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포로 2명, 어떻게 해서 한국으로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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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차례 물밑협상 끝 결실... 남북·한러관계 파장은?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포로 2명이 생포 약 1년 8개월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과 우크라이나 외교당국이 수십 차례 물밑 협상을 벌인 끝에 성사된 한국행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3일(뉴욕 현지시각) 유엔총회 연설에서 "최근 북한군 전쟁포로 2명을 대한민국으로 보냈다"고 공개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24일(한국시각)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들이 "며칠 전 무사히 대한민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제가 파악하기로는 지난 주말 우크라이나를 출발해 제3국을 경유해서 3∼4일 전 한국에 도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정부의 경우 정보당국이 막후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며 "관련 기관에서 신병을 보호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행은 순탄치 않았다. 두 사람은 지난해 1월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생포됐다. 이들의 존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얼굴을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따르면 이들 중 1명은 생포 당시 자살을 시도해 중상을 입었다. 북한군은 생포 위기에서 자폭하라는 지시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탈북민 단체에 전달한 친필 편지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한국행 의사를 밝혔다. 다만 우크라이나 수용소 안에서 밝힌 내용이어서 자유로운 의사인지는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전쟁포로 보호를 담당하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의 면담 등을 통해 한국행 의사가 확인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법도 걸림돌이었다. 생포된 북한군이 러시아군 소속으로 인정되면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협약'(제3협약)에 따라 전쟁포로 지위가 부여돼 러시아로 송환돼야 한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러시아로부터 자국 포로와 북한군 포로 2명을 맞교환하자는 제의를 받는 등 전반적인 포로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처지였다.
본인 의사에 반해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국제법상 강제송환금지 원칙에 어긋난다. 공개적으로 한국행을 원한다고 밝힌 이들이 북으로 돌아가면 심각한 인권침해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도주의 차원의 한국행을 요구하는 국제사회 여론이 컸다.
한국 정부는 헌법상 한국 국민인 북한군 포로들이 귀순 의사를 밝힌 만큼 이들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양국은 지난 3월 외교장관 회담에서 이 문제를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유 의원은 "양국이 송환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은 지난 6월 어간으로 안다"고 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당시 우크라이나가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 한국 외교당국 고위 당국자와 포로 송환에 기본적으로 합의했다. 이후 외교장관 회담과 정상회담을 거치며 송환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7월 8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외교당국은 수십 차례 우크라이나 측과 물밑 협상을 벌였다. 논의는 비교적 협조적인 분위기 속에 진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은 한국 측이 제공한 반대급부 여부에 대해 "확인한 바 없다"고 답했다. 정부도 포로 송환을 우크라이나 지원 등 다른 현안과 연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두 사람은 북한이탈주민 관련 법령에 따라 국가정보원의 보호를 받는다.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에 걸쳐 조사한 뒤 보호 방식을 정한다. 러시아에 파병된 군인이자 귀순자라는 점에서 국정원 단독 보호 대상이 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멕시코를 국빈 방문 중인 이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각) X(옛 트위터)에 "비공개 합의를 어기고 공개한 우크라이나 측에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나 많이 아쉽다"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타당하고 정당한 비공개 조치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가 송환 사실을 숨겼다는 야권의 비판을 반박했다.
북한은 2016년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 집단 탈북했을 때 한국 정부가 이들을 유인·납치했다고 주장하며 송환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포로들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뒤 한국행 의사를 밝혔고 우크라이나가 한국행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파병 북한군이 포로가 된 데 이어 한국행을 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도 북한에는 부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