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과제들②] 스토킹 전력 있었지만…되풀이된 관계성 범죄의 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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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 여성에 비정상적 집착 보인 장윤기…표적 사라지자 범행 대상 바꿔 살해
'6차례 신고'에도 죽음으로 이어진 '남양주 스토킹 살인'…경찰 부실 대응 논란
관계성 범죄 신고 지난해 44만여건으로 늘었지만…구속률·전자장치 부착 저조

'관계성 범죄'는 스토킹·교제폭력·가정폭력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뜻한다. 장윤기에게도 '스토킹'이라는 관계성 범죄 위험 신호가 감지됐지만 결국 또 다른 죽음이 이어졌다. 매해 반복되는 관계성 범죄의 비극은 여전히 미비한 사회 대응책에 물음을 던진다.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진 장윤기의 집착

고(故) 이채원양이 살해되기 이틀 전인 5월 3일, 장윤기는 아르바이트 동료였던 20대 베트남 국적 여성 A씨의 주거지에 침입해 성폭행하고 약 13시간 동안 감금했다. 위협을 느낀 A씨가 스토킹 피해로 112에 신고하자 경찰은 장윤기에게 '스토킹 중단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장윤기는 이를 무시하고 휴대전화 유심칩을 없애고 기기를 강에 버리는 등 경찰 추적을 피했다. 이후 피신한 A씨를 찾아다니던 장윤기는 범행 대상을 바꿔 거리를 배회하던 중 5월 5일 새벽 이 양을 납치하려다 흉기로 살해했다.
장윤기와 A씨는 2024년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그해 10월 장윤기의 메신저를 차단한 뒤부터 본격적인 집착이 시작됐다. 장윤기는 A씨를 몰래 미행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계좌이체로 돈을 보내는 등 일방적으로 구애했다. A씨의 집 주변을 수차례 배회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스토킹을 비롯한 장윤기의 집착은 결국 또 다른 살인 사건으로 이어졌다.
부실 대응 논란 들끓은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

장윤기 사건이 벌어지기 두 달 전인 3월에는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이 있었다. 3월 14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의 한 거리에서 전자발찌를 착용한 44세 남성 김훈이 과거 교제했던 20대 여성 B씨의 퇴근길에 피해자가 탄 차량의 창문을 깨고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범행 직후 김훈은 전자발찌를 끊고 임시번호판을 부착한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가 약 1시간 만에 경찰에 검거됐다.
해당 사건은 '보복 살인'으로 다뤄지고 있다. 살해에 앞서 김훈은 지난해 5월 B씨를 폭행하고 갈비뼈 골절 등의 상해를 입혀 불구속 기소된 상태였다. 김훈은 B씨를 찾아가 처벌불원서 제출이나 고소 취하를 요구하는 등의 시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상해 사건을 무마하려던 김훈이 뜻대로 되지 않자 보복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김훈 측은 지난달 9일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형사1부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사건 당시 약물 복용에 따른 심신미약 상태로 '우발적 범행'이었음을 주장했다. 보복살인죄가 인정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반면 일반 살인죄의 최소 형량은 징역 5년이다.

이 사건은 무엇보다 가해자에 대한 공권력의 안일한 대처를 드러내 공분을 샀다. 피해자 B씨는 앞서 경찰에 6차례 신고하고 스마트워치를 소지한 상태였다. 사건 발생 2분 전에도 B씨는 스마트워치를 통해 112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김훈은 스토킹처벌법상 잠정조치 1호(서면 경고)와 2호(100m 이내 접근 금지), 3호(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가 적용된 상태였다. 경기북부경찰청은 구리서를 책임 관할서로 지정하고 구속영장과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유치하는 잠정조치 4호를 신청할 것을 지휘했지만, 이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게다가 김훈은 과거 다른 성범죄 사건으로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는 보호관찰 대상자였다. 그러나 B씨에게 접근해도 관계기관에 아무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 김훈의 전자발찌는 법무부가, 피해자의 스마트워치는 경찰이 각각 관리하면서 두 장치가 연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찰이 김훈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고, 피해자 인근에 접근하면 휴대전화와 관계 기관에 경보가 울리는 '잠정조치 3호의2' 적용을 취하지 않으면서 보호 공백이 더욱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관계당국의 대응이 더뎠고,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못 미쳤다"고 경찰을 질타하며 책임자 감찰 지시를 내렸다.
이같은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은 이후 스토킹 범죄가 있던 장윤기 사건 수사에도 영향을 미쳐,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증폭되고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관계성 범죄'

전문가들은 관계성 범죄가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나다 보니 가해자와 피해자가 초반에 분리되지 않은 채 사건이 은폐·방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적된 피해는 더 큰 사건으로 이어지기 쉽다.
관계성 범죄 신고도 매해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 등 3대 관계성 범죄에 대한 신고는 지난해 43만 9382건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약 23.1% 증가한 수치다. 관계성 범죄 신고는 2023년 33만 9804건, 2024년 35만 6988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유형별로는 지난해 가정폭력이 28만 9368건, 교제폭력이 10만 5327건이었다. 특히 스토킹 신고는 4만 4687건으로 전년 대비 39.9% 급증했다.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경향도 확인된다. 경찰이 지난해 1~7월 살인범죄 사건 388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70건(18.0%)이 범행에 앞서 가정·교제폭력이나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 전력을 갖고 있었다. 관계성 범죄에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예고된 참극으로 이어진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또한 관계성 범죄 피해는 여성에게 더욱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달 30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9077명을 대상으로 2024년 8월부터 2025년 7월까지 조사한 ‘2025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2022년 조사와 비교했을 때, 이별 폭력 피해율은 여성이 54.5%에서 59.6%로 높아진 반면, 남성은 47.4%에서 40.0%로 낮아졌다. 스토킹까지 포함한 신체적·성적·경제적·정서적 유형의 폭력 피해율은 여성 60.5%, 남성 44.1%였다. 이별 전후 스토킹 피해 역시 여성 29.1%, 남성 18.9%로 여성이 1.5배가량 높았다.
스토킹은 직접 찾아오거나 접촉을 시도하는 물리접근형뿐 아니라, 위치추적(GPS)이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감시 등 기술을 이용한 기술매개형으로도 번지고 있었다. 두 유형 모두 여성 피해율이 남성보다 높았다. 스토킹 피해 여성의 38.2%는 다른 폭력이나 통제 등을 함께 겪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강화된 가해자 격리 조치 강구돼야

국회에서는 지난 3월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돼 '피해자보호명령' 제도가 도입됐다. 이에 따라 내년 4월부터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경찰이 신청하거나 검사가 청구하는 등 수사기관을 거쳐야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최근 법무부·성평등가족부·대검찰청·경찰청으로 구성된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는 '스토킹·교제폭력 대응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교제관계에서 나타나는 지배·통제 행위를 처벌하고, 최장 9개월인 스토킹 잠정조치 기간을 연장할 방침이다. 잠정조치는 재판이 끝나기 전이라도 가해자에게 법원이 접근금지 등을 명령하는 임시 보호조치를 의미한다. 또, 보복이나 재범 우려가 높은 고위험 피해자에게는 민간경호와 집 주변 침입·배회 움직임을 감지하는 지능형 CCTV를 지원하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가 남았다.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실질적으로 격리하는 강화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스토킹 피해 신고는 늘고 있지만, 스토킹 피의자 구속률은 2021년 7%에서 2022년 3.3%, 2023년 3.2%로 오히려 낮아졌다. 또한 지난해 경찰은 858건의 전자장치 부착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실제 받아들인 경우는 318건으로 인용률이 37.1%에 그쳤다. 스토킹 행위자에 대한 구치소 유치 신청도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법원 인용률은 2023년 50.9%, 2024년 40.9%, 2025년 34.9%로 낮아졌다. 피해 신고는 늘어도 가해자의 신병을 실제로 확보해 피해자와 분리하는 단계가 좀처럼 이어지지 못하는 셈이다.
4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스토킹 행위자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보고서에서는 피해자가 아닌 행위자 중심의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잠정조치 위반에 대한 엄정한 대응과 함께 전자장치부착·유치조치를 활용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범죄 가해자는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피해자는 그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불안한 생활을 견뎌야 하는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피해자 보호 장치와 함께 가해자를 실질적으로 격리하는 제재가 강화되지 않으면 관계성 범죄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