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까지 제 발로 왔는데…밖으로 유인해 긴급체포한 경찰
작성일
자진출석 피의자 밖으로 불러내 긴급체포
“길에서 우연히 발견” 허위서류 꾸민 현직 경찰 재판행
경찰서에 스스로 출석한 피의자를 밖으로 불러내 긴급체포한 뒤 수사서류까지 허위로 꾸민 현직 경찰관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는 직권남용체포와 공전자기록등위작 및 행사 등 혐의로 서울 영등포경찰서 소속 40대 A 경위를 불구속 기소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A 경위는 특수절도 혐의를 받던 피의자 B 씨를 위법하게 긴급체포하고 체포 과정과 압수 경위를 사실과 다르게 작성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B 씨는 지난 5월 22일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 그러나 A 경위는 경찰서에 도착한 B 씨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요구한 뒤 경찰서 인근 지하철역 앞으로 이동시켜 긴급체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긴급체포는 중대한 범죄 혐의가 있고 피의자에게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을 때 허용된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요건도 충족해야 한다. 검찰은 B 씨가 출석 의사를 미리 밝히고 실제 경찰서까지 찾아온 만큼 영장 없이 즉시 체포해야 할 긴급한 사정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A 경위는 B 씨가 자진 출석하기 전날부터 출석 의사를 전달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B 씨는 경찰서로 이동하면서 자신의 이동 경로도 실시간으로 알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도주 우려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정식으로 체포영장을 신청할 시간도 충분했다고 봤다.
“길에서 우연히 발견”…체포 경위 허위 작성
A 경위는 긴급체포서에 실제 상황과 다른 내용을 기재한 혐의도 받는다. 그는 탐문 수사를 하던 중 길에서 B 씨를 우연히 발견했으며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 긴급체포했다는 취지로 서류를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긴급체포서는 구속영장 심사 과정에도 제출됐다. 법원은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B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B 씨는 같은 달 28일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검찰은 구속 송치된 B 씨를 면담하는 과정에서 체포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B 씨는 자진 출석을 약속하고 경찰서에 도착했지만 A 경위가 밖으로 나오라고 해 나갔고 그 직후 갑자기 긴급체포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찰은 B 씨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보완수사에 착수했다. A 경위와 B 씨 사이의 통화 녹음 파일을 확보하고 경찰서 방문 기록과 통화 내역을 분석했다. 폐쇄회로(CC)TV 영상과 참고인 진술도 확인했다.
수사 결과 B 씨의 진술은 실제 출석 과정과 대체로 일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긴급체포가 위법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해 지난 6월 1일 B 씨에 대한 구속을 취소하고 석방했다. B 씨는 체포 이후 석방될 때까지 11일 동안 구금된 것으로 전해졌다.
제3자가 건넨 현금도 “체포 현장서 압수”
A 경위는 압수물의 확보 과정까지 사실과 다르게 작성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절도 피해품 명목의 현금을 B 씨를 체포한 현장에서 직접 압수한 것처럼 압수조서와 압수수색검증영장 신청서 등에 기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조사 결과 해당 현금은 긴급체포 현장에서 발견된 물품이 아니었다. B 씨는 훔친 돈 일부를 게임장에서 사용한 뒤 남은 돈을 게임장 업주에게 맡긴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A 경위는 B 씨를 체포한 뒤 게임장 업주로부터 현금을 건네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업주는 인근 은행에서 보관 중이던 돈을 인출해 A 경위에게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A 경위가 제3자로부터 확보한 현금을 체포 현장에서 압수한 것처럼 관련 서류를 꾸몄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보완수사를 거쳐 A 경위에게 직권남용체포와 공전자기록등위작 및 행사 혐의를 적용했다.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직권남용체포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 사람을 체포하거나 감금한 경우 성립할 수 있다. 전자 형사사법정보에 허위 내용을 입력하거나 이를 사용한 경우에는 공전자기록 위작 및 행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자진 출석한 피의자를 경찰서 앞에서 체포한 행위가 위법하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스스로 출석한 피의자에게는 체포의 필요성과 긴급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경찰의 수사권 남용과 피의자의 기본권 침해를 보완수사로 확인한 사례로 보고 있다.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뿐 아니라 경찰 단계의 체포와 압수 절차가 적법하게 진행됐는지도 송치 이후 면밀하게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영등포경찰서는 A 경위를 대기발령해 업무에서 배제했다. 서울경찰청도 사건 경위와 수사 절차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감찰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