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다 비껴갔는데…연휴 끝나고 한국 날씨,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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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태풍에 한반도 주변 기압계 급변
한반도 남쪽 바다가 예년보다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태풍과 열대저압부가 잇따라 만들어지고, 그 여파로 한반도 주변 기압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태풍은 한반도를 비껴갔지만 남은 비구름이 밀려들면서 광복절 연휴 내내 남해안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경남 거제와 통영은 관측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비가 그친 뒤에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인데, 흔들렸던 기압계가 재정비되면서 연휴가 끝나는 대로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크다.

뜨거워진 남쪽 바다, 태풍 공장으로 변했다
한반도 남쪽 먼바다 수온이 평년보다 높은 29도 안팎까지 올라섰다. 데워진 바다가 열대 저기압을 잇달아 만들어내는 발원지가 되면서 이번 여름 태풍과 열대저압부가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중국에 상륙한 뒤 소멸한 제13호 태풍 돌핀을 시작으로, 일본을 지나며 세력이 약해진 제15호 태풍 찬홈, 바다 위에서 일생을 마친 제16호 페이러우, 그리고 제17호 태풍 낭카까지 짧은 기간 안에 줄줄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태풍이 잇따라 생기면서 한반도 주변 기압계는 크게 출렁이는 상태다. 태풍이 끌어올린 막대한 양의 열대 수증기가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와 부딪히면, 한반도 상공에는 대기가 불안정해지는 통로가 만들어진다. 태풍 자체는 한반도를 비껴가더라도, 남은 비구름이 밀려들면서 곳곳에 갑작스러운 국지성 호우를 뿌리는 구조다.
강혜미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먼 남쪽 해상에서 태풍과 열대저압부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한반도 주변 기압계가 무척 불안정한 상태다. 특히 태풍이 남긴 비구름이 수증기를 품고 한반도에 영향을 주면서 대기 불안정이 더 심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경남 거제,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물폭탄
이번 광복절 연휴 기간 남해안에 쏟아진 비는 기록적인 수준이었다. 경남 거제에는 17일 오후 1시까지 577.4㎜의 비가 내렸는데, 이는 1972년 1월 24일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거제 지역 일강수량 최고치다. 전국 97개 종관기상관측지점을 통틀어도 역대 일강수량 3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거제보다 많은 비가 내렸던 사례는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 상륙 당시 강릉(870.5㎜)과 대관령(712.5㎜) 단 두 곳뿐이었다.
인접한 통영도 같은 시각까지 409.7㎜가 쌓이며 1968년 1월 1일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거제에서는 17일 오전 1시 32분부터 한 시간 동안 124.5㎜가 쏟아지는 이른바 '극한호우'까지 나타났는데, 2001년 7월 5일 세워진 종전 기록 96.5㎜를 크게 웃도는 수치였다. 같은 날 거제 일운면 서이말에서는 자정 21분부터 한 시간에 100.5㎜,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서는 오전 2시 59분부터 한 시간에 101.5㎜가 각각 관측됐는데, 올여름 들어 시간당 100㎜를 넘긴 것은 이 두 곳이 처음이었다. 통영 역시 오전 5시 11분부터 한 시간 동안 97.4㎜가 내려 관측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기상청은 거제와 통영에 각각 200년,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의 비가 내렸다고 밝혔다.

광복절부터 17일 오후 1시까지 누적 강수량을 보면 거제 851.1㎜, 통영 704.8㎜, 가덕도 441.0㎜, 경남 사천(삼천포) 380.5㎜, 제주 한라산(남벽) 377.0㎜로, 남해안과 제주 산지에 비가 집중됐다. 거제와 통영의 평년(1991~2020년 평균) 여름철 강수량이 각각 935.1㎜, 728.8㎜인 점을 고려하면, 두 지역은 여름 한 철 내릴 비의 90% 이상을 사흘도 안 되는 기간에 맞은 셈이다. 이후 집계에서는 거제의 하루 강수량이 633.2㎜로 역대 세 번째 기록을 세웠고, 이틀 누적으로는 90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폭우는 제13호 태풍 돌핀이 약화한 저기압이 남서쪽에서 접근해 북동진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북반구에서는 저기압 주변으로 반시계 방향 바람이 불기 때문에, 저기압이 다가올수록 남쪽에서 고온다습한 바람이 유입됐고, 이 바람이 지형과 부딪힌 남해안·제주 지역에 비가 집중됐다. 저기압이 한반도에 가까워질수록 북동쪽 고기압과의 거리도 좁혀지면서 그 사이 바람길이 좁아졌고, 이 때문에 남풍이 거세지며 강수량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불어났다. 27~28도로 높았던 남해 해수면 온도도 남풍에 실려 오는 수증기량을 늘린 요인으로 꼽힌다.
거제에는 산사태 경보, 창원과 통영에는 산사태 주의보가 발령됐다. 지반이 약해진 상태인 만큼 산림 주변 접근을 삼가고, 토사가 흘러내리거나 땅이 울리는 조짐이 보이면 즉시 대피해야 한다는 게 기상 당국의 설명이다. 거제와 강서구에서는 시간당 100㎜가 넘는 극한호우로 긴급재난문자도 발송됐다.
비 그쳐도 안심 금물…폭염·열대야 재개 조짐
17일 오후 1시 50분 기준 극한호우를 뿌린 비구름대는 대체로 한반도를 빠져나갔다. 다만 경남과 제주에는 이날 밤까지 비가 오락가락할 전망이고, 중부지방과 호남, 경북에도 소나기가 지나는 곳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거제에 내려졌던 호우경보는 주의보로 낮아졌고, 통영·고성·제주에는 호우주의보가 이어지고 있다. 남부지방은 18일 아침까지 경남 남해안을 중심으로 5~30㎜ 비가 더 내릴 전망이다.
문제는 비가 그친 뒤다. 태풍이 남긴 비구름이 호우를 쏟고 지나가면 열대 수증기가 한반도 상공에 축적되고, 이후 기압계가 재정비되면서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기상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재정 케이웨더 예보팀장은 "보통 태풍이 북상하면 주변 기압계가 심하게 흔들렸다가 다시 재정비되는 패턴을 보인다. 최근 태풍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연휴 뒤에는 흔들렸던 기압계가 조금씩 다시 정상을 되찾으며 폭염과 열대야, 소낙성 강수가 나타날 가능성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화요일부터는 덥고 습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낮 기온이 33도 안팎까지 오를 전망이다. 일부 도심과 해안 지역은 밤에도 기온이 25도를 웃돌아 열대야가 나타나는 곳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가 그친 뒤에도 대기 불안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아, 오후 한때 호남과 영남 지역에는 벼락과 돌풍을 동반한 소나기가 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주 날씨, 구름 많고 무더위 지속
기상청에 따르면 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은 전국적으로 구름이 많이 끼며 무더위가 이어질 전망이다. 18일에는 중부지방에 구름이 많고 남부지방과 제주도는 흐리겠다. 이른 새벽부터 아침 사이 경상권과 전남 남해안에 비가 예상되고, 제주도는 오후까지 비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오후에는 남부지방 일부 지역에 소나기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예상 강수량은 대구·경북 남부와 부산·울산·경남이 5~30㎜, 전남 남해안과 울릉도·독도, 제주도는 5~20㎜다. 소나기에 의한 강수량은 전북 남동부, 광주·전남, 대구·경북 남부, 부산·울산·경남에서 5~20㎜로 예보됐다.
19일부터 21일까지는 전국에 구름이 많은 날씨가 이어질 전망이다. 기온은 18일 아침 최저 21~25도, 낮 최고 30~33도, 19일은 아침 최저 21~25도, 낮 최고 29~33도, 20일은 아침 최저 21~25도, 낮 최고 28~33도, 21일은 아침 최저 22~25도, 낮 최고 29~34도로 예보됐다. 연이은 태풍으로 흔들렸던 기압계가 다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지성 소나기와 무더위가 당분간 번갈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