 이 최고 수준의 여행경보가 유지되고 있다.

가자지구가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된 가장 큰 이유는 지속적인 무력 충돌 때문이다. 특히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민간인 피해가 급격히 늘어났다. 공습과 포격, 지상전이 반복되면서 병원과 학교, 주거지역까지 전투 영향권에 들어갔고, 국제기구들은 심각한 인도주의 위기를 경고해 왔다.

여행금지 조치는 단순히 관광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지에서 사고나 납치, 부상 등이 발생하더라도 정부가 영사 조력이나 구조 활동을 충분히 제공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실제 가자지구는 출입 자체가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외국인이 자유롭게 이동하기도 쉽지 않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전쟁 상황에서는 공항과 도로, 통신망, 의료체계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병원 치료를 받기 어렵고, 대피나 출국 역시 즉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외교부가 여행금지 지역 방문을 강하게 제한하는 이유도 이러한 위험 때문이다.

현행 여권법에 따르면 여행금지 지역을 방문하려면 인도적 지원, 취재, 공무 수행 등 특별한 사유에 대한 정부 허가가 필요하다. 허가 없이 방문하거나 정부의 여권 반납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여권 효력이 상실될 수 있으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가자지구를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국민 보호 차원에서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부 활동가와 인권단체들은 인도주의 활동과 국제 연대의 자유까지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가자지구 여행금지 조치는 안전 보장과 이동의 자유 사이에서 사회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사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