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시행됐지만 지역 보호기관은 ‘0곳’…임미애, 인신매매 피해자 국가책임 강화법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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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착취·강제노동·범죄 강요 등 인신매매 수법 다변화…피해자 조기 식별 중요
지역기관 설치 주체를 지자체에서 정부로 전환하고 중앙기관 발급 권한 명문화
경찰·노동당국 통보 의무 추진…기관 설치와 전문인력·예산 확보가 관건

이해를 돕기위한 자료<이미지> / Ai 생성 이미지
이해를 돕기위한 자료<이미지> / Ai 생성 이미지

[세종=위키트리 양완영 기자] 염전과 농어촌의 강제노동부터 성착취, 해외 취업을 미끼로 한 온라인 사기 범죄 강요까지 인신매매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피해자가 불법체류자나 범죄 가담자로 먼저 분류되면 구조와 치료보다 단속·처벌 절차에 놓일 수 있어, 관계기관이 피해 징후를 조기에 식별하고 보호기관으로 연결하는 체계가 중요해졌다.

성평등가족부에 따르면 올해 인신매매 피해자로 확정돼 지원을 받은 사람은 29명이다. 이 가운데 25명은 경찰청과 고용노동부 등에서 범죄 피해 사실이 확인돼 별도의 사례판정위원회 심의 없이 지원으로 연계됐다. 2023년 인신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확정된 피해자는 모두 86명이다. 최근에는 직업소개소를 거쳐 염전에 취업한 뒤 폭행과 임금 체불, 노동력 착취를 당한 피해자들도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유엔 인권전문가들도 동남아시아 온라인 사기 조직에서 감금된 사람들이 투자·연애 사기 등 범죄를 강요받는 ‘강제 범죄’ 형태의 인신매매가 확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피해자가 사기 행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로 취급되지 않도록 인권 중심의 식별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 / 의원실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 / 의원실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은 지난 1일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체계의 공백을 줄이기 위한 ‘인신매매등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현행 인신매매방지법은 성매매와 성적 착취, 노동력 착취, 장기 적출 등을 목적으로 사람을 모집·이동·은닉하거나 지배하는 행위를 인신매매 등에 포함한다. 피해자의 국적과 체류자격, 수사기관 신고 여부와 관계없이 구조와 상담, 의료·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의 취지다.

법은 피해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지원하기 위해 중앙인신매매등피해자권익보호기관과 시·도 단위 지역기관을 두도록 했다. 지역기관은 신고 접수와 현장 조사, 응급조치, 피해자 확인서 발급, 지원시설 연계 등을 담당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임 의원실에 따르면 법 시행 3년째인 현재 전국 광역자치단체에 설치된 지역인신매매등피해자권익보호기관은 한 곳도 없다. 당초 17개 시·도에 지역기관을 두고 피해자를 신속하게 보호하겠다는 법 제정 취지가 현장에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도 지역 보호체계의 공백을 인정하고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는 지역권익보호기관을 권역별로 설치하고 중앙기관에 상담 전담인력을 배치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피해자 조기 발견과 맞춤형 지원을 위해 최초의 인신매매 실태조사도 추진할 계획이다.

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지역기관의 설치·운영 주체를 지방자치단체에서 성평등가족부 장관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았다. 지자체별 예산과 정책 우선순위에 따라 설치가 지연되는 구조를 국가 직접 책임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취지다.

지역기관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기관이 수행해 온 피해자 확인서 심의·발급 업무의 법적 근거도 명확히 한다. 피해자 확인서는 의료와 생계, 법률·주거 지원 등 보호서비스를 받기 위한 중요한 절차다.

법무부와 고용노동부, 경찰청 등 관계기관이 업무 과정에서 인신매매 피해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하면 중앙 또는 지역기관에 지체 없이 통보하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인신매매 피해자는 스스로 피해 사실을 인식하거나 신고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신분증을 빼앗기거나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사업장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언어 장벽과 체류자격 문제, 가해자의 보복 우려 때문에 수사기관이나 노동당국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이 범죄 현장에서,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에서, 출입국 당국이 단속 과정에서 피해 징후를 발견했을 때 보호기관으로 즉시 연결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기관 간 통보가 담당자의 판단과 협조에만 의존하면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에게 돌아가거나 보호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다만 통보 의무를 강화하는 과정에서는 피해자의 의사와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 피해 사실과 체류정보, 건강·성착취 관련 기록은 민감정보에 해당한다. 관계기관이 필요 이상의 자료를 공유하거나 수사 목적과 지원 목적을 구분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보호체계 자체를 피할 수 있다.

정부 조직 개편에 맞춘 정책조정협의회 개편도 개정안에 담겼다. 협의회를 성평등가족부 장관 소속으로 옮기고 위원장은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맡도록 했다. 관계부처 장관이던 당연직 위원은 차관급 공무원으로 조정해 실무 중심의 대면 협의를 활성화한다는 구상이다.

부처 간 협의가 차관급으로 낮아지면 회의 참석과 실무 조정이 빨라질 수 있다. 반면 인신매매 대응의 정책적 위상이 낮아지거나 부처별 책임이 분산되지 않도록 의사결정 권한과 이행 점검 장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기관 명칭과 설치 주체만 바꿔서는 보호 공백을 해소하기 어렵다. 통역과 법률, 노동, 출입국, 의료 상담을 담당할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야간이나 휴일에도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할 수 있는 인력과 임시보호시설도 확보해야 한다.

지역기관을 전국 17곳에 각각 설치할지, 여러 시·도를 묶은 권역형으로 운영할지도 검토 대상이다. 권역형은 예산과 전문인력을 집중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기관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지역 현장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

피해자 확인 절차도 신속성과 정확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확인서 발급이 지나치게 늦으면 생계·의료·체류 지원도 지연된다. 반대로 충분한 조사 없이 판단하면 실제 피해의 유형과 필요한 지원을 놓칠 수 있다.

임 의원은 “어렵게 마련된 인신매매방지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며 “피해자 조기 발견부터 신속한 확인과 맞춤형 지원까지 연결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인신매매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사고파는 행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빚과 폭력, 신분증 압수, 이동 제한, 취약한 체류지위를 이용해 노동이나 성적 행위, 범죄를 강요하는 착취도 포함될 수 있다.

이번 개정안의 성과는 지역기관 설치 숫자보다 피해자가 처음 발견된 현장에서 얼마나 신속하게 안전한 장소와 의료·법률 지원으로 연결되는지로 평가될 전망이다. 국가는 법률상 책임 주체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인력과 예산, 관계기관의 공통 식별 기준까지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