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강제하려는 민주당, 정작 쿠팡 기사 98% '새벽 배송 금지'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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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권 vs 일할 권리, 새벽배송 규제에 대한 '동상이몽'
새벽배송 등 야간 노동을 법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두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일할 권리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여당이 야간작업 횟수와 시간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하자 쿠팡 택배기사 대부분이 반대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다만 장시간 야간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최소한의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맞서고 있는 것이다.
31일 중앙일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는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영업점 소속 택배기사 3319명을 대상으로 야간작업 제한에 관한 긴급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95.9%가 택배기사의 작업시간을 법으로 제한하는 데 반대한다고 답했다. 야간배송 횟수를 월 최대 12회로 제한하는 방안에는 97.7%, 야간작업 시간을 제한하는 방안에는 97.4%가 반대했다.

이번 논란의 시작은 지난 21일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생활물류서비스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다. 법안은 택배사업자와 교대제 근로자 등 밤이나 새벽에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야간작업을 월 12회 이하, 주 48시간 이하, 하루 10시간 이하로 제한하고 연속 야간작업은 최대 3일까지 허용하는 내용이다.
쉽게 말하면 밤에 일하는 사람이 일정 기간 동안 야간근무를 할 수 있는 횟수와 시간을 법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현재처럼 노동자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야간배송을 많이 하거나 적게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가 정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쟁점은 이 같은 제한이 실제 현장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새벽배송을 선택하는 이유가 단순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낮 시간에 육아나 간병을 해야 하거나 다른 사정이 있어 오히려 밤에 일하는 것이 편한 노동자들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48.8%는 야간배송 시간이 제한돼 소득이 줄어들 경우 택배 외에 다른 일을 병행하겠다고 답했다. 야간근무를 줄이는 것이 곧바로 휴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자리로 이동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장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 노원구에서 새벽배송을 하는 쿠팡 배송기사 옥승민 씨는 오전에 아이를 돌보기 위해 야간근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야간근무를 제한하고 주간배송으로 전환하면 월수입이 100만원 이상 줄어들 수 있어 부족한 소득을 다른 일로 보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산을 앞둔 배송기사의 사정도 비슷하다. 쿠팡 양주3캠프에서 새벽배송을 하는 이명우 씨는 아이가 태어난 뒤 아내와 교대로 육아하기 위해 야간근무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낮에 일하는 것보다 야간배송의 수입이 많아 현재와 같은 물량을 주간에 배송하면 월수입이 100만원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픈 가족을 돌보기 위해 밤에 일하는 경우도 있다. 쿠팡 일산5캠프 배송기사 정희원 씨 역시 낮 시간대에 가족을 돌봐야 해 야간근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야간근무가 제한될 경우 다른 일을 추가로 하거나 아예 직업을 바꾸는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야간 노동’은 단순히 늦은 시간에 몇 시간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밤 시간대에 이뤄지는 노동을 가리키며, 특히 장기간 반복되는 야간근무는 수면과 생활 리듬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노동자의 건강 문제와 연결된다. 법안 역시 이런 점을 고려해 야간작업 자체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노동자 측에서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일률적으로 줄이는 방식이 반드시 건강 보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택배기사처럼 근무시간과 소득이 밀접하게 연결된 직종에서는 야간작업 제한이 곧바로 소득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CPA는 쿠팡 배송기사들이 개인사업자 성격에 가까운 방식으로 일하는 만큼 야간업무 시간과 횟수를 법으로 제한하면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업무를 추가로 해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 곳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전체 노동시간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노동자의 건강을 개인의 선택에만 맡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시간 야간 노동으로 건강이 나빠질 경우 당장은 소득이 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치료비가 발생하거나 일을 지속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자가 당장 일할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준을 법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과로로 인한 건강 악화는 장기간에 걸쳐 나타날 수 있어 노동자가 현재의 소득과 미래의 건강 사이에서 위험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자 입장에서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야간배송 횟수와 시간을 제한하려면 배송 인력을 추가로 확보하고 근무조를 다시 편성해야 한다. 배송기사 한 명이 담당하는 지역과 물량을 조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대형 물류기업은 상대적으로 많은 인력과 자원을 활용할 수 있지만 지역 배송업체나 규모가 작은 물류사업자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 업계에서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인력 확보와 비용 증가 문제가 중소 배송업체에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권의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간근무를 제한하면 노동자가 부족한 소득을 채우기 위해 투잡이나 쓰리잡을 선택할 수 있다며 법안을 비판했다. 반면 법안을 발의한 여당에서는 야간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번 논의에서 주목할 부분은 노동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야간 노동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과 현장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도 노동계 내부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며 다음달 입법토론회를 열어 세부 방침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새벽배송은 소비자에게는 편리한 서비스지만 누군가에게는 밤새 일해야 얻을 수 있는 생계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지, 노동시간 제한과 함께 소득 감소를 보완할 장치가 필요한지까지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