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재설계자’ 민희진, 세계적 건축설계자와 각별한 인연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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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거장과 세계적 건축가, 왜 SNS에서 만났나
일본 잡지 표지 장식한 민희진, 건축과 음악의 경계를 허물다

민희진 오케이레코즈(ooak records) 대표가 일본 군마현 마에바시시의 한 호텔 사진을 SNS에 올렸다. 4개 층을 통째로 터서 만든 높은 로비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계단이 담긴 사진이었다. 뜻밖의 반응이 다른 곳도 아닌 일본에서 올라왔다. 호텔을 설계한 일본 건축가 후지모토 소스케가 직접 감사 인사를 건넨 것이다.

민희진 오케이레코즈 대표가 SNS에 올린 일본 군마현 마에바시시 시로이야 호텔 로비. 건축가 후지모토 소스케가 옛 료칸 건물의 바닥과 천장을 걷어내 4개 층을 하나로 튼 공간이다.
민희진 오케이레코즈 대표가 SNS에 올린 일본 군마현 마에바시시 시로이야 호텔 로비. 건축가 후지모토 소스케가 옛 료칸 건물의 바닥과 천장을 걷어내 4개 층을 하나로 튼 공간이다.

후지모토는 자신의 공식 SNS 계정에 민 대표가 시로이야 호텔을 언급해 줘 영광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민 대표는 이곳에 묵으며 느낀 점과 얻은 영감을 담아 화답했다. 후지모토는 다시 답신을 보내 한국 프로젝트 소식을 전했다. 조만간 연락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민 대표와 후지모토가 SNS로 주고받은 게시물. 후지모토가 호텔을 언급해 준 데 감사 인사를 전하자 민 대표가 투숙 소감과 영감을 담아 답했다. 후지모토는 한국 프로젝트 소식을 전하며 추후 연락하겠다고 했다.
민 대표와 후지모토가 SNS로 주고받은 게시물. 후지모토가 호텔을 언급해 준 데 감사 인사를 전하자 민 대표가 투숙 소감과 영감을 담아 답했다. 후지모토는 한국 프로젝트 소식을 전하며 추후 연락하겠다고 했다.

짧은 문답이었지만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놓이자 관심이 쏠렸다. 한 사람은 K-팝의 시각 언어를 새로 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다른 한 사람은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을 지은 건축가다. 둘 다 자기 분야의 경계 밖으로 작업을 넓혀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민 대표가 마에바시를 찾은 건 일본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카사 브루투스(Casa BRUTUS)'와의 작업 때문이다. 카사 브루투스는 지난달 9일 발매한 10월호 표지에 민 대표를 세웠다. 1998년 창간 이후 한국인이 이 잡지 표지를 장식한 것은 처음이다. 잡지는 '서울 라이프스타일 가이드' 특집 가운데 26쪽을 민 대표에게 내줬다. 민 대표는 지난달 19일 마에바시에서 열린 협업 상품 예약 판매 행사에도 참석했다. 오케이레코즈가 일본 브랜드 에브리원과 함께 만든 모자와 티셔츠를 알리는 자리였다.

민 대표가 소개한 시로이야 호텔에는 사연이 있다. 시로이야는 300년 넘게 손님을 받아 온 료칸이었다. 일본 미술 매체 도쿄아트비트에 따르면 소설가 모리 오가이도 이곳에 묵었다. 그러나 마에바시 도심이 쇠락하면서 료칸은 2008년 문을 닫았다. 철거될 뻔한 건물을 사들인 사람은 마에바시 출신 기업인 다나카 히토시 진스(JINS) 사장이다.

다나카 사장은 2019년 일본 디자인 매체 악시스(AXIS)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든 그 건물을 남기고 싶어 사들인 뒤 후지모토 씨에게 리노베이션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후지모토가 받아 든 건물은 평범한 4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건물이었다. 그는 골조는 그대로 두고 각 층의 바닥과 천장을 꼭대기까지 걷어냈다. 객실을 줄이는 대가로 햇빛이 쏟아지는 거대한 빈 공간을 얻은 것이다. 민 대표가 SNS에 올린 바로 그 로비다.

후지모토는 같은 인터뷰에서 "당연히 객실 수도 바닥 면적도 줄어들지만 그런 역동적인 공간을 마에바시의 거실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처음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호텔은 2020년 12월 문을 열었다. 로비 천장에는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조명 설치작 '라이팅 파이프'가 걸렸다. 프런트에는 사진가 스기모토 히로시의 '해경' 연작이 놓였다. 옆에 새로 지은 별관은 옛 도네강 물길의 지형을 살려 둑처럼 비스듬히 솟은 모양으로 지었다.

후지모토의 건축을 관통하는 단어는 '숲'이다. 1971년 홋카이도 히가시카구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집 뒤의 숲을 보며 자랐다. 그는 지난해 도쿄아트비트와의 인터뷰에서 "숲의 나무들은 한 그루 한 그루가 다르고 제각각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저마다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돌아봤다.

그래서 그의 건물은 벽으로 공간을 칸칸이 나누지 않는다. 트여 있으면서도 둘러싸인 느낌을 주는 공간을 만든다. 2013년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이 대표적이다. 가는 흰색 철골을 격자로 엮어 구름처럼 떠 있는 구조물을 세웠다. 일본 미술 매체 비주쓰테초에 따르면 후지모토는 "숲과 같은 장소야말로 다양성을 품고 받아들이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이 생각이 가장 큰 규모로 실현된 것이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의 '그랜드 링(오야네 링)'이다. 엑스포 회장 디자인 프로듀서를 맡은 후지모토는 둘레 약 2㎞의 원형 목조 지붕으로 행사장 전체를 감쌌다. 이 지붕은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랐다.

후지모토는 일본 잡지 디스커버재팬과의 인터뷰에서 "원환이 힘 있게 공간의 일체감을 만드는 동시에 나무 격자가 주는 투명감과 사람을 맞아들이는 온기가 나오는 것은 목조만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첫 대규모 개인전 '후지모토 소스케의 건축: 원초·미래·숲'에는 10만명 넘는 관람객이 몰렸다.

민 대표의 이력도 음악 한 갈래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2002년 SM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간 것도 앨범 재킷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이후 그는 앨범 디자인을 넘어 의상과 소품, 뮤직비디오까지 아이돌 그룹의 이미지 전체를 설계했다.

소녀시대 '지(Gee)'의 알록달록한 스키니진, 에프엑스(f(x)) '핑크 테이프'의 앨범 콘셉트, 엑소 '으르렁'의 교복 의상이 그의 작업이다. 하이브로 옮긴 뒤에는 어도어 대표로서 뉴진스를 기획했다. 미국 빌보드는 2023년 그를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로 꼽았다.

일본에서도 민 대표의 작업은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일본 음악 매체 리얼사운드는 2024년 민 대표가 기획한 그룹들에 대해 "그 그룹과 신에서의 상식을 쇄신하고 누구도 본 적 없는 지평에 도전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썼다. 민 대표가 주도해 결성한 뉴진스를 두고는 "등장 이전과 이후로 K-팝의 흐름을 바꿔 보였다"고 평가했다.

민 대표는 당시 리얼사운드와의 인터뷰에서 "목표와 방향성이 분명하고 결과물의 완성도까지 갖춰지면 트렌드를 무시하는 편이 오히려 창의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번 카사 브루투스 화보에서는 민 대표의 감각이 집이라는 공간으로 옮겨 왔다. 그는 약 15년 전 사들여 전면 개조한 자택을 처음 공개했다. 미드센추리 빈티지 가구 옆에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레코드, 화분이 놓인 집이다.

민 대표는 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성격처럼 전혀 다른 디자인을 섞어 놓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형적인 인테리어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내 삶의 방식에 맞춰 공간을 꾸미고 싶었다"고 했다.

후지모토도 모리미술관 전시에서 자신의 건축을 비슷한 말로 소개했다. 그는 "때로는 전혀 다른 개성이 서로 울리고 이어지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민 대표는 올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오케이레코즈 역시 음악에만 머물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오케이레코즈 역시 음악이라는 한 영역에 스스로를 가두기보다 아티스트와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크리에이티브가 자유롭게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는 작업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