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해도 좋다”…출근길 지하철 시위 또 시작한 전장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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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권 침해된 장애인, 시민 불편 사이의 딜레마
수십 년 미해결 과제, 지하철 시위로 표출된 이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이끌어온 박경석 공동상임대표가 '출근길 시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출근길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수년째 시민들의 찬반 논쟁을 불러왔지만, 정작 그 시위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장애인들이 말하는 ‘이동권’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박 대표는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자신의 삶과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시작, 그리고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18일, 뉴시스 관련 인터뷰를 보도했다.

행글라이더 사고로 갑자기 장애인이 된 청년

비장애인으로 군 복무까지 마친 박 대표의 삶이 크게 달라진 것은 젊은 시절 행글라이딩 사고를 겪으면서다. 여름방학을 맞아 행글라이딩을 하던 중 추락하면서 장애를 갖게 됐고, 이후 약 5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갑작스럽게 장애를 받아들여야 했던 그에게 세상으로 다시 나오는 계기가 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함께 열린 서울패럴림픽이었다. 당시 장애인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장애인복지관 등을 통해 다양한 교육과 지원이 이뤄졌다.

박 대표는 복지관에서 컴퓨터 관련 기술을 배웠지만 취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복지관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개로 장애인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야학의 교사가 됐다.

그가 장애인 인권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의외로 ‘이동’이었다.

1999년 야학에 다니던 한 여학생이 연극을 보러 가기 위해 혜화역으로 이동하던 중 장애인용 리프트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며칠 뒤에는 천호동에서도 또 다른 야학 학생이 리프트에서 추락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대표를 비롯한 소속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69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2026.7.2/뉴스1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대표를 비롯한 소속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69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2026.7.2/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대표를 비롯한 소속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69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2026.7.2/뉴스1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대표를 비롯한 소속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69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2026.7.2/뉴스1

당시 장애인이 지하철역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 대신 장애인용 리프트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리프트는 안전사고 위험이 컸고, 설치되지 않은 역에서는 아예 지하철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박 대표는 이때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전국적인 사회 의제로 떠오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박 대표가 깨달은 것도 이때였다.

장애인이 학교에서 공부하기 어렵고, 직업을 갖기 어렵고, 사회에 나와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어려운 문제가 단순히 교육이나 고용의 문제가 아니라 ‘이동할 수 있느냐’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직장에도 갈 수 없다. 병원이나 문화시설, 관공서에도 접근하기 어렵다. 결국 이동의 제한은 교육·노동·의료·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애인 이동권은 ‘지하철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애인 이동권은 단순히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는 요구에 그치지 않는다.

버스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휠체어 이용자가 이동할 수 있는 보행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장거리 이동이 필요한 경우에는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특별교통수단은 휠체어 탑승설비 등을 갖춘 차량으로, 일반적인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교통약자의 이동을 돕기 위해 운영된다. 장애인 이동권 논쟁에서 ‘장애인 콜택시’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장애인이 이동해야 하는 상황과 실제 이용 가능한 교통수단 사이에 여전히 간극이 있다는 점이다.

특별교통수단은 지역별 운영 여건과 차량 수, 운전원 확보 상황 등에 따라 대기시간이 발생할 수 있다. 장애인 단체들이 단순히 차량 숫자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운전원 인력과 예산, 광역 이동을 포함한 운영체계까지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4호선 서울역에서 '72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하고 있다. 2026.8.18/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4호선 서울역에서 '72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하고 있다. 2026.8.18/뉴스1

버스 역시 중요한 문제다. 저상버스는 계단 대신 경사판이나 리프트 등을 통해 휠체어 이용자가 승하차할 수 있도록 만든 차량이다. 하지만 저상버스가 있다고 해서 모든 장애인이 언제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류장의 구조, 도로와 보도의 상태, 운전자의 정차 위치, 혼잡도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

전장연은 최근 지하철뿐 아니라 버스 탑승 시위도 병행하고 있다. 올해 7월에는 22년 만에 정기적인 버스 탑승 시위를 재개하면서 저상버스 확대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지하철 시위가 ‘열차를 멈추는 방식’에 집중돼 논란이 됐다면, 버스 시위는 장애인이 실제 도로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둘러싼 문제까지 논쟁의 범위를 넓힌 셈이다.

2021년 출근길 시위, 왜 하필 지하철이었나

현재 많은 시민이 기억하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본격화된 것은 2021년이다.

박 대표에 따르면 당시 국회에서 다음 해 예산안이 논의되는 시기이자 세계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을 맞아 국회에서 1박2일 집회를 열었다. 이후 참가자들이 기획재정부 장관이 거주하던 마포구 공덕동으로 이동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출근시간대 지하철을 이용하게 됐다.

처음부터 장기간 지하철 시위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경찰과 충돌했고,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겪는 현실을 직접 알리기 위해 출근시간대 지하철 탑승을 이어가게 됐다는 것이다.

이후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라는 이름의 시위는 전장연의 대표적인 행동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전장연은 올해 초에도 민주당 측의 정치적 해결 노력 제안을 받아들여 약 6개월간 지하철 탑승 시위를 중단했다. 그러나 장애인 권리예산 등을 둘러싼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7월부터 다시 탑승 시위를 시작했다. 7월 2일에는 시청역에서 서울역까지 한 정거장을 이동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재개했고, 당시에는 출근 혼잡을 피해 큰 혼선이 발생하지 않았다.

8월 들어서는 매주 월요일 오전 혜화역에서 탑승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8월 3일에는 노량진역과 혜화역에서 시위가 벌어지면서 일부 열차가 안전을 이유로 해당 역을 무정차 통과하는 등 실제 운행 차질도 발생했다.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전장연의 요구가 장애인의 기본적인 이동권과 사회 참여를 위한 것이라는 점과 별개로, 시위 방식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

출근시간대 지하철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이 직장과 학교로 이동하기 위해 의존하는 생활 기반시설이다. 열차가 지연되거나 특정 역을 무정차 통과하면 시민들은 출근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야 한다.

특히 시위 과정에서 열차 운행 자체가 지연되면 장애인 정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시민이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올해 8월 3일에는 시위로 인해 노량진역과 혜화역 일부 열차가 일정 시간 무정차 통과했다.

이 때문에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알리더라도 다른 시민의 이동권을 침해하는 방식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반대로 전장연 측은 다른 방식으로 수십 년간 요구해도 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실제 불편을 겪는 공간에서 문제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논쟁은 ‘장애인 이동권이 필요한가’라는 단순한 질문보다 ‘그 권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시민 불편까지 감수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옮겨간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4호선 서울역에서 '72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하고 있다. 2026.8.18/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4호선 서울역에서 '72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하고 있다. 2026.8.18/뉴스1

전장연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장연이 현재 제시하는 요구는 크게 장애인 이동권, 자립생활, 노동권과 관련된 예산과 제도 개선으로 나뉜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의 운전원 인건비에 대한 국비 지원, 장애인 자립 예산 확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복원 등이 대표적이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일반적인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권과 권익 증진 활동 등을 노동의 형태로 인정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서울시가 2020년 시행했지만 2024년 폐지했고, 전장연은 이 과정에서 해고된 중증장애인들의 복직과 사업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올해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서도 이동권만이 아니라 이 같은 장애인 권리예산 문제가 함께 등장한다. 7월 지하철 탑승 시위 당시에도 전장연은 정부에 장애인 권리예산을 반영할 것과 서울시에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즉 시민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지하철 엘리베이터 하나 설치해 달라’는 요구만으로 현재의 시위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장애인이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하고, 시설 밖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더 큰 요구의 틀이다.

“우리를 욕해도 좋다”…박경석이 시민에게 호소한 이유

박 대표도 시민들의 불편을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들 역시 지하철에 탑승할 때 욕을 먹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데 대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위 자체를 중단하는 것만으로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가 시민들에게 요구한 것은 무조건적인 지지가 아니다.

자신들에게 항의하는 것도 이해하지만, 그 분노의 일부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는 문제 제기로 이어졌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전장연 지하철 시위를 둘러싼 논쟁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시민 입장에서는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지연이 현실적인 피해인 반면, 장애인 입장에서는 이동할 수 없는 환경 자체가 매일 지속되는 현실적인 제약이다.

한쪽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다른 쪽의 불편을 외면하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끝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장애인에게 “조금 더 참으라”고 요구하거나 시민들에게 “불편해도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장애인 이동권을 어느 수준까지 보장할 것인지 구체적인 목표와 예산을 제시하고, 시위 방식과 시민 불편을 둘러싼 갈등까지 함께 논의하는 것이 해법에 가까울 수 있다.

박 대표가 말한 “공동체”라는 표현 역시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와 시민이 예측 가능한 시간에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는 서로 충돌해야 하는 가치가 아니다. 정책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비용을 장애인과 시민이 서로 떠안는 상황을 끝내는 것이 결국 행정과 정치의 역할이라는 지적이다.

유튜브, MBC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