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살인 폭염'으로 난리인데... 추워서 물에 발도 못 담그는 곳
작성일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곳 '밀양 얼음골'
반대로 겨울엔 되레 따뜻한 김 올라와
입추가 무색하다. 7일 서울 노원구의 기온이 40.2도까지 치솟았다. 서울에서 40도를 넘는 기온이 관측된 것은 2018년 8월 이후 처음이다. 경기 하남은 40.7도, 전남 광양은 40.2도를 찍었다. 6월부터 이달 초까지 폭염일은 전국 평균 14.8일로 1973년 이후 네 번째로 많았고, 열대야는 13.0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이쯤 되면 에어컨 앞을 떠나는 일 자체가 모험이다.

이처럼 살인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만 요즘처럼 뜨거운 날에도 바위틈에 얼음이 맺히는 곳이 있다. 경남 밀양의 얼음골이다.
밀양 남명리 얼음골은 천황산 동북쪽 산줄기의 북쪽 계곡에 자리한다. 오랜 옛날부터 '시례 빙곡'으로 불려온 이곳은 1970년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됐다. 이름값은 확실하다. 얼음이 어는 시기가 한겨울이 아니라 봄부터 여름까지라는 점부터 상식을 배반한다. 대체로 3~4월 바위틈에 얼음이 맺히기 시작해 7월 말에서 8월 초에 가장 많아진다. 삼복더위가 절정일 때 얼음도 절정인 셈이다. 반대로 겨울이 오면 얼음이 얼던 바위틈에서 따뜻한 김이 올라와 계곡물조차 얼지 않는다. 겨울에도 고사리와 이끼가 파랗게 살아있다.
원리를 두고는 여러 설이 있지만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좁은 바위틈을 지나는 공기가 단열팽창하면서 기온이 0도 아래로 떨어져 수증기가 얼음으로 변한다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지하로 스며든 기류가 지하수를 따라 낮은 곳으로 옮겨진 뒤 대기보다 차가운 온도로 지표에 나온다는 해석도 있다. 약 80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긴 응회암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무너져 내린 '너덜' 지형, 그 미로처럼 얽힌 돌무더기 틈이 이 신비의 무대다. 밀양의 신비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숫자로 보면 더 실감 난다. 얼음이 어는 바위틈의 여름 평균 기온은 0.2도. 계곡물은 4~8도를 유지하는 까닭에 발을 담그면 2분을 버티기 어렵다. 40도 폭염과 0.2도 냉기가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하는 것이다.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대구-부산 간 중앙고속도로 밀양나들목에서 나와 24번 국도를 타고 산내면 방향으로 24km쯤 달리면 얼음골교차로가 나온다. 밀양 동쪽 약 25km 지점, 해발 1189m의 천황산 자락이다. 계곡 입구 매표소를 지나면 결빙지까지는 잘 정비된 나무 데크 길로 도보 10~15분. 초입에는 밀양 특산물인 얼음골 사과 조형물이 서 있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대부분 나무 그늘이 우거져 있어 더위를 크게 타지 않고 걸을 수 있다.

문화재 관람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과 군인 700원, 초등학생 400원이다. 6세 이하 어린이와 65세 이상 어르신, 국가유공자, 장애인 등은 신분증과 증빙서류를 내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1000원짜리 한 장으로 천연 냉장고에 입장하는 셈이니 가성비로 이만한 피서지가 드물다.
오르는 길에는 손발을 담가보는 체험장도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물이 워낙 시려 2분을 견디기 힘드니, 호기롭게 발을 담갔다가 비명을 지르는 것도 이곳의 소소한 볼거리다. 결빙지가 가까워질수록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교차하며, 땀이 맺힐 틈도 없이 선선한 바람이 이마를 식힌다. 돌계단이 끝나고 목재계단이 나오면 결빙지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바위틈에 놓인 온도계가 0.5도를 가리키는 광경을 마주하면 한여름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냉기가 제법 강해서 겉옷 한 벌을 챙겨 가는 편이 좋다.

이상기후로 비 오는 날이 늘면서 얼음이 얼어 있는 기간은 예전만큼 길지 않다고 한다. 얼음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계곡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소름이 돋을 만큼 시원한 바람만은 변함없이 불어온다. 동·서·북 세 면을 병풍처럼 두른 기암절벽과 돌밭이 어우러진 풍경도 그 자체로 장관이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인근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도 곁들일 만하다. 1793m 구간을 약 10분간 올라 해발 1020m 상부 승강장에 닿는다. 왕복 요금은 대인 17000원, 청소년 15000원, 소인 14000원이다. 발밑으로 펼쳐지는 영남알프스 능선을 감상한 뒤 다시 얼음골의 냉기 속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40도 폭염을 정면으로 이겨내는 가장 통쾌한 방법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