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다는 경기도 “전세사기 피해 입은 '외국인'도 도와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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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관계없이 주거안정 필요하다는 주장…정부에 제도 개선 촉구
경기도가 국내에 적법하게 체류하는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도 공공임대주택과 금융지원 등 정부의 주요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쳐달라고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지만, 실제 주거 안정에 필요한 지원에서는 국적을 이유로 일부 제한을 받는 현행 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현행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외국인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전세사기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문제는 피해자로 결정된 이후 받을 수 있는 지원에서 발생한다. 내국인 피해자에게 제공되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이나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한 저리 전세자금 대출, 기존 전세대출을 낮은 금리의 상품으로 갈아타는 대환대출 등 주요 지원에서 외국인이 제외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국적과 관계없이 보증금을 잃고 당장 살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특히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피해주택까지 경매나 공매에 넘어가면 주거 불안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실제로 경기도는 외국인과 재외동포가 전세사기피해자등으로 인정된 경우 긴급주거지원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다만 공공임대 우선공급 등 세부적인 지원 제도마다 적용 범위가 달라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지원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이에 경기도는 관련 법률과 지침을 개정해 외국인 피해자에 대한 지원 범위를 확대해 달라고 국토부에 요청했다.
도는 우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외국인 피해자의 피해주택을 매입해 긴급 주거지원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피해자가 살던 집을 공공이 매입할 수 있다면 갑작스럽게 거처를 옮겨야 하는 부담을 줄이고 기존 생활 기반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금융지원 확대도 요청했다. 외국인 피해자 역시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한 저리 전세자금 대출과 기존 전세대출을 갈아타는 대환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 대상에 포함해 달라는 것이다.
“국적보다 실제 생활 기반 봐야”
경기도가 문제를 제기한 핵심은 전세사기 피해의 성격에 있다.
전세사기는 임차인이 계약을 맺고 거주하는 과정에서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주택이 경매·공매에 넘어가면서 보증금을 잃는 피해다. 피해가 발생했을 때 임차인이 한국 국적인지 외국인인지는 보증금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특히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면서 직장이나 학교, 가족 등 생활 기반을 두고 장기간 거주하는 외국인이라면 전세사기 피해 이후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내국인 피해자와 유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경기도는 전세사기피해자법이 피해자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을 들어 국적에 따른 지원 격차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태수 경기도 주택정책과장은 국내에 생활 기반을 둔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도 피해주택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하고 필요한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관계기관과 협의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이미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자체 지원도 시행하고 있다. 전세피해자가 긴급주거지원 대상이 돼 새로운 주거지로 이동할 경우 이사비를 지원하고, 긴급한 생활 안정을 위한 생계비도 지원하는 방식이다. 피해주택의 안전 확보와 긴급한 시설 보수를 위한 별도의 지원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이번 건의가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중앙정부의 법령과 금융지원 기준 등을 함께 손봐야 한다. 외국인 피해자에 대한 지원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할지, 체류 자격이나 국내 거주 기간 등을 어떤 기준으로 적용할지에 대한 추가 논의도 필요하다.

전세사기 지원 확대와 재정 부담의 문제
경기도가 중앙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지방정부가 감당해야 하는 주거·복지 관련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현실도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은 단순히 피해자를 선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긴급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피해주택을 관리하며, 이사비와 생계비 등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실제 재원이 필요하다.
경기도는 이미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대한 긴급 관리 지원을 통해 안전관리와 유지보수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임대인의 소재가 불명확하거나 연락이 끊긴 피해주택을 대상으로 소방안전관리와 승강기 유지관리 등의 비용을 지원하고, 긴급한 보수가 필요한 경우 공용부분은 최대 2000만원, 전유부분은 최대 500만원까지 지원하는 사업도 운영한다.
이처럼 피해자 지원을 확대할수록 지방정부가 실제 현장에서 부담해야 하는 행정·재정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최근 경기도의 재정 구조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 내놓고 있다. 추 지사는 9일 페이스북에 ‘경기도 부자 착시현상의 원인’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경기도의 지역내총생산(GRDP)이 크게 늘더라도 그만큼 지방정부의 세입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며 지방재정 구조의 문제를 지적했다.
경기도에는 반도체를 비롯한 대규모 산업시설이 밀집해 있어 지역 경제 규모는 크지만, 산업 성장에 필요한 도로와 생활 인프라, 소방 등 각종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비용 역시 지방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추 지사의 주장이다.
추 지사는 특히 경기도에서 산업과 인구가 증가하면서 소방 수요와 관련한 비용도 커지지만 이에 대응하는 재원이 충분히 따라오지 않는 구조를 문제로 들었다.
앞서 추 지사는 국가직으로 전환된 소방공무원의 인건비 상당 부분을 지방정부가 부담하는 현실도 지적하며 지방정부가 실제로 부담하는 사무와 비용에 맞춰 재원이 배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가 부자라는데 왜 재정은 부족할까”
추 지사가 강조하는 것은 이른바 ‘경기도 부자 착시’다.
경기도의 GRDP가 높다는 것은 경기도 안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경제 규모가 크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역에서 경제활동이 활발하다는 사실과 경기도청의 가용 재원이 충분하다는 것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기업이 벌어들이는 소득과 기업이 납부하는 세금 가운데 상당 부분은 국가세와 다른 세목으로 귀속된다. 지방정부가 모든 경제활동의 세수를 그대로 가져가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지방정부는 인구가 늘어나면 도로와 교통, 환경, 소방, 복지, 각종 생활 인프라에 대한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 산업시설이 증가해도 행정과 안전을 위한 비용은 함께 커진다.
추 지사는 이런 구조를 ‘부담이 있는 곳에 재원이 따라가지 않는 문제’로 보고 지방재정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는 실제로 올해 재정 상황을 비상 상황으로 보고 감액 추경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도는 약 7700억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안을 마련했으며, 이후 새 도정의 정책 방향과 민생 영향을 반영해 감액 사업을 다시 검토하는 과정도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