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 재판 끝에 무죄 확정…음주운전했는데도 처벌 못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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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중알코올농도 0.129%로 면허취소 수치
1심 무죄→2심 유죄→대법 파기→파기환송심 무죄→재상고심 무죄 확정
음주운전 단속 과정에서 경찰이 채혈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면 채혈로 확인된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를 형사재판의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최근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재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 씨는 2022년 2월 23일 밤 대전 유성구 한 도로에서 술을 마신 상태로 승용차를 약 250m 운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채혈을 통해 확인된 혈중알코올농도는 0.129%로 면허 취소 기준인 0.08%를 웃돌았다.
10여 차례 호흡 측정 실패…경찰, 결국 채혈 요구

당시 경찰은 A 씨를 상대로 호흡측정기를 이용해 10여 차례 음주 측정을 시도했지만 정상적인 결괏값을 얻지 못했다. 이에 경찰은 혈액을 채취해 혈중알코올농도를 확인하는 방법을 제시했고 A 씨는 채혈 동의서를 작성한 뒤 혈액을 제공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경찰이 A 씨에게 어떤 설명을 했느냐였다. 경찰은 A 씨에게 "호흡 측정을 하든지 혈액 채취를 하든지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혈액 채취 자체는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별도로 알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도로교통법상 운전자는 경찰의 호흡 측정 요구에는 응해야 한다. 그러나 호흡 측정이 아닌 혈액 채취 방식으로 혈중알코올농도를 확인하려면 운전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A 씨 측은 경찰이 이 차이를 정확히 설명하지 않은 만큼 채혈 동의가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1심 무죄→2심 유죄…대법서 다시 뒤집혔다
1심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추운 날씨에 30~40분 동안 10여 차례 호흡 측정에 응한 점 등을 고려하면 경찰이 채혈을 유도한 측면이 있고 A 씨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판단을 달리했다. A 씨가 채혈 동의서를 직접 작성했고 경찰에게도 채혈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점을 근거로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지만 첫 상고심에서는 채혈 절차보다 형량 문제가 먼저 문제가 됐다. A 씨는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고 자신이 정식재판을 청구한 경우였는데 형사소송법상 피고인만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서는 약식명령보다 무거운 종류의 형을 선고할 수 없다. 대법원은 2024년 2월 2심이 벌금형보다 무거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형종 상향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며 판결을 파기했다.
“채혈 거부할 수 있다는 점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
파기환송심은 다시 채혈 과정의 적법성을 따졌다. 재판부는 경찰이 "호흡 측정이나 혈액 채취 가운데 하나에는 무조건 응해야 한다"는 식으로 설명한 것은 A 씨에게 채혈에도 반드시 응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확하지 못한 설명"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았더라도 A 씨가 혈액 채취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에 따라 경찰이 A 씨에게서 받은 혈액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된 증거로 볼 수 없고 해당 혈액을 분석해 만든 혈중알코올농도 감정서 역시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다시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배제해야 한다는 법리에 비춰 파기환송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절차 하나 어겼다고 무죄?…형사재판이 ‘과정’을 따지는 이유

우리 법은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체나 자유를 제한하거나 증거를 확보할 때 일정한 절차를 반드시 지키도록 하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미란다 고지’다.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할 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알려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고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이후 확보한 진술이나 증거의 효력이 문제 될 수 있다.
형사재판에서는 범죄 혐의 자체와 함께 그 혐의를 어떤 방식으로 입증했는지도 따진다. 경찰과 검찰은 체포, 압수수색, 신체검사, 자료 확보 등 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대신 그 권한을 행사할 때는 법이 정한 요건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번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A 씨는 채혈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129%로 측정됐지만, 경찰이 혈액 채취를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따로 알리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됐다. 경찰은 “호흡 측정을 하든지 혈액 채취를 하든지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고 법원은 이런 설명만으로는 A 씨가 채혈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한 수사라면 단순히 “동의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제대로 설명받았는지,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강요나 잘못된 설명 없이 스스로 결정했는지가 중요하다. 겉으로 동의서를 썼더라도 그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적법한 동의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 말하는 것이 절차적 정당성이다. 국가가 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과정에서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법에 맞아야 한다는 의미다. 수사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증거 확보 과정에서 법이 정한 절차를 어겼다면 그 증거는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우리 형사소송법에는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도 있다.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원칙적으로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수사기관이 위법한 방식으로 얻은 자료까지 그대로 인정하면 법이 정해놓은 수사 절차가 사실상 의미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채혈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다. 혈중알코올농도 수치 자체가 틀렸다고 본 것이 아니라, 그 수치를 얻기 위해 확보한 혈액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제출된 증거인지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결국 혈액과 이를 토대로 작성된 감정서까지 유죄 판단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이 원칙 때문에 일반적인 법 감정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의심이나 정황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없고 적법하게 확보된 증거로 범죄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수사기관에 강한 권한을 주는 대신 그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에는 엄격한 기준을 두는 것이다. 한 사건에서 절차 위반을 가볍게 넘기기 시작하면 같은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잘못 의심받은 사람이나 혐의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같은 수사 방식이 쓰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절차를 엄격하게 보는 것이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도 절차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어렵게 확보한 증거라도 수집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재판에서 배제될 수 있다. 수사의 내용 못지않게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 자체가 재판 결과를 좌우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