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축구팬들 분노 부른 월드컵 결승 첫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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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개최 무색하게 만든 미국 독무대… 하프타임쇼 등 '슈퍼볼화' 논란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세계 최고 무대가 정작 경기에 나서지도 않는 특정 개최국의 세력 과시와 상업주의로 얼룩졌다. 세계 챔피언 자리를 놓고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이 맞붙는 월드컵 결승전이 두 나라의 국가가 아닌 미국의 국가로 문을 여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월드컵 우승 스페인이 트로피를 들고 축하하고 있다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인스타그램
월드컵 우승 스페인이 트로피를 들고 축하하고 있다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인스타그램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은 20일 오전 4시(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러더퍼드의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에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을 치렀다. 두 국가의 선수들이 피치 위에 올라 치열한 진검승부를 벌이기 전 경기장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경기 시작에 앞서 그라운드에 등장한 미국 가수 제니퍼 허드슨이 마이크를 잡고 부른 노래는 결승 진출국인 아르헨티나나 스페인의 국가가 아니었다.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The Star-Spangled Banner)’가 울려 퍼졌다.

미국은 이번 결승전의 당사자가 아니다. 미국 축구 대표팀은 이미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 1-4로 완패하며 일찌감치 대회를 마감했다. 게다가 이번 대회는 미국의 단독 개최도 아니다. 캐나다, 멕시코가 함께 손을 잡고 역사상 처음으로 3개국 공동 개최로 치러진 월드컵이다. 그럼에도 결승전의 첫 국가 연주라는 상징적인 순간이 오롯이 미국의 몫이 됐다. 함께 대회를 준비하고 개최한 캐나다와 멕시코의 국가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 라민 야말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인스타그램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 라민 야말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인스타그램

통상적으로 월드컵 경기에서는 경기를 치르는 두 나라의 국가가 연주되는 것이 오랜 관례이자 원칙이다. 개최국이라는 명분 하나만으로 결승에 오르지도 않은 나라의 국가를 먼저 들려주는 장면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거부감을 안겼다.

앞서 FIFA가 허드슨의 미국 국가 특별 공연 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 축구계 안팎에서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팬들은 “미국이 결승에 진출하지도 않았는데 왜 미국 국가를 들어야 하느냐”, “월드컵 결승전마저 미국의 내수용 행사로 전락시키고 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FIFA는 이런 여론을 철저히 외면한 채 기존 계획을 강행했다. 전 세계 수억 명의 축구팬들이 지켜보는 결승전 당일 정작 주인공인 아르헨티나와 스페인 선수들이 입장하기도 전에 미국의 국가와 애국주의적 연출이 전면에 배치됐다.

월드컵은 특정 개최국을 기념하거나 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지역 축제가 아니다. 지구촌 모든 국가대표팀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FIFA 주관의 가장 권위 있는 국제대회다. 당연하게도 결승전 무대의 주인공은 개최국 정부나 초청 가수, 정치인이 아니라, 4년 동안 피땀 흘려 우승을 다투기 위해 올라온 두 팀과 선수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결승전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스포츠의 기본 원칙조차 상업성과 정치적 계산에 의해 흐려졌다.

이번 미국 국가 연주는 대회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제기됐던 ‘월드컵의 슈퍼볼화’ 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첫 장면이었다. FIFA는 이번 대회에서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결승전 하프타임 쇼를 도입했다. 마돈나, 샤키라, 방탄소년단(BTS), 저스틴 비버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공연자로 이름을 올리며 화제를 모았다.

기뻐하는 스페인 선수들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인스타그램
기뻐하는 스페인 선수들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인스타그램

하지만 축구에서 하프타임이 갖는 의미를 고려하면 이는 축구 본연의 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전반 45분을 격렬하게 마친 선수들이 숨을 고르고 감독과 함께 전술을 재정비하는 15분의 중요한 시간이 대형 공연과 상업 광고, 유명 가수를 위한 쇼 무대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결승전 현장을 찾으며 정치적 색채는 더 짙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함께 VIP석에서 경기를 관전했으며 시상식 중심에 참여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주목을 받았다. 경기에 나서지 않는 미국의 국가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미국 대통령이 관중석과 시상식의 핵심 인물로 서며 하프타임에는 미국식 슈퍼볼을 연상케 하는 초대형 상업 공연이 펼쳐지는 기이한 구조가 완성됐다.

한편, 이날 경기는 스페인이 1-0으로 아르헨티나를 꺾고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16년 만에 월드컵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