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어서요” 차량 블랙박스에 남은 20대 공무원의 마지막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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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부족 속 하루 5시간 수면...과로의 악순환

전북도 농업기술원에서 근무하던 20대 연구사가 숨진 가운데 생전 장기간 이어진 초과근무 정황이 확인되면서 과도한 업무 부담이 있었는지를 둘러싼 진상규명이 요구되고 있다.

전북도 농업기술원 고창 수박시험장 소속 고 김진혁 연구사는 지난 16일 밤 귀가하던 차량 안에서 “살려고 도망쳤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유족의 동의를 받아 공개된 차량 블랙박스에는 김 연구사가 홀로 차량을 운전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모습과 함께 힘겨운 심경을 토로하는 육성이 담겼다.

김 연구사는 당시 “어휴, 살려고 도망쳤습니다. 어휴, 살려고 도망쳤습니다. 죽고 싶어서요. 미안,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임용 4년 차였던 그는 이 말을 남긴 사흘 뒤 자신이 근무하던 수박 시험 하우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튜브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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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이 확보한 근무 기록을 보면 김 연구사는 숨지기 직전까지 장시간 근무를 이어갔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3일 일요일에도 저녁 시간에 일터로 나가 밤 11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일반적인 근무일이 아니었던 일요일에도 업무를 위해 출근했던 것이다.

다음 날인 14일에는 오전 6시45분 출근 기록이 남아 있다. 전날 밤늦게 퇴근한 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다시 출근한 셈이다. 월요일 퇴근 시간 역시 밤 11시를 넘겼고, 업무는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김 연구사는 15일 새벽 1시30분까지 일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 시간대에는 어머니와 통화한 기록도 남아 있다. 그리고 불과 약 5시간 뒤인 15일 새벽 다시 출근했다. 이날 역시 밤 11시44분까지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은 이처럼 짧은 시간 동안 출퇴근을 반복하며 장시간 근무한 상황이 숨지기 직전 특정 며칠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사가 근무한 기간 전체에서 초과근무가 반복됐고, 올해에도 상당한 추가 근무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유튜브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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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김 연구사는 올해 숨지기 전인 9월 중순까지 162차례에 걸쳐 66일에 해당하는 추가근무를 했다. 재직 기간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초과근무 일수는 260일을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 연구사는 약 3년2개월 동안 고창 수박시험장에서 근무했다. 수박 재배와 품종 연구 등 시험장 업무 특성상 작물 생육 상황에 맞춰 현장을 관리해야 하는 업무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이런 업무 특성에 더해 인력 부족까지 겹치면서 김 연구사에게 업무가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선임 직원의 육아휴직 등으로 인력 공백이 발생한 뒤 충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 유족 측 주장이다. 업무량을 감당할 인력이 충분했는지, 인력 부족에 따른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있었는지도 향후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김 연구사의 어머니는 아들이 생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일했고, 때로는 식사까지 거르는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업무에 시달렸다고 호소했다.

유튜브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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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저는 진혁이가 노예라고 생각했다”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잠도 못 자면서 밥도 때로는 굶어가면서 거기서 일을 했다는 건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사가 남긴 유서의 내용도 공개됐다. 주머니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화요일 5분만 견뎠더라면,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죄송하다”는 취지의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해당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면서도 고인이 마지막까지 업무와 관련한 어려움을 겪었는지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서에 적힌 표현만으로 고인의 사망 원인이나 특정 상황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단정할 수는 없는 만큼 관련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번 사건에서 유족이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은 초과근무 시간 자체뿐만이 아니다. 장시간 근무가 반복되는 동안 이를 관리하거나 조정하는 절차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요청이 있었는지, 추가근무가 실제 업무상 필요한 상황에서 이뤄졌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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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근무시간과 형식적으로 기록된 초과근무 시간이 일치하는지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기록에 잡힌 근무시간 외에 현장에서 업무가 이어졌는지 여부 역시 관련 자료와 관계자 진술 등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고창 수박시험장 측은 유족이 제기한 장시간 근무와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취재진의 설명 요청에 인터뷰를 거절했다. 현재 전북자치도의 특정감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전북도의 감사 결과와 경찰 수사 등을 통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감사 과정에서는 고인의 근무기록과 초과근무 내역, 인력 운영 현황, 업무 분장, 충원 요청 여부 등이 확인 대상이 될 수 있다.

유족은 경찰과 전북도 감사위원회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뿐 아니라 장시간 근무가 반복된 과정에서 관리 책임이 적절하게 이행됐는지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족이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명의 직원에게 장기간 과도한 업무가 집중된 구조가 있었는지, 비슷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다른 직원들의 근무 여건에도 문제가 없는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