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는데... 이사철 앞두고 날벼락 맞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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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대출 하반기에 사실상 끊긴다
시중은행들이 하반기 가계대출 창구를 잇달아 걸어 잠그고 있다. 연간 관리 목표를 이미 채웠거나 넘어선 은행이 늘면서 하반기에는 신규 대출이 사실상 끊기다시피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지난 10일부터 오는 9월 실행되는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에 한해 대출모집인을 통한 접수를 중단했다. 지난 2일 8월 실행분 접수를 막은 데 이어 불과 일주일여 만에 9월 실행분까지 닫았다. 모집인 접수 한도가 그만큼 빠르게 소진됐다는 뜻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8일 대출모집인 접수 채널을 닫은 데 이어 이틀 뒤에는 모기지 보험(MCI·MCG) 가입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줄였다. 모기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소액임차보증금(방공제)을 뺀 금액만 빌릴 수 있어 사실상 한도가 깎이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KB국민은행이 지난 10일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구입자금 대출 최대한도를 기존 6억원에서 3억원으로 절반 수준까지 낮추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규제지역이 아닌 지역의 주택구입자금 대출에도 최대 3억원 한도를 똑같이 매겼다. 그동안 수도권·규제지역에서는 15억원 이하 주택에 최대 6억원,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 주택에 최대 4억원까지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지역과 무관하게 3억원이 상한이 됐다. 매매가격 25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종전대로 최대 2억원 한도가 유지된다.

정부가 지난해 6·27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통해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상한을 6억원으로 제한한 데 이어 시중은행이 이를 3억원으로 더 낮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이주비·중도금·잔금 등 집단대출과 정책성 자금인 기금대출·보금자리론,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택 구입·경락자금 대출은 한도 제한에서 빠진다. 대출금 증액이 없는 대환대출과 재대출, 상속에 따른 채무 인수도 적용 대상이 아니다. KB국민은행은 가계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여신 포트폴리오를 선제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자체 조치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앞다퉈 대출 문턱을 높인 것은 잔액이 임계치를 넘어 가파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9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정책성 대출 제외)은 총 648조3607억원으로, 작년 말(644조9700억원)보다 3조3907억원 증가했다.
이들 은행이 올해 초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연간 가계대출 증가액 목표치는 약 4조3400억원 수준으로 목표의 80% 가까이가 이미 찼다. 산술적으로는 20% 남짓 여력이 남았지만, 개별 은행 사정은 녹록지 않다. 5대 은행 가운데 3곳이 이미 목표치를 넘어섰다.
A은행은 가계대출 잔액이 당국에 제출한 연간 증가액 목표의 약 1.3배 수준까지 불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B은행과 C은행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목표치를 밑돌게 관리했으나 최근 차례로 수백억원가량 목표치를 넘겼다. 나머지 은행은 잔액이 아직 목표치를 비교적 넉넉히 밑돌고 있지만, D은행은 작년 말 대비 감소에서 증가로 돌아서 비상이 걸린 분위기다. 2분기 들어 증가세가 가팔라진 만큼 이 추세가 유지되면 한 달 안에 5대 은행 모두 연간 목표치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제2금융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1금융권 대출 상환 규모가 크게 줄어든 점도 신규 대출 여력을 좁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은행권의 이런 움직임은 금융당국의 총량 관리 기조와 맞물려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1.5% 이내로 제시했다. 지난해 6·27 대책 등으로 증가율을 1.7%까지 낮췄던 것보다 더 강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189조4000억원으로 한 달 새 7조6000억원 늘었다. 2024년 8월 이후 1년 10개월 만의 최대 증가폭이다.
가계대출은 여전히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주가 상승을 노린 '빚투'(빚내서 투자)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5대 은행의 지난 9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총 615조3425억원으로 지난달 말(615조1456억원)보다 1968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108조6704억원에서 109조4518억원으로 7815억원 불어나 증가 폭이 주택담보대출의 4배에 달했다. 신용대출 잔액이 목표치를 크게 웃도는 만큼 은행들은 마이너스통장 한도 감액 등으로 연말까지 총량을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여윳돈' 성격의 은행 요구불예금 잔액이 급감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5대 은행의 9일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총 682조9965억원으로 6월 말(722조2928억원)보다 39조2962억원 줄었다. 월간 기준으로 2020년 5월(-72조2166억원) 이후 6년 2개월 만의 최대 감소 폭이다. 이 역시 빚투와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대기성 자금인 요구불예금을 헐어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넘어, 이례적으로 높은 주가 변동성 속에 가용 자금을 끌어다 쓴 개인 투자자들의 여윳돈이 바닥을 보이는 조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상반기 결산 이후 빠져나간 기업 자금 비중이 큰 데다, 개인도 증시에 묶인 돈이 많아 생활비 용도로 예금을 인출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갑작스러운 대출 조이기에 실수요자들의 혼란은 커지고 있다. 정부가 허용한 최대 한도인 6억원을 기준으로 자금 계획을 세워 집을 사기로 한 수요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매매 계약을 마치고도 대출이 줄어 잔금을 치르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이 번지고 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나 갈아타기에 나선 실수요자도 일반 주택담보대출에는 한도 축소가 똑같이 적용돼 실수요까지 막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미 계약을 체결했거나 대출 절차를 밟고 있는 차주를 위한 유예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대출 조이기는 전세시장 불안과도 맞닿아 있다. 서울의 신규 입주물량이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데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4년 만기 매물이 신규 계약으로 전환되면서 전셋값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매도가 늘고 재개발·재건축 이주 수요까지 겹치며 임대 매물 품귀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전세 보증금 부담을 견디기 어려운 세입자가 월세로 옮겨가고, 늘어난 월세 수요가 다시 월세 가격을 밀어 올리는 흐름이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전세자금대출 규제 강화까지 예고하면서 임차인의 부담은 더 무거워질 전망이다. 무주택자의 고액 전세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 포함하고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낮추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