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엔 회사원, 주말엔 아저씨… 케이크집 사장 남편이 기록한 20년 케이크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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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모 작가 에세이 '오늘도, 케이크'

경기 용인시의 한 작은 케이크 매장. 아내는 쇼케이스 옆을 지나 카운터를 거쳐 주방으로 들어가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은 매장 입구 홀 테이블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별다를 것 없는 이 장면이 20년 가까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 시간을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기록한 생활 에세이 '오늘도, 케이크'가 출간됐다.

임영모 작가 아내가 운영하는 케이크 매장을 배경으로 촬영한 책 사진. / 임 작가 제공
임영모 작가 아내가 운영하는 케이크 매장을 배경으로 촬영한 책 사진. / 임 작가 제공

책을 쓴 사람은 임영모 작가. 평일 낮엔 공간정보 SI 업체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그는 회사에 나가지 않는 주말이면 아내의 출근길을 따라나선다. 매장 안에서 임 작가 직책은 '아저씨'다. 매장을 연 지 20년이 다 돼가는 동안 이 호칭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새 아르바이트생이 올 때마다 아내는 남편을 명확하고 단호하게 아저씨로 소개한다. 임 작가는 그 세 음절 안에 담긴 뜻을 이렇게 풀어 적는다. 법적으로는 남편이고, 가게에서는 아저씨로 불리며, 평일에는 마주칠 일이 드물지만 퇴근 후나 휴일에는 가게 한쪽에 소품처럼 머무는 사람이라고. 책에 실린 필명 '영두리'는 자신의 이름 '영모'와 아내 이름 '선영'에서 한 글자씩 따온 나우누리 시절 닉네임이다.

매장의 시작은 2006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써니(임 작가가 부르는 아내 애칭)가 낯선 동네였던 용인에 아담한 케이크 매장을 차렸다. 한자리에서 이렇게 오래 영업하게 될 줄은 부부 모두 몰랐다. 써니는 매장 운영이 낯설었고 임 작가는 '매장 사장 남편'이라는 신분이 낯설었다. 손님이 뜸한 시점과 몰리는 시점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하루 예상 판매량은 번번이 어긋났다. 여러 손님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입도 못 떼고 갈팡질팡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른 중반의 서툶이 쉰 중반의 연륜으로 서서히 바뀌어다.

임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매장 20주년이다. 아내에게 건넬 자신만의 축하 선물을 만들고 싶었다. 페이스북과 개인 메모장에 적어둔 글이 몇 있었지만 책의 형태로 남기기엔 부족해 죄다 버리고 고치고 다시 썼다. 주변 사람들에게 출간을 장담하듯 선언해 둔 까닭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고 임 작가는 말한다.

임영모 작가 아내 써니가 운영하는 케이크 가게. / 임 작가 제공
임영모 작가 아내 써니가 운영하는 케이크 가게. / 임 작가 제공

책은 매장을 오간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를 세밀하게 붙잡아 낸다. 어느 저녁 성격이 급해 보이는 한 남자 손님이 휴대전화로 통화하며 들어선다. "케이크 어떤 걸로 사 오라고?"를 연발하며 아내로 짐작되는 통화 상대와 크기를 상의한다. "자기야, 큰 거, 작은 거, 쪼그마한 거 다 가능하다네? 대짜 소짜… 뭘로 살까?" 손님이 무심코 뱉은 '대짜' '소짜'란 표현이 그날 이후 부부의 입에 붙었다. 임 작가는 매장 일일 결산을 하며 "오늘은 대짜 5개, 소짜 12개, 쪼그마한 거 20개 팔았네"라며 아내와 웃곤 한다. 그는 '라지'나 '스몰' 같은 매끈한 단어보다 대짜 소짜 같은 투박한 말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고 적는다. 그 안에 퇴근길 지친 가장의 서두름과 저녁 식탁을 고민하는 가족의 일상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초를 좀 챙겨드릴까요?"라는 일상적인 질문에도 사연이 따라붙는다. 나이를 묻는 물음 앞에서 손님들은 의외로 자주 머뭇거린다. 함께 온 자녀에게 "너희 아빠 나이가 몇 살이지?"를 되묻거나 아내에게 장모님 연세를 확인하는 손님이 허다하다. 그래서 임 작가 부부는 연말이면 출생연도와 띠로 나이에 맞는 초 개수를 찾아볼 수 있는 '생일초 일람표'를 만들어 카운터 옆에 둔다. 어릴 땐 초를 하나라도 더 꽂고 싶어 안달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라도 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라는 대목에서 슬며시 웃음이 난다. 임 작가는 짐짓 나이를 줄여 초를 세는 일이 실수가 아니라 배려일 수 있다고 쓴다.

'오늘도, 케이크' 책.
'오늘도, 케이크' 책.

지방 출장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매장에 돌아온 날 써니가 "케이크 한 조각 먹을래?"라고 말을 건넨다. 그런 날 임 작가는 티라미수를 한 조각 먹는다. 맨 아래 에스프레소의 쓴맛, 그 위 마스카포네 치즈의 부드러움, 마지막에 뿌려진 코코아 가루의 쌉싸름함. 그는 층층이 쌓인 그 겹이 하루의 맛과 닮았다고 본다. 장거리 운전이라는 쓴맛을 견디고 치열한 회의라는 쌉싸름함과 싸운 뒤 마침내 맛보는 달콤한 휴식의 층이다. 티라미수의 어원이 '나를 끌어올리다'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임 작가는 케이크 한 조각을 '평화와도 같은 a Peace of Cake'라고 부른다.

케이크를 차에 싣고 운전하는 날의 마음도 유별나다. 케이크 상자가 트렁크나 뒷좌석에 실리면 주행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급정거를 할 때마다 상자 안 케이크가 쏠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티라미수라면 더욱 예민해진다. 코코아 파우더가 요철 구간에서 사방으로 날리기 때문이다. 임 작가는 차 뒷유리에 '이 차에는 케이크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싶다고 적었다. 무엇을 싣고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결국 운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의 풍경도 케이크로 번역된다. 퇴근길 눈발을 보며 써니가 "마치 케이크 위에 슈가 파우더 뿌리는 것 같지 않아?"라고 말한다. 임 작가는 써니가 만드는 '사각 산딸기 가나슈 케이크'를 떠올린다. 하얀 생크림 장미 봉오리를 가지런히 얹고, 손님 주문이 들어오면 그제야 빨간 산딸기를 하나씩 올린 뒤 슈가 파우더를 솔솔솔 뿌려 마무리하는 케이크다. 눈 내리는 밤, 지저분한 골목도 삭막한 도로도 근사한 케이크가 됐다고 그는 썼다.

매장의 하루는 마감으로 끝난다. 임 작가에게 마감은 리셋 버튼을 누르는 신성한 의식에 가깝다. 손님이 나가면 마감용 음악을 튼다. 써니는 재고와 소비기한을 확인하고 내일 물량을 발주한다. 아르바이트생은 주방과 커피 머신을 정리한다. 홀은 아저씨 몫이다. 탁자 10개와 의자 21개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청소기를 돌리고, 청소기 소음에 맞춰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볼륨으로 합창단 연습곡의 베이스 선율을 흥얼거린다. 물걸레질을 할 때는 노래를 멈추고 걸레가 지나가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도록 집중한다. 다음날 첫 손님이 마주할 공기가 '어제의 피로'가 아닌 '오늘의 환대'이길 바라며 마지막 의자의 오와 열을 맞춘다.

임영모 작가 아내 써니가 운영하는 케이크 가게. / 임 작가 제공
임영모 작가 아내 써니가 운영하는 케이크 가게. / 임 작가 제공

20년이라는 세월이 가장 먼저 새겨진 곳은 얼굴의 주름이 아니라 손끝이라고 임 작가는 말한다. 그는 2012년 봄에 끼적여 둔 습작 폴더를 발견해 이번 책에 옮겨 적었다. 직장도 매장도 녹록지 않던 시절, 둘이어서 서로의 손을 잡고 봄을 기다리며 버텨낸 기록이다. 조금 더 여위고 거칠어졌지만 여전히 다정한 써니의 손을 바라보며 쓴 글이다.

20년간 매장을 거쳐 간 아르바이트생 이야기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취업으로, 학업으로, 결혼과 출산으로 떠나보내고 또 새 얼굴이 그 자리를 채웠다. 매장 입구 작은 서가에서 책을 빌려 가던 친구들 가운데는 교사가 된 보영, 카피라이터가 된 미희처럼 자신의 책을 들고 다시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 놓고 간 책이 또 다른 손님에게 읽히고, 이곳에서 일하던 친구가 쓴 책이 다시 서가의 한 칸을 채운다.

20년이 언제나 달콤했던 건 아니다. 예약해 두고 연락이 닿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애태우는 날도 있다. 케이크 배송이 어긋나 마음을 졸이는 순간도 있다. 임 작가는 '일탈-이탈-해탈-무탈-허탈-앙탈'로 이어지는 짧은 시 ‘탈주’를 써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음 날이면 다시 매장 문을 열고 쇼케이스에 불을 밝힌다.

케이크 상자를 들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을 마주칠 때 임 작가는 까닭 없이 설렌다. 저 상자를 들고 어디로, 누구에게 가는지 알 수 없어서다. 생일일 수도, 합격이나 승진 소식일 수도 있다. 그는 아침 출근길에 매장에 들러 케이크 한 상자를 사무실로 가져가기도 한다. 상자를 든 팔은 절대 흔들지 않고, 엘리베이터에서는 벽 쪽에 붙어 감싼다. "오늘 누구 생일이에요?"라고 묻는 동료에게 그는 겸연쩍게 답하면서 마음속으로 한 줄을 더한다. '그냥 기쁘고 즐겁고 싶은 그런 날이에요, 오늘은.‘

'오늘도, 케이크'는 매장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내와 가족, 교회와 합창단, 책과 음악, 여행과 계절이 함께 담겼다. 1부 '오늘도 영업을 시작합니다', 2부 '쌉싸름의 끝은 달콤함으로', 3부 '우리는 매일 공감을 포장합니다', 4부 '케이크 상자 너머에는'까지 4부에 걸쳐 평범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삶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결혼 1만일이 되던 날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며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신청곡으로 올렸던 기억도 그 사이에 놓여 있다.

책을 관통하는 물음은 하나다. '만약 케이크 매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무엇을 모르고 살았을까.' 임 작가가 쓴 글을 그대로 옮긴다.

"아마 그랬더라면, 우리가 케이크 매장에서 지내온 20년이라는 무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평생 몰랐을 것이다. 매일 아침 적막을 깨고 매장 출입문을 열 때 손끝에 닿는 그 서늘하고도 묵직한 공기를, 쇼케이스 전등을 하나하나 켜고 조심스레 케이크를 진열하며 오늘의 케이크들이 주인공처럼 빛나기를 바라는 그 경건한 마음을, 첫 에스프레소의 쌉싸름함으로 잠든 감각을 깨우는 하루의 기대를, 창밖 날씨와 기온을 배려해 슬쩍 얹어두는 음악 선곡의 미묘한 갈등을, 마수걸이 손님의 종소리가 가져다주는 그 벅찬 반가움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가끔은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던 손님 방문을 기다리는 시간이 사실은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여백이었음을,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단골손님들의 반가운 눈인사와 홀을 가득 채우는 손님들 수다의 정겨움을, 서가 앞에 서서 책장을 찬찬히 훑어보는 손님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고요한 유대감을, 매장 한구석에서 눈치 살피며 풋풋한 애정행각을 나누는 커플이 그저 귀엽게만 보이는 여유를, 누군가의 흔적이 머무는 화장실을 청결하게 닦아내며 느끼는 묘한 책임감을, 생일 초 한 개를 더 넣을지 말지 고민하는 손님의 진지함을, 쇼케이스 안 케이크를 바라보며 반짝이던 어린아이의 기대에 찬 눈빛을, 그리고 선물 받을 이의 취향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케이크를 고르던 그 고심의 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매장을 나서는 손님이 혹여나 케이크 상자를 문에 부딪히는 건 아닌지 밖으로 나서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결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