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중대한 교통사고 내면, 면허가 아예 '취소'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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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사고 낸 운전자, 처벌 후에도 운전능력 재평가 받는다
벌점 기준만으로 부족한 현행 제도, 독일 MPU처럼 적성검사 도입

중대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는 앞으로 사고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 사고 이후에도 안전하게 운전할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받게 될 전망이다. 운전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면허가 제한되거나 취소될 수 있는 제도가 추진된다.

10일 서울신문의 단독보도다.

경찰청은 최근 ‘중대 교통사고 발생 운전자 교통안전교육 신설’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경찰은 중대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별도의 안전교육을 실시한 뒤 운전 능력을 다시 평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운전면허 제도에서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운전자의 능력을 다시 평가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사고로 인한 행정처분은 주로 사고의 결과와 법규 위반 등에 따라 부과되는 벌점과 처분 기준을 적용해 이뤄진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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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제도에서 운전면허 벌점은 교통법규 위반이나 교통사고의 정도 등에 따라 부과된다. 1년간 누산 벌점이 121점 이상이면 운전면허가 취소되고, 40점 이상이면 면허가 정지된다.

문제는 사고 피해가 크더라도 벌점만으로는 운전면허 취소 기준에 미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실로 사망사고를 낸 경우에도 벌점이 90점으로 책정돼 면허 취소 기준인 121점에는 미치지 않는다. 해당 운전자는 일정 기간 면허가 정지된 뒤 다시 운전할 수 있다.

경찰이 검토하는 제도는 이 같은 기존 처분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전자의 사고 후 운전 적합성을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고에 대한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을 받았는지와 별도로 실제 운전 능력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중대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게 교통안전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교육 이후 운전 능력을 평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평가 결과에 따라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도록 하거나 수시적성검사를 받게 하는 방식도 검토 대상이다.

조건부 면허를 도입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조건부 면허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운전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운전자의 상태나 평가 결과에 따라 운전 범위나 조건을 제한하는 제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운전 능력이 안전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면허를 취소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고를 중대 교통사고로 볼 것인지, 어떤 평가를 실시할 것인지, 평가 결과에 따라 어느 수준의 행정처분을 내릴 것인지는 연구용역을 통해 세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대상에는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나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 중상자가 발생한 사고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경찰은 아직 대상 사고의 범위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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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오는 12월까지 연구용역을 진행한 뒤 관련 제도의 구체적인 도입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후 제도 시행을 위해 도로교통법 개정 작업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운전 능력 재평가가 의무화되려면 법률 개정과 구체적인 평가 기준 마련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이번 제도 검토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는 운전면허 취득 과정의 변화도 꼽힌다. 2011년 운전면허 시험이 대폭 간소화되면서 면허를 취득하는 데 필요한 절차와 시험 부담이 줄었다.

당시 장내 기능시험에서 평가하던 항목이 크게 축소됐고 시험 과정도 간소화됐다. 운전면허를 보다 쉽게 취득할 수 있게 되면서 초보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면허 취득 이후에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운전면허는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서 운전 능력이 평생 일정하게 유지되는 자격은 아니다. 운전 경험이 부족한 초보 운전자뿐 아니라 사고나 신체·인지 능력 변화 등으로 운전 능력이 떨어진 사람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특히 중대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단순히 사고 당시의 법규 위반 여부만 확인하는 것과 사고 이후에도 같은 위험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 제도 검토의 핵심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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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운전자의 주의 의무 위반이나 음주 등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사고에 대한 형사책임이나 행정처분이 뒤따를 수 있다. 그러나 일정 기간의 면허정지 처분이 끝난 뒤 운전자가 다시 도로에 나섰을 때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지까지 기존 제도가 직접 평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경찰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는 기존 제도에 운전 적합성 평가를 추가해 교통사고 재발 가능성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장기적으로 감소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교통사고는 19만3889건으로 전년 19만6349건보다 1.2% 줄었다.

그러나 사고 건수가 감소했다고 해서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까지 같은 폭으로 줄어든 것은 아니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는 2549명으로 전년 2521명보다 28명 증가했다. 증가율로는 1.1%다.

이 같은 통계는 전체 사고 건수를 줄이는 정책과 함께 사망이나 중상으로 이어지는 중대 사고를 예방하는 정책도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찰이 중대 교통사고 운전자에 대한 사후 관리 방안을 검토하는 배경에도 이런 문제가 있다.

해외에서는 교통사고나 중대한 교통법규 위반 이후 운전자의 적합성을 다시 판단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운전적성검사인 MPU가 대표적인 사례다.

MPU는 독일어 ‘Medizinisch-Psychologische Untersuchung’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의료·심리적 운전적성검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중대한 교통법규 위반이나 음주운전 등으로 운전 적성이 의심되는 경우 운전자가 다시 운전할 능력과 태도를 갖췄는지 확인하는 데 활용된다.

검사 결과 운전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면 면허 취득이나 회복이 제한될 수 있다. 단순히 사고 당시의 처벌에 그치지 않고 운전자가 앞으로 도로에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경찰이 검토하는 제도와 공통점이 있다.

네덜란드와 호주에서도 운전자의 신체적·인지적 상태나 운전 적합성 등에 따라 면허를 제한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국가마다 대상과 평가 방법, 행정처분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운전 자격을 한 번 취득하면 사고 이후에도 별도의 적합성 판단 없이 계속 유지되는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제도가 존재한다.

국내에서 제도가 도입되면 운전면허 취소·정지의 기준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현재는 벌점과 법규 위반, 사고 결과 등을 중심으로 처분이 결정되지만 새로운 제도에서는 중대 사고 이후 운전 능력이라는 요소가 추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운전 능력 평가가 면허 제한이나 취소로 이어지는 만큼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고의 책임 정도와 운전 능력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일시적인 실수와 지속적인 운전 위험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등도 법과 제도에 구체적으로 담겨야 한다.

경찰은 연구용역을 통해 중대 교통사고의 범위와 교육 내용, 운전 능력 평가 방법, 평가 결과에 따른 면허 처분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후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중대 사고 운전자는 사고에 대한 처벌을 받은 뒤에도 다시 운전할 자격이 있는지를 별도로 판단받는 체계가 마련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