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지역 비하, 피해자 조롱...“ 이 대통령 '형사 조치'까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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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vs 혐오 표현, 규제 기준은 어디까지?
피해자 조롱 제재, 해외 사례 검토로 국내법 개선 추진

이재명 대통령이 특정 지역을 비하하거나 특정 사건의 피해자를 조롱하는 표현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실질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외의 관련 법률과 실제 처벌 사례, 판례 등을 검토해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 대통령은 18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법무부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마련한 혐오 표현 제재 방안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특정 지역 비하나 특정 사건 피해자를 조롱하는 것에는 실질적인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이번 발언은 단순히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개인 간 욕설이나 갈등을 넘어 사회적으로 반복되는 혐오 표현을 어떤 방식으로 다뤄야 할지를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혐오 표현은 일반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정체성이나 소속 등을 이유로 비하하거나 차별·적대감을 조장하는 표현을 가리킨다. 다만 모든 공격적이거나 불쾌한 표현이 곧바로 법적 의미의 혐오 표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정책 대전환을 위한 청년정책 전문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8.14/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정책 대전환을 위한 청년정책 전문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8.14/뉴스1

정부가 실제 제도를 마련하려면 무엇을 혐오 표현으로 볼 것인지부터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야 한다. 표현의 내용뿐 아니라 표현이 이뤄진 상황, 대상, 반복성, 실제 피해 발생 여부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개인 간 갈등과 관계를 다루던 과거 방식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 입법례와 처벌 전례, 판례 등을 면밀하게 점검해달라고 당부했다.

강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국무위원들 사이에서는 공적 영역에 있는 정치인들로 인해 혐오 표현이 오히려 확산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에 깊이 공감하면서 사회적으로 적대 문화가 강화되는 것을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강조했다.

이어 유관 부처가 협의해 사전 예방책과 형사 조치 등을 단계적으로 정리해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여기서 사전 예방책은 문제가 되는 표현이 확산된 뒤 처벌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교육이나 홍보, 플랫폼 운영 기준, 피해자 보호 등 사전에 피해를 줄이기 위한 수단을 포괄한다. 형사 조치는 법률에 따라 수사와 재판을 거쳐 형벌을 부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5·18민주화운동 조롱성 응원으로 논란을 빚은 서울 배재고 야구부원과 교사, 일부 학부모 등 80여 명이 6일 광주제일고에 사과 방문해 학생탑에 참배하고 있다. 2026.7.6/뉴스1
5·18민주화운동 조롱성 응원으로 논란을 빚은 서울 배재고 야구부원과 교사, 일부 학부모 등 80여 명이 6일 광주제일고에 사과 방문해 학생탑에 참배하고 있다. 2026.7.6/뉴스1

다만 이날 지시만으로 새로운 범죄가 만들어지거나 특정 표현에 대한 처벌이 즉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관련 제도와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라는 단계다.

혐오 표현 규제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는 표현의 자유와의 관계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고 전달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다. 정치적 의견이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사회적 논쟁이 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 역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혐오 표현을 제재하기 위해 제도를 만들더라도 단순히 정부나 다수의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표현을 처벌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규제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지는 입법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나 정치적 주장과 특정 사건의 피해자를 직접적으로 조롱하는 행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문제다.

예를 들어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해 기존의 평가와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것 자체와 해당 사건의 피해자나 유가족을 대상으로 모욕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동일한 문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라는 조건을 먼저 제시하고 해외 법률과 처벌 전례, 판례를 살펴보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시점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공개포럼을 개최하면서 정치권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이라는 제목의 공개포럼을 열었다. 행사는 이 의원과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새역사국민운동이 공동 주최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8.14/뉴스1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8.14/뉴스1

이영훈 전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저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의원은 포럼 인사말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6년이 됐지만 5·18의 의미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는 5·18이 성역으로 규정되고 말이나 행동을 금하는 터부가 많아지면 자유가 구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성역과 터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신화로 고착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러면서 목격자와 생존자가 있고 관련 자료가 남아 있는 만큼 5·18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통념과 다른 주장이나 불편한 질문이 나오더라도 학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의원의 입장이다.

이 의원은 5·18 유공자의 명단과 구체적인 공적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어 5·18이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포럼에는 국민의힘 손수조 미디어대변인과 장성호 서울 구로을 당협위원장도 참석했다.

이 의원의 포럼 개최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반발했다. 두 정당은 이 의원에 대한 제명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제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해당 행사가 당 차원의 공식 행사가 아니라 이 의원 개인이 개최한 행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현재 정치권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연구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국회의원이 해당 주제를 국회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이 적절한지 등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이진숙 의원이 개최한 5·18 포럼과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혐오 표현 제재 방안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 역시 이 대통령이 혐오 표현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례를 직접 들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해외 입법 사례와 처벌 전례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유관 부처가 관련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한 뒤 보고하도록 지시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실제 제도 변화가 이뤄지려면 관계 부처의 검토와 입법 절차가 필요하다.

우선 정부는 해외에서 혐오 표현을 어떤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를 실제 법률로 어떻게 규제하고 있는지 비교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국내 법원이 명예훼손이나 모욕, 차별과 관련한 사건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왔는지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혐오 표현의 확산을 막는 과정에서 인터넷과 방송 등 미디어 환경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논의될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한 번 만들어진 표현이 짧은 시간에 대규모로 퍼질 수 있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한 이후 삭제하거나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규제 대상이 지나치게 넓어질 경우 정치적 비판이나 사회적 논쟁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향후 내놓을 방안에서는 ‘혐오 표현’과 단순한 비판, 풍자, 정치적 주장, 역사적 해석 등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마련하느냐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관계 부처에 사전 예방책과 형사 조치 등을 단계적으로 정리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향후 정부가 어떤 표현을 규제 대상으로 판단할지, 형사 처벌까지 필요한 행위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처벌 대상이나 새로운 법률이 확정된 상태는 아니다. 향후 법무부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등의 검토 결과와 정부안 마련, 필요한 경우 국회 입법 논의 등을 거쳐 실제 제도화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