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저, 제3자 이메일 업체 뚫려 정식 도메인서 ‘STM32 결함’ 가짜 경고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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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저 이메일 업체 해킹, 자사 도메인으로 피싱 메일 발송돼
비트박스·코인트래킹도 같은 날 피해…가짜 보안경고 주의보

하드웨어 지갑 제조사 트레저(Trezor)가 제3자 이메일 발송 업체 침해로 자사의 정식 도메인을 통해 피싱 메일이 발송되는 사고를 겪었다. 같은 날 스위스의 비트박스(BitBox)도 동일한 수법의 피싱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고, 암호화폐 포트폴리오 관리 플랫폼 코인트래킹(Cointracking)까지 유사한 피해를 신고했다. 발신자 인증까지 정상으로 표시되는 탓에 이용자들이 진짜 공지로 오인하기 쉬운 상황이 벌어졌다.
“STM32 엔트로피 취약점”이라 속인 가짜 경고
문제가 된 이메일 제목은 ‘Critical Security Alert: STM32 Entropy Vulnerability’였다. 트레저 기기에 쓰이는 STM32 마이크로컨트롤러에 치명적 결함이 있고 기기 4대 중 1대꼴로 영향을 받아 복구 문구의 무작위성(엔트로피)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트레저는 9월 9일(현지시각, 이하 동일) 엑스(X)에 “‘Critical Security Alert: STM32 Entropy Vulnerability’라는 제목의 이메일은 우리가 보낸 것이 아니며 피싱 시도다. 어떤 링크도 클릭하지 말라”고 공지했다.
이 캠페인이 특히 위험했던 이유는 공격자가 트레저 본사 시스템이 아니라 이메일 발송을 대행하는 제3자 업체를 뚫었다는 점이다. 크립토 평론가 마르첼로 파즈(Marcello Paz)가 공개한 스크린샷을 보면 발신자는 ‘Trezor Security <help@trezor.io>’, 반송 주소는 ‘noreply@mailing.trezor.io’로 표시됐고 센드인블루(Sendinblue) 캠페인으로 발송됐으며 DKIM·SPF·DMARC 인증까지 모두 통과한 상태였다. 겉으로는 완전히 정상적인 트레저 발신 메일로 보였다는 뜻이다.
트레저는 해당 도메인을 이미 폐쇄했고 공격자가 어떻게 정식 도메인으로 메일을 보낼 수 있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회사의 기존 방침은 이번에도 변하지 않았다. 지갑 백업 문구를 웹사이트에 입력하거나 누구와도 공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트박스·코인트래킹까지…공용 뉴스레터 업체 의심
같은 날 비트박스도 자사를 사칭한 동일한 방식의 피싱 메일이 돌고 있다고 경고했다. 비트박스는 엑스에 “현재 우리를 사칭한 피싱 메일이 돌고 있다. 메일에 담긴 지시를 따르지 말라”고 공지하며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예비 조사 결과 자사 뉴스레터 발송 업체가 침해당한 것으로 보이며, 같은 업체를 쓰는 다른 여러 비트코인 관련 기업들도 공격 대상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성명을 발표할 당시 대부분의 피싱 링크는 이미 차단됐지만 조사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카사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닉 뉴먼은 이번 사태가 트레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케팅 이메일 업체가 침해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의심스러운 링크로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발송업체 메일을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 뉴먼은 비트박스 이용자들로부터도 같은 제보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카사 최고보안책임자 제임슨 롭도 “위협 행위자들이 트레저와 비트박스가 쓰는 이메일 제공업체를 침해했을 수 있다”며 “두 회사 모두 난수생성기에 결함이 있어 보안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악성 메일이 발송되고 있고, 스푸핑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보안 권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암호화폐 세금·포트폴리오 관리 서비스 코인트래킹도 자사의 제3자 이메일 제공업체가 브레보라고 밝히며 침해 사실을 확인했다. 이용자들에게는 ‘Data Breach Notice: Please refresh API Keys as soon as possible’라는 제목의 가짜 메일이 발송됐다. 코인트래킹은 “이 메일에 담긴 어떤 링크도 클릭하지 말라. 현재 사건을 조사 중이며 추가 정보가 확인되면 즉시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몇 달째 이어지는 하드웨어 지갑 보안 악재
트레저는 이미 배송 파트너 ShipMonk 관련 고객정보 유출로 홍역을 치르던 중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발표로 전체 피해 규모가 8만 명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상태에서 이번 이메일 침해까지 겹쳤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트레저의 고객 지원 티켓 포털도 2024년 1월 침해돼 약 6만6000명이 피싱 위험에 노출된 적이 있어, 지갑 업체의 고객 데이터 유출이 장기간 여파를 남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같은 8월 다른 지갑 업체들도 잇따라 보안 문제를 겪었다. 세이프팔은 권한 설정 오류로 약 3만9798명의 고객 정보가 노출됐다고 밝혔다. 비트박스는 자체 펌웨어에서 심각한 취약점 두 건을 발견해 패치했는데, 하나는 특정 조건에서 악성 펌웨어 설치를 허용할 수 있는 결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트코인 주소 검증 방식과 관련된 문제였다. 비트박스는 두 취약점 모두 실제 악용되거나 자금이 탈취된 사례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7월에는 콜드카드 펌웨어에서 실제 엔트로피 관련 결함이 발견됐다. 빌드 설정 오류로 일부 기기가 하드웨어 난수생성기 대신 소프트웨어 의사난수생성기를 사용했고, 이는 2021년 3월부터의 콜드카드 Mk3 펌웨어에 영향을 미쳤다. 공격자들은 7월 31일 이 결함을 악용해 약 500개 주소에서 594비트코인(약 3800만달러, 약 509억원)을 빼갔고, 이후 분석에서 더 많은 주소와 자금이 같은 취약점과 연결된 것으로 파악됐다. 디크립트에 따르면 콜드카드 취약점으로 인한 전체 피해 규모는 1억3000만달러(약 1741억원)를 넘는다고 알려졌다. 크라켄 최고보안책임자 닉 퍼코코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하드웨어 지갑 시드 생성 과정에 대한 독립적인 감사를 요구했고, 코인카이트는 펌웨어 수정판을 배포했지만 영향을 받은 사용자들은 직접 새 시드를 생성해 자금을 옮겨야 했다. 비트박스는 자사 기기가 이 난수생성 취약점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7월에 밝혔다.
지난 2월에는 아예 물리적인 편지를 이용한 사칭 공격도 있었다. 공격자들은 트레저와 레저를 사칭한 우편물을 보내 인증이나 거래 확인을 위해 QR코드를 스캔하라고 유도했고, 실제로는 12·20·24개 단어로 이뤄진 복구 문구를 입력하도록 요구하는 악성 사이트로 연결됐다. 트레저와 레저 모두 정상적인 서비스는 웹사이트나 외부 경로를 통해 복구 문구를 입력·스캔·업로드·공유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지갑 자체는 안전…그래도 남은 위험과 보안 경쟁
이번 이메일 피싱은 물론 앞선 SafePal·트레저 데이터 유출 모두 기기 자체나 개인 키, 시드 문구가 침해된 사례는 아니었다. 다만 이름·주소·전화번호 같은 개인정보가 노출되면 더 정교한 피싱 시도에 쓰일 소재가 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보안 연구 환경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5월에는 테일러 혼비가 앤스로픽의 클로드 오푸스 4.8을 활용해 4년 된 Zcash Orchard 결함을 찾아냈고, 이후 앤트로픽의 에이전트가 과거 디파이 익스플로잇 수백 건을 재현해 시뮬레이션상 약 5억5000만달러(약 7365억원) 규모의 손실을 재현하기도 했다. 8월에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비트코인 레드팀이 390개 프로젝트를 약 30시간 동안 스캔해 4962건의 발견 사항을 제출했고 이 중 85건이 심각 등급으로 분류됐다. 연구자와 공격자가 점점 더 비슷한 도구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비트박스와 코인트래킹은 여전히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공유된 이메일 인프라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뚫렸는지, 피해가 얼마나 더 확산됐는지, 추가로 피해를 공개할 암호화폐 기업이 더 있을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