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족쇄 풀리나…이제 대형마트도 쿠팡처럼 '이것' 가능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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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풀면 대형마트 살아날까, 온라인 쇠퇴할까
정부가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유통 규제 개편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하면서 대형마트 산업 전반의 구조적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이후 14년간 유지돼온 심야 영업 제한 규제에 손을 댈 수 있다는 신호가 나오면서, 유통업계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유통시장 지각변동…대형마트 점유율 20%서 8%로 추락
20일 한국경제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대형마트 3사를 비롯해 G마켓, 11번가 같은 온라인 플랫폼, 다이소·무신사·올리브영 등 신흥 유통 강자들을 잇따라 만나며 제6차 유통산업발전기본계획 수립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계획에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에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금지하고, 월 2회 의무휴업을 부과하고 있다. 이 규제는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 대형마트를 새벽배송 시장에서 원천 배제하는 효과를 낳았다.
수치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대형마트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의 유통업 전체 매출 비중은 올해 4월 기준 7.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9년 20.2%였던 점유율이 불과 7년 새 8%대 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2021년 15.1%에서 매년 가파르게 낮아져 2022년 13.0%, 2023년 12.1%, 2024년 11.0%, 2025년 9.8%로 내리막을 멈추지 않았다.
반면 쿠팡의 성장세는 정반대 궤적을 그렸다. 2021년 22조2200억원이었던 쿠팡의 연 매출은 2023년 31조8300억원을 거쳐 지난해 49조1200억원까지 뛰었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 3사의 합산 매출은 28조~29조원대에 머물렀다. 온라인 유통 전체의 시장 점유율도 같은 기간 41.2%에서 58.6%로 대폭 확대됐다.

"대형마트를 포식자로 보던 시대는 끝났다"
정부가 이번에 규제 손질에 나서는 배경에는 유통시장 구도가 근본적으로 뒤바뀌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점포 면적이 크다는 이유로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규제가 쿠팡, 식자재마트, 올리브영, 다이소, 무신사 등과의 경쟁에서 대형마트만 불리하게 만드는 역차별로 작용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박용진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SNS에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을 살린 것이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과 새벽배송 업체들을 키웠다"며 "10여 년 전 시장 환경을 기준으로 만든 규제를 오늘의 소비 여건에 맞게 다시 점검할 때"라고 적어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판단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서울연구원이 의무휴업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변경한 지역을 분석한 결과, 주말에 문을 연 대형마트로 소비자가 이동하면서 온라인 소비는 오히려 2.9% 줄어들었다. 그러나 대형마트 영업 여부와 무관하게 전통시장 매출 변화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대형마트를 강제로 닫아도 소비자가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 쇼핑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뜻이다.

규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5년 발간한 연구보고서는 이미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제도가 전통시장 활성화보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성장세 둔화에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대규모 점포의 95.5%와 SSM의 86.7%는 규제 시행 이후 고객 수가 줄었다고 응답한 반면, 전통시장 중 고객이 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51.5%에 그쳤다.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2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지정은 그대로 두되, 새벽 시간대 포장·반출·배송 등 전자상거래를 위한 물류 행위만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상생기금 1000억 원…소상공인 설득할 수 있을까
정부는 규제 완화와 함께 1000억 원 규모의 유통발전상생기금 조성 계획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형마트·백화점·기업형슈퍼마켓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물론, 컬리·SSG닷컴 같은 온라인 유통사와 올다무 등 신흥 강자까지 참여시켜 골목상권 보호와 전통시장 지원에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상생기금 조성을 조건으로 한 규제 해소 패키지 딜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걸림돌이 적지 않다. 새벽배송 허용을 위해서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는 이미 규제 완화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000억 원 규모의 기금이 800만 소상공인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의 반응도 미온적이다. 규제 완화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자신들과 경쟁 관계에 있는 대형마트인데, 그 비용을 자신들이 일부 부담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린 다수의 업체들 사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협의 과정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홈플러스 사태 '두 얼굴'…유통법 탓인가, 경영 실패인가
이번 논의의 도화선이 된 홈플러스 사태를 둘러싼 해석은 엇갈린다. 대형마트 업계는 구조적 규제 환경이 위기를 키웠다고 주장하지만, 동일한 규제를 받는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점포 리뉴얼, 식품 경쟁력 강화, 온라인 사업 확대 등을 통해 실적 반등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해진다.
업계 안팎에서는 MBK파트너스의 경영 전략에 더 큰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점포를 매각하고 자산을 유동화해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집중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점포 노후화, 온라인 전환 지연, 상품 경쟁력 약화가 누적되면서 회생절차 과정에서 드러난 유동성 위기는 단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친 투자 공백의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만약 규제만이 문제였다면 같은 규제를 받는 다른 대형마트들도 모두 비슷한 위기에 처했어야 한다며 홈플러스 사태는 대주주 경영 판단과 투자 전략이 기업 경쟁력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