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철저하게 감춰왔던 '비밀 무기' 전격 공개... 전쟁 판도 바꿀 정도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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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5로 날며 궤도 꺾는 미사일 처음으로 모습 드러내
‘한국형 극초음속 활공비행체’ 첫 비행에서 목표 명중
탄도미사일은 하늘에 커다란 포물선을 그린다. 발사 직후 궤적을 계산하면 떨어질 지점도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요격 체계는 이 계산에 기대 작동한다. 그런데 대기권 상층부까지 치솟은 비행체가 추진체를 떼어내더니 낮은 고도로 내려앉았다. 이어 위아래로, 좌우로 방향을 틀며 날아가 미리 정해둔 목표점에 정확히 꽂혔다. 계산이 통하지 않는 미사일이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국 기술로 연구개발 중인 극초음속 활공비행체(HGV)의 최초 시험발사가 전날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현장에서 발사를 지켜봤다. 그동안 '비닉(秘匿) 사업'으로 철저히 감춰져 온 한국형 극초음속 무기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쏘아 올린 뒤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미사일
극초음속 활공비행체는 이름 그대로 극초음속으로 '활공'하는 비행체다. 먼저 로켓 추진체가 비행체를 대기권 상층부까지 밀어 올린다. 목표 고도와 속도에 이르면 추진체는 떨어져 나간다. 이후 분리된 활공체는 별도의 엔진 없이 얻은 속도를 이용해 글라이더처럼 대기 속을 미끄러지듯 날아간다.
극초음속은 음속의 5배, 즉 마하5 이상을 말한다. 마하5는 해수면 기준으로 시속 약 6120㎞에 해당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 약 325㎞를 3분 남짓이면 주파하는 속도다.
기존 미사일과 비교하면 특징이 더 분명해진다. 탄도미사일은 빠르지만 정해진 포물선 궤도를 따라 날아간다. 궤적을 예측할 수 있어 요격 미사일이 미리 길목을 지키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순항미사일은 낮은 고도로 날며 경로를 바꿀 수 있다. 다만 속도가 대체로 음속 이하로 느려 요격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
HGV는 두 미사일의 장점을 한데 모은 무기다. 탄도미사일 못지않게 빠르면서도 순항미사일처럼 비행 중 궤도를 바꾼다. 하강하던 비행체가 다시 고도를 끌어올리는 '풀업(pull-up)' 기동도 가능하다. 탄도미사일보다 낮은 고도로 날기 때문에 지구 곡률 탓에 지상 레이더가 비행체를 포착하는 시점도 늦어진다. 탐지는 늦고, 궤적은 예측하기 어렵고, 속도는 요격 미사일이 따라붙기 버거울 만큼 빠르다. 군사 전문가들이 HGV를 '게임체인저'로 부르는 이유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HGV에 대해 "예측이 불가능한 비행궤적과 압도적 비행 속도를 갖고 있어 유사시 주요 전략 목표를 기습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만큼,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전략자산으로 꼽힌다"고 소개했다.
수천 도 열과 싸우며 정밀 제어…세 관문 넘었다
극초음속 무기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속도 자체에 있다. 마하5 이상으로 대기 속을 날면 공기와의 마찰과 압축으로 비행체 표면이 극도로 뜨거워진다. 표면 주변 공기가 이온화하면서 플라스마가 생기기도 한다. 비행체가 이 열을 견디지 못하면 형상이 변형되거나 파괴된다. 플라스마는 통신과 유도 신호를 방해할 수 있다. 그 와중에 비행체는 스스로 자세를 잡고 방향을 틀어 목표를 찾아가야 한다.
이번 시험은 바로 이 난관을 겨냥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이번 시험발사는 극초음속 비행 환경에서 초고온 내열소재의 성능과 유도 및 제어능력, 낮은 고도에서의 불규칙 비행 능력을 최초로 검증하기 위해 실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강 수석대변인은 "시험발사된 극초음속 활공비행체는 목표 고도로 상승한 뒤 성공적으로 분리됐으며, 극초음속 비행 환경에서 계획된 비행을 이상 없이 수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기존 탄도미사일과 달리 활공비행체가 분리된 후에 낮은 고도로 강하해 수직·수평으로 자유롭게 궤도를 변경하는 불규칙 활공 비행을 완료하고 지정된 목표점에도 정확하게 탄착했다"고 전했다. 극초음속 무기의 핵심 기술을 실제 비행으로 입증했다는 뜻이다.
발사는 충남 태안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종합시험장의 해상 바지선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대지 탄도미사일을 추진체로 쓰는 방식이다. 사거리는 수백㎞ 수준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속도와 사거리, 탄두 등 세부 제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시험발사 계획을 보고받는 과정에서 해상 고정 바지에 발사대를 올려 쏘는 이유가 안전상의 문제 때문인지를 묻기도 했다고 강 수석대변인은 전했다.
10년 공들인 비밀 사업
한국의 극초음속 무기 개발은 오랜 기간 수면 아래에서 진행돼 왔다. 군은 2016년부터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 필요한 30개 기술 과제를 선정해 단계적으로 개발해 왔다. 2020년 극초음속 유도탄 개발 계획이 공개됐다. 2021년에는 군 소요가 구체화됐다. 핵심기술 개발에 착수한 지 약 10년 만에 실제 비행시험 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갈 길은 아직 남았다. 반복 비행시험으로 비행 안정성과 유도·제어 성능을 검증해야 한다. 추진체와 활공체 등 주요 구성품의 성능을 보완하고 신뢰성도 확보해야 한다. 이후 무기체계 통합과 시험평가, 양산 체계 구축을 거쳐야 실전 배치에 이른다.
이 대통령은 현장에서 시험발사 성공을 보고받은 뒤 연구원들을 격려하며 "여러분의 수고로 우리의 국방력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안보는 스스로의 힘으로 확보하는 것"이라며 "첨단 무기를 개발하고 실전 배치해 국민들이 아무런 걱정하지 않도록 정부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는 오늘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극초음속 활공비행체가 미래의 우리 안보를 지키는 든든한 전략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더욱 고도화해 나가야 한다"며 신속한 개발과 배치를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도 극초음속 미사일을 핵잠수함에 버금가는 '자주국방의 핵심 열쇠'로 지칭하며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한 바 있다.
미·중·러 이어…닷새 간격 남북 '극초음속 경쟁'
현재 HGV를 실전 배치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정도로 평가된다. 북한과 인도, 이란, 영국, 호주 등도 개발에 뛰어들었다. 다만 이들 국가의 핵심기술 확보 수준을 두고는 분석이 엇갈린다.
북한도 극초음속 무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MRBM)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우리 군은 사거리를 700㎞ 이상으로 발표했다. 반면 북한은 한국이 탐지에 실패했다며 사거리가 1000㎞였다고 주장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장은 이 미사일에 대해 "저고도에서 비행 궤도 변경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이 타격을 피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선전했다. 김여정 부장은 "구차한 변명" 등의 표현을 써가며 한국 합동참모본부와 일본 방위성을 조롱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다음 날인 4일 "북한이 최근 발사한 미사일은 한미가 보유한 방어자산으로 충분히 탐지·요격 가능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북한은 2021년부터 HGV 비행시험을 시작해 공개된 것만 7차례 중거리급 이상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군은 북한이 HGV의 안정적 비행과 정밀 유도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아직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이 대통령이 닷새 간격으로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하면서 남북 간 경쟁 구도도 선명해졌다.
탄두 8t '괴물 미사일' 현무-5도 이름 공개
이 대통령은 시험발사 참관 뒤 우리 군이 보유한 고위력 미사일 '현무-5'도 시찰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군의 강력한 자주국방 역량이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무-5는 북한 지휘부가 숨어드는 지하 벙커를 파괴하기 위한 '벙커버스터' 미사일이다. 탄두 중량이 8t에 달해 '괴물 미사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현무-5 역시 비닉 사업으로 관리돼 그동안 '고위력 미사일'로만 불렸다. 정부가 공식 보도자료에 '현무-5'라는 명칭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지뢰 도발 국면 속 '억제' 메시지
정부가 비공개로 진행해 온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전격 공개한 배경에는 최근 비무장지대(DMZ) 북한군 지뢰 폭발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 당국은 북한이 정전협정을 위반해 군사분계선(MDL)을 침범하고 우리 영토에 지뢰지대를 매설한 행위를 '도발'로 규정했다. 군은 사과를 요구하며 단호한 상응 조치를 예고했다.
야권에서는 정부 대응이 지나치게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첫 조치였던 MDL 이남 북한군 지뢰 제거를 두고도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극초음속 미사일과 현무-5 등 한국군 첨단전력을 한꺼번에 내보인 것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고 대북 억제 의지를 드러내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다만 청와대는 이날 발표에서 북한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강 수석대변인은 "이번 시험발사의 성공은 한반도 전장 환경에서 핵심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새로운 억제 수단의 본격적 확보를 위한 준비가 완료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날 시험발사에는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를 비롯해 국가안보실 1차장, 국방부 장관, 방위사업청장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