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나주 금성산서 나온 ‘600년 전 무기’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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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 화약무기의 비밀, 장인의 이름까지 남겨진 황자화통
나주 금성산에서 국내에 남아 있는 화약무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자화통(黃字火筒)’이 확인됐다. 유물에는 제작 시기와 명칭뿐 아니라 무게, 제작 감독자와 장인의 이름까지 남아 있다.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나주 금성산에서 발견된 황자화통을 조사한 결과, 몸체에 새겨진 글자를 통해 제작 관련 정보를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화통은 화약의 힘을 이용해 화살이나 탄알 등 발사체를 쏘는 무기다. 조선 세종 이후에는 주로 ‘총통’이라는 명칭이 사용됐다.
지표 10㎝ 아래서 발견… 길이 23.75㎝ 소형 화기
이번에 조사된 황자화통은 2023년 11월 발견됐다. 당시 금성산 등산로 공사를 앞두고 육군이 지뢰 탐지 작업을 하던 중 지표에서 약 10㎝ 아래에 묻혀 있던 유물을 찾아 신고했다. 이후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가 현지 조사와 과학 분석을 진행했다.

유물은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이다. 구리와 주석, 납을 섞어 만든 청동 주조품으로 발사체가 빠져나가는 총부리와 화약을 넣는 약통, 나무 손잡이를 연결하는 모병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몸체에 남아 있는 명문을 통해 제작 당시 정보가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모병에는 27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총부리에서는 ‘팔(八)’ 자가 별도로 확인돼 모두 28자의 명문이 남아 있다.
명문은 황자화통이 정사년 12월 제작됐다는 내용과 함께 무게가 1근 14량이라는 점, 제작 감독자가 녹사 안휴보이며 장인이 ‘석’이라는 사실 등을 담고 있다. 하나의 화약무기에 제작 시기와 명칭, 무게, 감독자와 제작 장인의 정보가 함께 기록된 셈이다.
‘정사년’은 1377년 또는 1437년… 제작 연대는 추가 검증
다만 명문에 적힌 ‘정사년’이 정확히 어느 해를 가리키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연구소는 관련 문헌과 국내 화약무기의 발달 과정을 검토해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 또는 조선 세종 19년인 1437년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어느 연도로 확인되더라도 현재 제작 시기가 파악된 국내 화약무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현존하는 보물급 화약무기 중 제작 연대가 확인된 이른 사례로는 1555년 천자총통이 있다. 황자화통이 1437년 제작품이라면 이보다 118년, 1377년 제작품이라면 178년 앞선다.
연구진은 유물의 형태도 초기 화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봤다. 약통 내부는 둥근 형태이며 총구 방향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과학 조사에서는 화약 폭발 과정에서 파손을 줄이기 위해 주석 함량을 조절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특징도 확인됐다.
23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서 첫 공개
발견 장소인 금성산 역시 영산강 유역을 내려다보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오래전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금성산성과 관련해서도 후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기록이 전해진다.
황자화통의 정확한 제작 연대를 가리기 위해서는 고려 말과 조선 초 화약무기 자료와의 추가 비교가 필요한 상태다.
황자화통은 오는 23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공개된다. 이후 12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에도 출품될 예정이다.
황자화통’의 화통은 무엇일까…화약으로 발사체 쏘던 초기 화기
나주 금성산에서 ‘황자화통’이 확인되면서 이름에 들어간 ‘화통(火筒)’이 어떤 무기인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화통은 화약의 종류가 아니라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해 화살이나 탄알 같은 발사체를 쏘는 무기다. 오늘날의 총이나 대포로 이어지는 초기 화기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기본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금속으로 만든 통 안쪽에 화약을 넣고 발사체를 장전한 뒤, 화약에 불을 붙여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힘으로 발사체를 앞으로 밀어낸다. 사람이 힘으로 당겨 쏘는 활과 달리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화통은 크기와 구조에 따라 사용 방식도 달랐다. 사람이 직접 들거나 손잡이를 연결해 사용하는 작은 화기가 있는가 하면, 크기가 큰 것은 보다 무거운 발사체를 쏘는 데 쓰였다. 초기 화기는 제작 기술과 용도에 따라 형태가 다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와 성능도 계속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부터 화약을 군사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화약무기가 등장했다. 당시에는 화약을 넣는 공간과 발사체가 지나가는 통 부분을 갖춘 형태가 사용됐다. 금속으로 몸체를 만들고 일부는 나무 손잡이를 연결해 휴대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화통’이라는 이름에서 ‘화(火)’는 불이나 화약을 ‘통(筒)’은 속이 빈 원통형 구조를 뜻한다. 말 그대로 화약을 이용하는 통 모양의 무기라는 의미다. 따라서 화통은 특정 화약 성분이나 화약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화약무기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총통(銃筒)’이 널리 사용됐다. 총통 역시 화약의 힘으로 화살이나 탄환 등을 발사하는 무기로 크기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만들어졌다. 세종 때 제작된 세총통은 길이 13.8㎝의 소형 휴대용 화기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