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괘씸죄 추가요”…하영 ‘냉장고 5대’ 발언까지 파묘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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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 한 번에 무너지는 신뢰, 연예인의 '괘씸죄'란 무엇인가
과거 발언까지 파묘되는 이유, 첫 대응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연예계에는 형법전에도, 방송 심의 규정에도 없는 죄가 하나 있다. 이른바 ‘괘씸죄’다.

배우 하영이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제작발표회에 참석하고 있다 / 뉴스1
배우 하영이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제작발표회에 참석하고 있다 / 뉴스1

잘못의 객관적인 크기와 별개로 대중을 속이거나 책임을 피하려 했다는 인상을 줄 때 추가되는 감정적 형벌이다. 최초의 논란보다 이후 내놓은 해명 때문에 여론이 더 악화하고, 사과문을 발표한 뒤에는 과거 발언과 방송 장면까지 잇따라 소환된다. 법적인 처분이나 공식 징계가 없어도 광고와 방송, 작품 활동에는 긴 꼬리표가 남는다.

최근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으로 논란에 휩싸인 배우 하영도 ‘괘씸죄’의 한복판에 섰다. 소속사가 관련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가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한 데 이어, 하영이 방송에서 공개했던 ‘4대째 의사 집안’과 ‘본가 냉장고 5대’ 이야기도 다시 퍼지고 있다. 대중은 왜 최초의 논란보다 해명과 과거 발언에 더 크게 분노하는 것일까.

‘4대째 의사 집안’에서 시작…“사실무근” 해명이 불붙였다

논란의 출발점은 하영이 방송과 인터뷰에서 직접 공개한 가족사였다. 하영은 자신의 집안이 4대째 의사 가문이라고 소개하며 증조부가 일본에서 서양의학을 공부한 뒤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열었고,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해당 가족사는 하영의 성장 배경과 반듯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여러 차례 소비됐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해당 인물이 의사 안상호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록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등장한 과거 행적도 함께 알려졌다. 대정친목회는 일제의 통치를 인정하고 내선융화를 내세운 친일 성격의 단체로 거론된다.

논란 초기 하영의 소속사는 관련 의혹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하루 만에 추가 확인 결과 안상호의 이름이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실제로 기재돼 있다고 밝히며 입장을 뒤집었다.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답변해 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소속사 뒤에서 침묵하던 하영도 뒤늦게 자필 사과문을 통해 가족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라는 뼈아픈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한 점을 반성한다며 앞으로 가족의 역사와 당시 시대를 제대로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대중의 반감이 커진 결정적인 지점은 입장 번복이었다. 관련 내용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설명과 의혹을 단호하게 부인한 초기 대응이 맞물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확인된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 설명했다면 줄일 수 있었던 혼란이 ‘사실무근’이라는 단정적인 표현으로 더욱 커졌다. 논란의 시작은 과거 기록이었지만 분노의 방향은 점차 현재의 대응으로 옮겨갔다. 제대로 알지 못한 가족사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활용하고, 문제가 제기되자 충분한 확인 없이 부인했다는 흐름이 대중의 배신감을 키웠다. 실제 논란에 ‘괘씸죄’가 추가된 순간이었다.

“집에 냉장고만 5대”…과거 방송 장면까지 ‘파묘’

배우 하영이 2025년 1월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배우 하영이 2025년 1월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입장 번복으로 불신이 커지자 하영의 과거 발언과 방송 장면도 잇따라 재조명됐다. 가장 크게 확산한 것은 지난해 5월 방송된 KBS2 ‘신상출시 편스토랑’의 한 장면이었다. 당시 자취를 시작한 하영은 본가를 찾아 식재료를 챙기며 “집에 냉장고가 5대나 있다”고 밝혔다. 집 안에 있던 음식을 가져가면서 “내가 가져가도 아무도 모른다”, “안 먹어서 맨날 썩는다”고 말했고, 하영의 모친도 필요한 식재료를 모두 가져가라고 권했다.

방송 당시에는 넉넉한 본가에서 식재료를 챙겨가는 딸과 이를 흔쾌히 내주는 어머니의 유쾌한 일상으로 소비됐다. 그러나 증조부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뒤 같은 장면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받아들여졌다. ‘4대째 의사 집안’, ‘냉장고 5대’, ‘먹지 않아 음식이 썩는다’는 표현이 하나로 묶이면서 하영의 이른바 ‘금수저 생활상’이라는 제목으로 빠르게 퍼졌다.

광복절을 앞둔 시점에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함께 조명되면서 감정적인 대비는 더욱 선명해졌다. 2018년 국가보훈대상자 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후손 3대까지의 75.9%가 비경제활동인구였으며, 66%는 신고소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에서는 이러한 통계와 하영의 과거 방송 장면을 나란히 놓으며 씁쓸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다만 하영 가족의 현재 경제력과 증조부의 과거 행적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냉장고가 5대라는 사실만으로 집안의 재산 형성 과정까지 판단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해당 장면이 거센 역풍을 맞은 것은 역사적 박탈감과 불공정에 대한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웃음을 줬던 말이 논란 이후에는 풍족한 생활을 과시하는 발언처럼 다시 읽혔다. 한번 신뢰가 무너지면 당시에는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말과 행동까지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는 ‘괘씸죄’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다.

연예인은 작품과 함께 자신의 ‘이미지’를 판다

연예인은 연기와 노래, 예능감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방송에서 보여준 말투와 태도, 가치관, 가족 이야기와 일상까지 하나의 이미지로 묶여 소비된다. 배우는 작품 밖에서도 인터뷰와 예능, 광고, SNS를 통해 실제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예능에서는 집과 가족을 공개해 친근함을 얻고, 광고에서는 자신의 신뢰도를 빌려 특정 제품을 권한다. 대중은 영화표를 사고 유료 콘텐츠를 구독하며 광고 제품을 구매한다. 시간과 돈뿐 아니라 정서적인 신뢰까지 투자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면 “좋아했는데 실망했다”, “믿었는데 속은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연기력과 사생활을 분리해 바라보려는 시선도 있지만, 실제 모습까지 이미지로 활용해 인기를 얻은 연예인은 직업과 사생활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좁을 수밖에 없다. 하영의 ‘4대째 의사 집안’도 단순한 사적 정보로만 머물지 않았다. 방송과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소개되며 하영의 성장 환경과 이미지를 구성하는 하나의 서사가 됐다. 본가 냉장고 5대 역시 유명 배우의 풍족하고 흥미로운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소재로 활용됐다.

대중이 문제 삼은 핵심도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다는 사실 자체는 아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가족사는 적극적으로 공개했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적 맥락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인상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는 데 활용한 이야기라면 불편한 기록이 발견됐을 때도 신중하게 확인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뒤따랐다. 연예계에서 ‘괘씸죄’는 이미지로 얻은 이익과 논란 이후 감당한 책임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무거워진다. 대중에게 자신을 보여주며 얻은 신뢰가 크다면, 그 신뢰가 흔들렸을 때 돌아오는 실망도 커진다.

최초의 논란보다 ‘두 번째 대응’이 더 큰 화를 부른다

하영이 뒤늦게 올린 자필 사과문 / 하영 인스타그램
하영이 뒤늦게 올린 자필 사과문 / 하영 인스타그램

대중이 모든 실수를 같은 강도로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책임질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논란이 비교적 빠르게 잦아들기도 한다. 반대로 처음에는 전면 부인했다가 추가 자료가 나온 뒤 말을 바꾸거나 자신의 책임을 소속사와 담당자에게 돌리면 반감은 더욱 커진다.

위기 대응에서 가장 위험한 표현 가운데 하나가 ‘사실무근’이다. 짧고 강력해 당장의 논란을 차단하는 데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록 하나만 추가로 확인돼도 해명 전체의 신뢰가 무너진다. ‘사실무근’이 하루 만에 ‘관련 기록 확인’으로 바뀌면 대중은 단순한 착오보다 숨기거나 축소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먼저 의심한다.

하영 측은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답변했다고 인정했다. 하영도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 상태에서 소속사를 통해 입장이 전달됐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의도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확인 부족에서 비롯된 대응이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중의 평가는 의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연예인과 이미지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소속사가 민감한 역사 문제에 공식 입장을 내면서 기본적인 기록을 먼저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책임의 일부라고 보기 때문이다.

연예인의 위기는 대개 사건과 대응이라는 두 단계로 전개된다. 사건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지만 이후 어떤 표현을 선택하고 무엇을 인정할지는 현재의 판단이다. 실수는 일회성일 수 있어도 성급한 부인과 책임 회피는 태도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대중이 최초의 논란보다 두 번째 대응에 더 엄격한 이유다.

광고·방송계까지 불똥…‘괘씸죄’는 행동으로 지워야 한다

드라마 '이런 엿같은 사랑' 스틸 / 넷플릭스 코리아
드라마 '이런 엿같은 사랑' 스틸 / 넷플릭스 코리아

연예계의 ‘괘씸죄’가 무겁게 체감되는 이유는 악화한 여론이 곧바로 경제적 불이익과 활동 차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논란이 확산한 뒤 하영의 가족사 발언이 담긴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회차는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단됐고, 일부 광고 영상도 비공개로 전환됐다. 현재 출연 중인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의 홍보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다. 하영과 정해인이 출연한 유튜브 홍보 콘텐츠의 후속 영상 공개가 미뤄졌으며, 14일 예정됐던 두 배우의 작품 인터뷰도 취소됐다. 인터뷰가 하영의 가족사 논란에 관한 질문으로 집중될 가능성을 고려한 결정으로 알려졌다.

불똥은 차기작인 SBS 새 드라마 ‘승산 있습니다’로도 번졌다. 이제훈과 하영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승산 없는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명랑 코믹 법조 탐정물로, 이미 상당 부분 촬영이 진행된 상태다. SBS 측은 해당 사안을 인지하고 있으며 현재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영의 하차나 재촬영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논란이 장기화할 경우 작품 홍보와 편성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공식적인 징계 절차가 내려지기 전에 방송사와 광고주, 플랫폼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모델의 이미지가 브랜드 평판과 직결되는 만큼, 논란이 제품과 작품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콘텐츠를 내리거나 홍보 일정을 변경한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 여론은 광고 공개 여부와 방송 편성, 현재 작품의 홍보와 차기작 일정까지 좌우하는 사실상의 시장 평가로 작동한다. 결국 한 사람의 대응 실패가 아무 관련 없는 작품과 동료들에게까지 예기치 않은 부담을 안기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번 붙은 ‘괘씸죄’에서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정답은 화려하게 다듬은 사과문이나 빠른 이미지 전환이 아니다. 논란이 커진 원인을 정확히 짚고 이후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이 먼저다. 확인이 필요한 사안은 충분히 살핀 뒤 입장을 내고, 잘못 말하거나 판단한 부분은 구체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활동을 중단한 기간이 길다고 진정성이 자동으로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과 전후의 태도가 실제로 달라졌는지, 자신이 내놓은 약속을 이후의 행동으로 지켜냈는지다.

대중이 연예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꺼낼 때와 불리한 사실을 마주할 때 같은 기준을 유지하는 태도다. ‘괘씸죄’는 한순간에 추가되지만 이를 지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건 잘 쓴 사과문 한 장이 아니라 그다음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행동이다. 대중은 실수의 순간보다, 그 뒤에 드러난 태도를 더 오래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