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유행 지났는데”…해외에서 이제 더 뜨는 ‘K패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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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타고 해외서 재발견, '아쿠비 패션'은 왜 한국보다 핫할까?
교복·Y2K, 한국은 지난 유행 해외는 新장르로 변신하다

교복룩·Y2K 레이어드까지 K팝 타고 뒤늦게 확산

몇 년 전 서울 홍대와 성수동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크롭 티셔츠와 카고바지, 볼레로 카디건, 무채색 레이어드 스타일이 해외에서 새로운 이름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유행한 뒤 다른 스타일과 섞이거나 한풀 꺾인 옷차림이지만, 해외 젊은 세대에게는 지금 막 발견한 ‘힙한 K패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해외에서 이제 더 뜨는 ‘K패션’ 정체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해외에서 이제 더 뜨는 ‘K패션’ 정체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해외 패션 매체와 SNS에서 주목하는 ‘아쿠비 패션(Acubi fashion)’이다. 한국인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막상 사진을 보면 대부분 익숙한 옷차림이다. 몸에 붙는 짧은 상의에 통이 넓은 카고바지나 로라이즈 데님을 입고, 볼레로나 얇은 시스루 상의를 겹쳐 입는 방식이다. 검은색과 회색, 카키색처럼 채도가 낮은 색상이 중심을 이룬다는 점도 특징이다.

한국에서는 2020년대 초반 Y2K와 하이틴 패션이 유행할 당시 쉽게 볼 수 있었던 조합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 스타일을 단순한 Y2K가 아닌 한국에서 시작된 독립적인 패션 미학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인도 잘 모르는 ‘아쿠비 패션’, 해외에서는 하나의 장르가 됐다

아쿠비 패션은 서울 기반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아쿠비클럽(ACUVI CLUB)'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브랜드가 보여준 무채색 레이어드 스타일이 해외 SNS로 퍼지면서, 비슷한 분위기의 한국식 스트리트 패션 전체를 설명하는 단어로 확장된 것이다.

브라질판 엘르는 2023년 아쿠비 패션을 한국에서 시작된 트렌드로 소개하면서 Y2K와 미니멀리즘, 과감한 절개와 비대칭 디자인을 활용하는 파괴적이고 실험적인 요소를 기본 아이템에 더한 '서브버시브 베이식(Subversive Basics)'을 결합한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아시아권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패션 콘텐츠에서도 ‘Acubi outfit’과 ‘Korean Acubi style’이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6월 싱가포르 매체 CNA 라이프스타일은 아쿠비를 2026년 세계 Z세대의 옷차림을 정의하는 한국 패션으로 조명했다. 해당 매체가 인용한 해시태그 분석 자료에 따르면 틱톡에서 ‘#acubi’ 관련 영상의 누적 조회 수는 4억 2000만 회를 넘어섰다.

해외에서 주목받는 한국식 아쿠비 패션.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해외에서 주목받는 한국식 아쿠비 패션.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흥미로운 점은 정작 한국에서는 ‘아쿠비룩’이라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비슷한 옷차림을 Y2K룩이나 힙한 스트리트 패션, 무채색 레이어드룩 정도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해외 이용자들이 한국의 여러 유행 요소를 모아 하나의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패션 장르로 만든 셈이다.

국내에서 익숙해진 Y2K, 해외에서는 ‘한국식 미니멀룩’으로 변신

아쿠비 패션의 핵심 요소는 사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짧은 상의와 로라이즈 하의, 카고바지, 볼레로, 시스루 소재, 두꺼운 플랫폼 슈즈는 국내에서 Y2K 패션이 크게 유행한 시기에 이미 대중화됐다.

다만 해외에서 재해석된 아쿠비 패션은 2000년대 스타일을 그대로 복원하지 않는다. 반짝이는 소재와 선명한 색상, 화려한 액세서리를 앞세웠던 초기 Y2K와 달리 색을 줄이고 실루엣과 겹쳐 입기에 집중한다. 상의는 몸에 붙게 입되 하의는 크게 떨어뜨리고, 회색이나 검은색 옷 사이에 흰색 이너웨어가 조금 보이도록 연출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국내 소비자에게는 몇 년 전 유행을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해외에서는 ‘절제된 한국식 Y2K’라는 새로운 이미지로 소비된다. 옷장에 이미 있는 기본 티셔츠와 카디건, 와이드 팬츠만으로도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어 따라 하기 쉽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성별에 관계없이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해외 Z세대의 관심을 끈다. 짧은 니트와 롱스커트로 부드럽게 연출할 수도 있고, 큰 후드 집업과 카고바지를 조합해 중성적인 스트리트 패션으로 바꿀 수도 있다.

한때 유행했던 ‘교복룩’도 외국인에게는 한국 여행 콘텐츠

국내에서는 2010년대 후반부터 놀이공원에서 교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는 문화가 크게 유행했다. 최근에는 한국인에게 다소 익숙해진 경험이지만,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는 여전히 대표적인 K패션 체험으로 꼽힌다.

재킷과 체크무늬 치마, 니트 조끼, 넥타이로 구성된 한국식 교복은 K팝 무대와 학원물 드라마, 웹툰을 통해 해외에 반복적으로 노출됐다. 해외 SNS에서는 이를 ‘Korean school uniform aesthetic’이나 ‘gyobok core’라고 부르며 실제 교복이 아닌 일상 패션으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롯데월드에서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롯데월드에서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매일경제가 서울관광재단 자료 등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롯데월드 주변 교복 대여점의 매출은 2023년 기준 2019년보다 약 400% 증가했으며, 외국인 이용객도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국내에서 시작된 놀이공원 교복 문화가 K콘텐츠의 확산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의 사진 촬영 코스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해외에서는 교복 전체를 그대로 입기보다 플리츠스커트에 오버사이즈 카디건이나 운동화를 더하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매는 방식으로 변형한다. 국내에서 이미 지나간 ‘하이틴룩’이 해외에서는 한국 드라마 속 청춘을 재현하는 패션으로 새 생명을 얻은 셈이다.

치마 위에 바지 입기, 과거의 레이어드가 다시 돌아왔다

치마와 바지를 동시에 입는 ‘스커트 오버 팬츠’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2000년대에 유행했던 이 스타일은 국내에서 한동안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 Y2K와 걸코어 열풍을 타고 다시 등장했다.

무신사가 지난해 1월 1일부터 2월 18일까지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 ‘스커트 팬츠’ 검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7% 증가했다. ‘스커트 슬랙스’와 ‘레이어드 스커트’ 등 관련 검색어도 약 4배 늘었다. 해외에서는 스커트와 팬츠를 합친 ‘스칸트(Skant)’라는 이름으로도 소개됐다.

과거 스타일과 다른 점은 레이어드 방식이다. 긴 원피스 위에 청바지를 입었던 2000년대와 달리, 최근에는 짧은 프릴 스커트나 얇은 시스루 스커트를 와이드 팬츠 위에 더한다. 아쿠비 특유의 무채색과 걸코어의 레이스 장식이 결합하면서 과거 유행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새로운 실루엣으로 바뀌었다.

결국 한국의 과거 유행이 그대로 해외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현지 이용자들이 새로운 이름과 스타일링 방법을 더해 재창조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홍대 거리에서 연출한 스커트 오버 팬츠 스타일.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홍대 거리에서 연출한 스커트 오버 팬츠 스타일.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왜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새롭게 느껴질까

패션 유행에는 지역별 시차가 존재하지만, K패션의 경우 K팝과 드라마가 그 속도를 크게 바꾸고 있다. 아이돌의 무대 의상뿐 아니라 공항 패션과 출근길 사진, 일상 SNS 게시물까지 전 세계 팬들의 스타일 참고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표한 '2025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류 경험자의 58.9%가 앞으로 한국산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한류가 실제 구매 결정에 영향을 준다고 응답한 비율도 63.8%였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영향이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일본 중고거래 플랫폼 라쿠마가 실시한 조사에서 10대 여성 응답자의 75.9%가 패션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국가로 한국을 선택했다. 한국 패션 플랫폼들이 ‘한국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나 ‘K팝 아이돌이 선택한 제품’을 별도 항목으로 제공하는 것도 이 같은 수요와 관련이 있다.

국내 소비자에게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입고 지나간 옷이라도, 해외 팬에게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을 통해 처음 발견한 스타일일 수 있다. SNS 알고리즘이 과거 콘텐츠를 현재의 유행처럼 다시 노출하는 것도 국가 간 시간차를 만든다.

‘유행이 지났다’기보다 다른 이름으로 다시 살아난다

아쿠비 패션과 교복룩, Y2K 레이어드 스타일의 인기는 K패션이 단순히 최신 상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해외 소비자는 한국에서 유행한 여러 요소를 골라 자신들의 문화와 기후, 체형에 맞게 다시 조합한다.

따라서 국내에서 유행이 지났다고 느끼는 옷차림이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현상을 단순히 ‘늦은 유행’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하나의 짧은 트렌드였던 스타일이 해외 SNS에서 이름을 얻고, 수백만 명이 공유하는 독립적인 패션 미학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옷장에 넣어둔 카고바지와 볼레로 카디건, 플리츠스커트가 있다면 버리기 전에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지나간 유행처럼 보이는 그 옷이 해외에서는 지금 가장 검색되는 ‘Korean outfit’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