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명성황후 시해 가담자 소개로...” 급기야 이런 의혹까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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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일본인 여성 혼인, 을미사변 가담자가 연결고리”

증조부의 친일 의혹에 휩싸인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33)의 증조부 안상호가 일본인 여성과 혼인하는 과정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 가담자가 연결고리로 등장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안상호와 그의 일본인 부인 가와구치 이소코의 혼인, 그리고 귀국 과정에 조선인 구연수(具然壽)가 등장한다고 일요신문이 14일 인터넷판으로 보도했다.

배우 하영 / 하영 인스타그램
배우 하영 / 하영 인스타그램

구연수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에 가담한 인물이다. 매체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은 학회지와 의학계 문헌에서 확인된다.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학회지 53호(2007년 발간)에 실린 이정은 당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논문 '최초의 근대 개업의 안상호의 생애와 활동'에 관련 서술이 담겼다. 해당 논문은 안상호가 일본 도쿄에 있던 의친왕 이강의 저택을 자주 드나들며 그곳에서 사무를 보던 가와구치와 알게 됐다고 기록했다. 논문에는 "두 사람 사이를 일본에서 망명하고 있던 구연수가 소개해 마침내 결혼하게 됐다"고 적혀 있다.

구연수는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 당시 일본 자객의 궁궐 진입과 명성황후 시해 과정에 관여한 조선인 출신 협조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반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파 99인'에는 구연수가 살해된 명성황후의 시신 소각을 감독했다는 내용도 서술돼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구연수란 이름은 1899년 7월 12일 주한 일본공사 하야시가 일본 외무대신 아오키에게 보낸 문서의 별지에서도 거론된다. 이 문서에는 구연수가 "1895년 10월 8일 '왕비 시해 사변' 당시 대원군에 동조해 궁에 들어간 일본인 장사(壯士)들과 함께 흉행(兇行)한 자"로 기록돼 있다. 구연수는 사변 직후인 1895년 11월부터 다른 시해 가담자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망명 생활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매체가 공개한 논문 캡처 이미지에는 안상호와 가와구치의 혼인에 구연수가 관여했다는 대목과 함께 안상호의 이력이 정리돼 있다. 이미지에는 안상호가 1883년 무과에 급제하고 1892년 훈련국 주사에 임명된 뒤 1894년과 1895년 사이 관직을 옮겨 다녔으며, 1895년 일본으로 건너간 뒤 1896년 일본 각 대학의 의사가 됐고 1907년 귀국한 과정이 연도별로 담겼다.

배우 하영 / 하영 인스타그램
배우 하영 / 하영 인스타그램

구연수는 1907년 5월 귀국한 뒤 친일단체인 일진회 평의원으로 활동했고 울도군수에 임명됐다. 같은 해 7월 경무사에 올랐다가 8월 경시부감으로 자리를 옮겼다. 1910년 7월 통감부 경무관에 임명된 그는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경무관으로 재직했다. 이완용과 함께 대표적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꼽히는 송병준의 사위였으며, 말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맡았다.

매체에 따르면 구연수와 안상호 부부 사이의 접점은 또 다른 문헌에서도 확인됐다. 한국 근현대 의학계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이지만 친일단체 활동 이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정구충의 책 '한국 의학의 개척자'(1985)다. 매체가 확보한 이 책에 따르면 안상호의 아내 가와구치 이소코는 본래 일본 모리가(毛利家) 공신의 딸이다. 상류층 집안에 들어가 예법과 생활 풍습을 익히는 당대 일본 관습에 따라 의친왕저에 갔다가 구연수의 소개로 그곳에서 사무를 보게 됐고, 그 인연이 안상호와의 결혼으로 이어졌다.

매체가 함께 공개한 책의 일부엔 "부인이 먼저 서울에 와 구연수 경무사(具然壽 警務使, 지금의 치안국장) 집에서 해관(안상호)의 귀국 준비를 하였다"는 대목이 담겨 있다. 이어 "안 여사는 원래 일본 모리가 공신의 딸로 공경대부나 반주나 가노(家老)집에 예의견습을 가는 여자들의 풍습으로 의친왕저에 갔다가 구연수의 소개로 의친왕저에서 사무를 보게 됐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해관과 결혼하였던 것이다"라는 서술도 적혀 있다.

매체에 따르면 가와구치는 1907년 3월 안상호의 귀국에 앞서 먼저 한국으로 넘어와 남편의 귀국 준비를 도왔는데, 당시 그가 머물던 곳이 지금의 서울에 있던 구연수의 자택이었다고 책은 서술한다. 정구충은 책에서 1974년 12월 24일 가와구치 이소코를 직접 만나 안상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앞서 하영의 아버지는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책을 언급하며 "조부(안상호)께서 일본인 여성과 혼인하게 된 배경은 의친왕께서 일본 동경에 머물 때 그곳에서 시무를 보던 여성을 소개해줘 결혼으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안다. 일본 여성과의 혼인 자체를 친일과 연결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