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탐구 집’, 조상 덕 제대로 봤다…선산에 들어선 두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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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선산을 부부의 숲속 아지트로 바꾼 양철 오두막
진주 유씨 대종손이 300년 넘은 터에 세운 삼대 가족의 집
조상의 묘를 옮긴 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선산에 들어선 양철 오두막과 300년 동안 한 가문이 지켜온 터에 새로 지은 대종손의 집이 소개된다. 두 집에는 오랜 세월 집안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온 아내를 향한 남편의 마음과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터를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려는 가족의 뜻이 담겨 있다.
EBS1 ‘건축탐구 집’은 충남 논산의 선산에 자리한 부부의 숲속 쉼터와 충북 청주에 세워진 진주 유씨 대종손의 집을 찾아간다.
선산에 지은 ‘재수 좋은’ 양철 오두막

첫 번째 집은 충남 논산의 한 선산에 자리한다. 과거 조상들의 묘가 있던 곳이지만 6년 전 묘를 이장한 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대나무만 빼곡하게 자라났다.
이곳의 주인은 김선희 씨와 아내 서민숙 씨다. 선희 씨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 제사를 도맡아 지냈다. 민숙 씨 역시 기독교 신자임에도 종손 며느리 역할을 받아들이며 남편과 함께 1년에 15번씩 제사를 지냈다.
부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반지하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고, 사업을 키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 세 차례 부도를 겪었다. 힘든 시기마다 선희 씨가 찾아간 곳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선산이었다.
묘를 옮긴 뒤 방치되다시피 한 선산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민숙 씨는 빽빽한 대나무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는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오랫동안 아내와 며느리로서 제 몫을 다해온 민숙 씨가 이곳에 작은 집을 짓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자 선희 씨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설업에 종사했던 선희 씨가 숲속 쉼터의 뼈대로 선택한 것은 양철 컨테이너였다. 평범한 컨테이너처럼 보이지만 부부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선희 씨가 부도를 겪은 뒤 재기를 다짐하며 머물렀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이 컨테이너를 두고 ‘재수 좋은 컨테이너’라고 부른다.
컨테이너의 약점인 단열도 보완했다. 천장고를 높이고 샌드위치 패널과 단열재를 덧대 외부의 더위와 추위를 막았다. 덕분에 내부 공간은 일반적인 컨테이너보다 한층 넓고 아늑한 분위기를 갖췄다.
홍송 창호와 폐교 마루로 완성한 숲속 아지트

집 안 곳곳에는 아내의 취향과 이를 실현하려 한 남편의 노력이 담겨 있다. 목창호를 고르기 위해 목재소를 찾았던 민숙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붉은빛이 짙어지는 홍송에 눈길을 빼앗겼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직접 나무를 구해오면 시공해주겠다는 목재소 주인의 말에 선희 씨는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홍송을 찾아냈다.
마루 역시 평범한 자재를 사용하지 않았다. 민숙 씨가 오래된 오두막의 분위기를 내려면 폐교 마루를 깔아야 한다고 말하자 선희 씨는 논산에서 경기 포천까지 화물차를 몰고 가 자재를 가져왔다. 그렇게 완성된 집은 양철 컨테이너의 투박함 위에 홍송 창호와 낡은 목재의 빈티지한 분위기가 더해진 숲속 오두막이 됐다.
선희 씨에게 이 집은 아내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 뇌염으로 세 차례나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당시 병을 잘 알고 있던 민숙 씨가 신속하게 대처한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큰일을 여러 차례 겪은 뒤 선희 씨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도 아내였다. 그는 자신을 살려준 아내가 원했던 작은 쉼터를 지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부부는 오두막을 짓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할아버지가 남긴 숲도 조금씩 가꾸고 있다. 고단한 시간을 함께 견뎌온 두 사람은 이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선산에서 자신들만의 평온한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300년 터에 다시 세운 대종손의 집

두 번째 집은 충북 청주에 자리한다. 진주 유씨 27대 대종손 유만형 씨와 아내 권영애 씨가 아들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집이다.
만형 씨는 독자로 태어나 할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 기억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터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영애 씨는 남편이 대종손이라는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시집을 왔다. 이후 대종손 며느리로서 매년 열두 번의 제사를 묵묵히 치렀다. 지금은 제사 횟수가 줄었지만 당시에는 명절과 제사 준비가 일상이었다.
오랫동안 집안일을 감당해온 영애 씨가 가족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낡은 옛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자는 것이었다.
만형 씨에게 옛집은 쉽게 없앨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마을 청년들과 함께 손수 지은 집이었기 때문이다. 비용 부담도 컸지만 집에 쌓인 기억을 지운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에 걸렸다.
고민 끝에 가족은 새집을 짓기로 했다. 이 터를 훗날 손주가 다시 물려받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결정을 이끌었다.
집은 아들 가족과 부모 세대가 함께 살 수 있도록 좌우로 길게 설계됐다. 긴 복도를 따라가면 손자와 손녀의 방이 있는 아들 가족의 공간이 나온다. 복도 중간에 놓인 작은 거실은 두 세대의 생활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전이 공간이다.
현관은 편백나무로 마감했다. 집에 들어서면 신발 냄새 대신 은은한 편백 향이 퍼진다. 옛집에서 생활하던 시절 바깥에 벗어둔 신발 속에 들어간 지네에게 발가락을 물린 적이 있는 영애 씨는 현관이 생긴 것만으로도 새집이 대궐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조상만 볼 수 있는 스페인 기와지붕

새집에는 오랫동안 집안을 돌본 영애 씨의 요구가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주방은 상부장을 없애 시야를 넓혔고, 조리와 수납이 편하도록 단정하게 구성했다. 침실에서는 숙면을 방해할 수 있는 화장실도 과감히 뺐다.
가족들은 영애 씨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썼지만 정작 영애 씨는 밤마다 침실을 나와 거실에서 잠을 청한다. 방송에서는 새로 지은 침실을 두고도 거실로 향하는 영애 씨의 사연이 공개된다.
집 뒤편에는 6대조 할아버지의 묘까지 모신 가족 묘소가 자리한다. 이곳에 올라야 비로소 집의 독특한 지붕을 확인할 수 있다.
집의 앞쪽에서는 평평한 지붕처럼 보이지만 뒤에서 바라보면 스페인식 기와지붕이 모습을 드러낸다. 집 앞을 오가는 사람보다 뒤편 선산에 모신 조상들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만든 지붕인 셈이다.
집을 짓기에 앞서 조상들의 묘부터 이장한 대종손 가족의 뜻이 지붕에도 담겼다.
만형 씨는 훗날 손주가 이 집과 터를 물려받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지금도 하루 두 번씩 산소를 찾아 조상들에게 인사를 올린다.
한 집은 묘를 옮긴 뒤 버려진 선산을 부부의 쉼터로 되살렸고, 다른 집은 300년 넘게 이어진 터에 삼대가 함께 살아갈 새집을 세웠다.
‘건축탐구 집’은 두 가족의 집을 통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을 오늘의 삶으로 이어가는 방식을 들여다본다.
EBS1 ‘건축탐구 집’ ‘조상 덕 보고 지은 집’ 편은 4일 오후 9시 55분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