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소방관 폭발 “한번이라도 유가족 절규 들었다면 그런 헛소리 못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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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출입 통제가 개인자유 침해? 소방관이 직접 전하는 참혹한 현장

소방대원들이 제주시 오라동 방선문계곡에 출입통제선을 설치하는 모습. /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소방대원들이 제주시 오라동 방선문계곡에 출입통제선을 설치하는 모습. / 제주도소방안전본부

현직 소방관이자 에세이집 '당신이 더 귀하다'를 펴낸 백경 작가가 장마철 계곡 출입 통제를 두고 "자유를 빼앗겼다"고 불만을 터뜨린 네티즌을 향해 계곡 구조 현장의 참혹한 실상을 전하며 일침을 놨다.

백 작가는 최근 소셜미디어 스레드에 '그 목소리를 들은 적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맘때면 계곡 구조 출동이 잦은데, 그중 절반가량은 물속에 가라앉은 지 오래된 사람을 건져 올리기 위한 출동이라고 했다. 구조대원들이 불어난 흙탕물 아래로 끊임없이 몸을 던지는 동안, 물가는 떠오르지 않는 사람을 부르는 가족들의 목소리로 밤새 메아리친다고 그는 전했다.

백 작가는 글에서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여보 여보 여보 여보", "형 형 형 형"이라며 실종자를 애타게 부르는 유가족의 외침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이어 "한 번이라도 그 목소리를 들은 적 있다면 물이 불어난 계곡에 사람이 못 들어가게 하는 걸 두고 자유를 뺏겼다느니 공산국가라느니 헛소리는 하지 못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자유? 좋지. 맘대로 죽을 수 있는 자유도 자유라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하시라"면서도 "대신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뒤에 애먼 사람들을 원망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백 작가의 글은 한 네티즌이 온라인에 올린 불만 글에 대한 반박 성격이다. 해당 네티즌은 장인·장모를 모시고 한 시간 반을 운전해 물놀이를 하러 계곡을 찾았는데 행정안전부 지시로 계곡 출입이 통제됐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계곡에 와서 알아서 물놀이하겠다는데 나라가 왜 막느냐"며 비도 오지 않고 물살도 잔잔한데 사소한 것부터 자유를 빼앗기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백경 작가가 올린 스레드 게시물.
백경 작가가 올린 스레드 게시물.

계곡과 하천은 이 같은 인식이 사고로 이어지기 쉬운 대표적 공간으로 꼽힌다.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 수심이 들쑥날쑥하고 특정 지점만 갑자기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현장에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상류에 비가 오면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급류로 바뀔 수 있는 까닭에 '물이 잔잔해 보인다'는 판단만으로는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실제로 경북 문경시 가은읍 선유동계곡에선 지난 19일 산행을 마친 뒤 계곡에 발을 담그던 60대 남성이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사고 당시 문경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지만 전날까지 이어진 집중호우로 계곡 수위가 높아지고 물살이 거세진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청 집계를 보면 물놀이 사고는 2023년 928건, 2024년 1273건, 지난해 950건 발생했다. 행정안전부는 폭우가 내린 뒤에는 평소 잘 아는 장소라도 수위가 오르거나 물살이 거세질 수 있는 만큼 물에 들어가기 전 위험 요소가 없는지 반드시 살펴야 한다고 당부한다. 급류나 소용돌이, 저수지·댐 같은 금지구역에는 들어가지 말고, 물놀이는 안전요원이 상주하는 지정된 장소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권고다.

백 작가는 구급차를 타며 마주한 삶과 죽음의 단상을 담아 에세이집 '당신이 더 귀하다'를 냈다. 책에는 가난에 짓눌린 사람들, 깊은 우울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람들 등 세상의 그림자 속에 숨어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는 "구급차를 타기 시작한 뒤로 세상이 살 만하다는 생각은 무너졌다"고 책에 적었다. 소방관이 되기 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몇 없다고 여겼지만, 구급차를 타고 나서야 아픈 삶이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입사 초기 현장 트라우마로 극심한 불안장애에 시달렸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써 내려간 글은 처음엔 세상에 남길 유서에 가까웠지만 점차 세상을 향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백 작가는 "아무도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글을 쓴다고 말한다. 타인의 아픔에 무뎌지지 않고, 슬픈 일을 계속 슬퍼할 수 있도록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다는 것이 그가 밝힌 집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