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사별 후 박정희가 남긴 ‘절절한 일기’…‘암살자(들)’과 딴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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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일생 반려로 자손 축복받으며 노후 즐기는데 …” 탄식

이하 박정희(왼쪽)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다정했던 한때.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이하 박정희(왼쪽)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다정했던 한때.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영화 '암살자(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내 육영수 여사 살해 관여 가능성을 암시해 거센 역풍을 불러온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생전 일기에 아내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절절히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가 제기한 의혹과 대비되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1일 뉴데일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결혼 25주년인 1975년 12월 12일 일기에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남겼다. 그의 일기 중 '홀로 맞은 은혼일'로 소개된 기록이다.

그는 "오늘이 아내와 결혼한 지 만 25년이 되는 날이다. 아내가 있었다면 은혼식을 올리고 축배를 올렸을 터인데…"라고 썼다.

이어 "24년 만에 아내는 먼저 가고 말았다. 남들은 은혼식 금혼식을 올리며, 일생의 반려로 자손들의 축복을 받으며 노후를 즐기는데 아내와 나와의 사이는 어찌 24년밖에 시간을 주지 않았을까"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25년 전 오늘의, 그 착한 수줍어하던 아내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이제 25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아내와의 유(幽)와 명(明)을 달리하게 되었으니 인생이란 과시(果是) 무상하도다"고 한탄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육 여사는 1974년 8월 15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박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던 문세광의 총에 맞아 그날 숨졌다. 결혼 25주년을 맞기 약 1년 4개월 전이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은 묘소를 찾은 기록에도 남아 있다. 일기 중 '아내 유택幽宅을 찾다'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을 환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울) 동작동에 들렀다고 썼다. 포드 대통령이 출국한 1974년 11월 23일은 육 여사가 숨진 지 100일이 지난 때다. 유택은 세상을 떠난 사람이 묻힌 곳을 뜻한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동작동에 들러 아내 유택을 찾다. 그저께 제막한 비석이 퍽도 깨끗하고 아담하게 서 있고 비문도 단정하고 맵시 있게 부각돼 있다"고 적었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외교 일정을 마친 뒤 아내의 새 비석 앞에 선 박 전 대통령은 "당신이 여기에 묻혀 그 앞에 비석이 설 줄이야"라고 탄식했다. 일기에는 아내를 잃은 남편의 쓸쓸함이 이어졌다.

그는 "당신은 여기에 잠들어 풍우성상 춘하추동 가고 오고, 오고 가고 아는지 모르는지? 어찌 모를 리가 있으랴. 당신이 사랑하는 이 조국과 겨레의 삶의 모습이 낱낱이 지켜보며 보살펴 주고 사랑해 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오. 아내가 그토록 정성 들여 애쓰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저 깜박거리는 네온 불빛이 동작동에서도 보이겠지"라고 적었다.


박 전 대통령은 육 여사를 향한 그리움을 자작시 '임이 고이 잠든 곳에'에도 남겼다.

저격 사건의 범인 문세광. / 연합뉴스
저격 사건의 범인 문세광. / 연합뉴스
허진호 감독이 연출하고 유해진·박해일·이민호 등이 출연한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와 의혹을 다룬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당시 특별수사본부는 북한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지령을 받은 문세광이 광복절 연설 중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했지만 미수에 그쳤고, 대신 박 전 대통령 옆에 앉아 있던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고 발표했다. 문세광은 그해 12월 20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그런데 영화 '암살자(들)'은 사건의 배후를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명확하게 결론 내리지는 않지만, 극 중 인물들을 통해 당시 권력기관이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암시해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다.

다음은 박 전 대통령이 육 여사를 그리워하며 남긴 시 '임이 고이 잠든 곳에' 전문이다.

임이 고이 잠든 곳에

방초(芳草)만 우거졌네

백일홍이 빵긋 웃고

매미 소리 우거진데

그대는 내가 온 줄

아는지 모르는지

무궁화도 백일홍도

제철이면 찾아오고

무심한 매미들도

여름이면 또 오는데

인생은 어찌하여

한번 가면 못 오는고

임이 잠든 무덤에는

방초만 우거지고

무궁화 백일홍도

제철 찾아 또 왔는데

임은 어찌 한번 가면

다시 올 줄 모르는고

해와 달이 뜨고 지니

세월은 흘러가고

강물이 흘러가니

인생도 오고 가네

모든 것이 다 가는데

사랑만은 두고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