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어디까지 괜찮나, 법적으로 괜찮을까?…요즘 K팝 팬문화에 깊숙이 들어온 '이것'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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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셀카부터 성적 합성물까지, AI의 명과 암

좋아하는 아이돌을 실제로 만나지 않고도 함께 찍은 듯한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스타가 한 번도 부르지 않은 노래를 해당 가수와 비슷한 목소리로 만들어 듣는 일도 어렵지 않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팬들이 스타의 얼굴과 목소리를 소비하는 방식까지 바꿔놓고 있다.

요즘 생성형 AI에서는 자신의 사진과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만 있으면 실제로 나란히 셀카를 찍은 듯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포토부스에서 함께 촬영한 것처럼 꾸민 네컷 사진도 가능하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툴로 생성한 자료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툴로 생성한 자료사진.

특정 가수의 목소리를 학습시켜 다른 곡을 부른 것처럼 만드는 AI 커버가 퍼지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팬 놀이가 생긴 한편 다른 질문도 따라붙었다. 실존하는 스타의 얼굴과 목소리를 어디까지 가져다 써도 되는지에 관한 문제다.

만나지도 않았는데 함께 찰칵…AI로 만드는 ‘최애 네컷’

생성형 AI를 이용한 이른바 ‘최애 셀카’는 제작 과정도 복잡하지 않다. 자신의 사진과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입력하고 원하는 상황을 적으면 두 인물이 한 공간에 있는 듯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포토부스에서 같이 찍은 듯한 네컷 사진부터 실제로 찍은 것 같은 셀카사진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얼굴형과 눈·코·입, 머리 모양 등 원본 사진의 특징을 유지하도록 설정하고 조명이나 화질까지 조정하면 실제 촬영물에 가까운 분위기도 낼 수 있다.

예전 팬 합성이 기존 사진을 오려 붙이거나 편집하는 방식에 가까웠다면 생성형 AI에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차이가 있다. 한 장의 사진을 바탕으로 표정이나 자세, 배경까지 바꾼 새로운 이미지가 나올 수 있다.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좋아하는 연예인과의 AI 사진 제작법을 소개한 게시글. / 인스타그램 캡처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좋아하는 연예인과의 AI 사진 제작법을 소개한 게시글. / 인스타그램 캡처

실제로 SNS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최애네컷', 'AI사진'같은 키워드만 검색해도 쉽게 관련 게시글을 찾아볼 수 있다. 특정 댓글을 달면 자연스러운 사진을 만드는 프롬프트를 공유해주는 게시물도 적지 않다.

코르티스 멤버 성현의 사진을 바탕으로 AI툴로 만든 자료사진.
코르티스 멤버 성현의 사진을 바탕으로 AI툴로 만든 자료사진.
코르티스 멤버 성현의 사진을 바탕으로 AI툴로 만든 자료사진.
코르티스 멤버 성현의 사진을 바탕으로 AI툴로 만든 자료사진.
결과물은 생각 이상으로 자연스럽다. 정면을 바라보는 선명한 사진을 사용하면 얼굴 특징이 또렷하게 반영된다. 이에 프롬프트에 따라 실제 촬영한 사진과 비슷한 결과물을 쉽게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연예인의 얼굴이 들어간 AI 사진을 만드는 행위를 모두 같은 선상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결과물을 혼자 보관하는 것과 이를 상품에 넣어 판매하거나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따져볼 지점이 달라진다.

현행 부정경쟁방지법은 국내에 널리 알려져 경제적 가치를 가진 사람의 이름과 초상, 음성 등을 보호 대상으로 두고 있다. 이를 허락 없이 영업에 이용해 당사자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부정경쟁행위가 될 수 있다. 연예인의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도 해당 조항에 포함된다.

실제로 부르지 않은데 진짜 같다…퍼져나간 ‘AI 커버’

목소리를 활용한 AI 콘텐츠는 이미지보다 일찍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AI 커버다.

유튜브, AI 윈터 WINTER

특정 가수의 음성을 AI에 학습시킨 뒤 다른 노래의 보컬에 적용하면 당사자가 녹음한 적 없는 곡도 해당 가수와 비슷한 목소리로 들리게 만들 수 있다. 영상 플랫폼에서는 유명 가수들이 서로의 노래를 부른 것처럼 만든 콘텐츠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 보통사람

AI 커버의 대상은 현재 활동 중인 가수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 4월에는 고 김광석의 목소리로 가수 한로로의 ‘0+0’을 부른 것처럼 만든 AI 커버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돼 관심을 모았다. 제작자는 영상 제목과 설명을 통해 AI로 만든 커버임을 표시했다.

고인이 생전에 부른 적 없는 비교적 최근 곡까지 그의 목소리와 비슷한 음색으로 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가창이 없어도 기존 음성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AI 커버가 어디까지 확장됐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동시에 이미 세상을 떠난 가수의 목소리를 누가, 어떤 범위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도 남는다. 살아 있는 가수와 달리 당사자의 현재 의사를 직접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고인의 음성을 활용한 AI 콘텐츠는 또 다른 권리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유튜브, 이박사-Official

최근에는 AI 커버가 가수 개인의 공식 채널에 올라오는 사례도 등장했다. 지난 12일 가수 이박사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그룹 코르티스의 ‘REDRED’를 이박사가 부른 듯한 목소리로 재구성한 AI 커버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 속 노래는 이박사가 직접 녹음해 부른 버전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그의 음색과 특유의 창법을 구현한 콘텐츠다. 실제 가창 없이도 특정 가수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AI 커버의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사례는 AI로 구현된 당사자의 목소리가 본인의 공식 채널에서도 콘텐츠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AI 커버를 둘러싼 논의에서 목소리를 얼마나 비슷하게 만들었느냐뿐 아니라 당사자가 이를 허용했는지 결과물이 어떤 방식으로 공개되고 활용되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AI 커버는 가수 목소리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기존에 발표된 곡을 가져오면 작사·작곡자의 저작권이 얽힐 수 있고 원래 음원을 직접 사용했다면 음원과 관련된 다른 권리도 검토해야 한다.

특정 가수의 이름이나 목소리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단계까지 가면 해당 음성이 가진 경제적 가치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취미로 만든 콘텐츠와 이를 공개해 조회 수나 수익을 얻는 콘텐츠를 똑같이 보기 어려운 이유다.

‘진짜인가, 가짜인가’…제니 영상이 던진 문제

AI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팬 콘텐츠와 악의적인 조작물을 구별해야 할 필요도 커졌다. 무엇보다 온라인에서 사진과 영상이 퍼지는 속도가 사실 확인보다 빠를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콘텐츠가 빠르게 퍼지는 과정에서 실제 촬영물인지, 별도의 가공을 거친 것인지 확인되지 않은 채 재유통되는 경우도 생긴다.

블랙핑크 멤버 제니(왼)와 제니 소속사에서 낸 입장문(우). / 뉴스1, OA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블랙핑크 멤버 제니(왼)와 제니 소속사에서 낸 입장문(우). / 뉴스1, OA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최근 블랙핑크 제니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났다. 일본 공연 이후 제니의 신체 일부가 노출된 것처럼 보이는 사진과 영상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퍼졌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AI나 별도의 편집 기술이 사용된 조작물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다만 해당 콘텐츠가 실제 AI로 제작됐거나 특정 방식으로 조작됐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제니 소속사 OA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8일 공식 입장을 내고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제니를 향한 악의적 비방과 근거 없는 추측성 게시물, 허위 사실 유포로 명예를 훼손하는 사례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하거나 이동 경로를 따라다니는 등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위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SNS와 온라인 플랫폼 전반을 모니터링하며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으며 법률 자문을 토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대응 범위에는 명예와 권익을 침해하는 행위뿐 아니라 초상권과 기타 지식재산권 침해, 사생활 침해도 포함됐다.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진행하고 이 과정에서 선처나 합의는 없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 사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해당 영상이 정확히 어떤 기술로 만들어졌느냐만은 아니다. 실존 인물의 모습이 변형된 콘텐츠가 온라인에 올라와 빠르게 퍼졌고 그 진위를 두고 여러 추측이 뒤따랐다는 점은 AI 시대 콘텐츠 유통에서 사실 확인이 중요해진 상황을 보여준다.

특히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 음성을 성적인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형사처벌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팬들이 즐기는 일반적인 AI 이미지나 커버 음악과 악의적인 성적 합성물을 같은 종류의 콘텐츠로 묶어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디까지 허용되나…AI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썼느냐’

연예인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AI에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콘텐츠에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혼자 간직하려고 만든 사진과 상품 판매에 활용한 사진은 다르다.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를 흉내 낸 커버곡과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성적으로 왜곡하기 위해 만든 합성물 역시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현행 제도에서도 AI 사용 여부 하나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누구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져왔는지, 당사자의 동의가 있었는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공개하거나 돈을 버는 데 사용했는지 등이 함께 고려된다.

정부와 연예계도 관련 대응을 시작했다. 지식재산처는 올해 주요 연예기획사들과 퍼블리시티권 보호 협의체를 꾸려 연예인의 이름과 얼굴, 목소리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사례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권리 침해에 대한 제도 개선도 논의 대상이다.

올해 시행된 인공지능기본법에는 생성형 AI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결과물이 AI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음향·이미지·영상 등을 제공할 경우에는 이용자가 AI 생성물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고지하거나 표시해야 한다.

현재 제도와 업계 대응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흐름은 비교적 분명하다. 다른 사람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이용할 때 필요한 동의와 이용허락을 확보하고 AI 생성 사실을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표시하고 타인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무단으로 이용한 콘텐츠에 대해서는 권리 보호와 침해 대응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툴로 생성한 자료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툴로 생성한 자료사진.

AI 덕분에 팬들은 좋아하는 스타와 찍은 적 없는 사진을 만들고 실제로 듣지 못했던 목소리의 노래까지 접하게 됐다. 반대로 누군가의 얼굴과 음성으로 당사자가 하지 않은 행동과 말을 만들어내는 일도 이전보다 간단해졌다.

같은 기술이라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K팝 팬문화 안으로 빠르게 들어온 AI를 두고 이제는 ‘만들 수 있느냐’보다 ‘어디까지 만들어도 되느냐’를 따져야 할 단계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