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추천사 쓴 작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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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모두 미쳤다” 수상 소감
2년 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추천사를 써준 책이 있다. 그 책을 쓴 작가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캐나다 시인 앤 카슨(76)이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뽑혔다.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고전 전통과 유희적으로 대화하며 현대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면서 카슨을 123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발표했다.

카슨의 작품 가운데 국내 독자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책으로는 '녹스(Nox)'가 꼽힌다. 2024년 수상자인 한강이 이 책의 국내판에 추천사를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문학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강 추천사 붙은 '녹스'의 작가
'녹스'는 라틴어로 '밤'을 뜻한다. 카슨은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오빠 마이클이 2000년 세상을 떠나자 그를 애도하며 이 책을 만들었다. 오빠의 사진과 편지 조각, 카슨의 메모가 아코디언처럼 접힌 긴 종이 한 장에 이어진다. 이 종이는 상자에 담겨 있다. 고대 로마 시인 카툴루스가 죽은 형을 위해 쓴 비가를 카슨이 한 단어씩 번역해 나가는 과정도 함께 실렸다.

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위원회 위원장은 이 작품을 "문학적인 만큼 조각적인 창작물이자 상자 형태로 된 묘비명"이라고 평가했다. 스웨덴 일간 예테보리포스텐(GP)의 제니 회그스트룀 문화비평 에디터도 카슨의 대표작으로 '녹스'를 추천했다.
국내판은 2022년 윤경희 번역으로 나왔다. 추천사를 잘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한강은 이 책에 “7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다”며 “녹스-밤을 들여다보는 책이 왜 이렇게 눈부신 걸까. 사무치게 진실한 것은 어둠을 꿰뚫은 빛이 되고 마는 것일까”라고 적었다.
"그들 모두 미쳤다"는 수상 소감
수상 소식은 현지시각 8일 아이슬란드에 있던 카슨에게 전해졌다. 카슨은 남편인 시각예술가 로버트 커리와 함께 아이슬란드 시민권을 갖고 있다. 잉그리드 칼베리 스웨덴 한림원 종신사무총장은 "그는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칼베리 사무총장에 따르면 카슨은 당시 아이슬란드에서 바람 소리를 듣고 있었다.
카슨은 아이슬란드 공영방송 RUV에 "미친 일이다. 내 생각엔 다들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림원과 나눈 통화에 대해서는 "그들은 늘 하는 질문을 했는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수상이 책 판매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카슨은 "책 표지에 스티커가 붙을 것이다. 스티커는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카슨은 시가 지금 산문보다 더 쓸모 있을 것이라고 봤다. 카슨은 "시는 더 빠르고, 모두가 바쁘기 때문"이라며 "호메로스만 빼고 그렇다. 호메로스는 짧지 않다"고 말했다.
상금은 1200만 스웨덴크로나(약 16억원)다. 카슨은 한림원과의 통화에서 남편과 함께 상금을 나눠줄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AP통신은 전했다.
한림원은 카슨의 거의 모든 작품이 "단어에 집착하는 문헌학자"의 기질과 새로운 의미를 찾는 시인의 기질이 만나는 자리에 놓여 있다고 봤다. 카슨이 단어의 어원을 모든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카슨이 고대 그리스어를 옮긴 번역은 그 자체로 독립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도 내놨다.
올손 위원장은 2000년작 '한가한 시간의 남자들'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와 버지니아 울프를 나란히 놓는다고 소개했다. 1999년작 평론 '잃지 않은 것들의 경제'는 고대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와 20세기 시인 파울 첼란을 맞세운 작품으로 꼽았다.
스웨덴 문단도 반겼다. 스웨덴 문학평론가 잉리드 엘람은 스웨덴 공영방송 SVT에 "카슨은 자신의 문학 안에서 모든 시대를 동시에 오가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회그스트룀 에디터는 "카슨은 돈과 명성, 전쟁과 에로티시즘에 대해 아이러니와 다정함, 날카로움을 같은 비율로 섞어 쓴다"고 평했다. 카슨의 책을 스웨덴어로 옮긴 번역가 니클라스 하가는 SVT에 "카슨은 말수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파킨슨병 투병 속 이어진 집필
캐나다도 들썩였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소셜미디어에 카슨이 "위트와 상상력, 온전히 자신만의 문체로 고전을 다시 상상했다"고 썼다. 카슨은 솔 벨로(1976년)와 앨리스 먼로(2013년)에 이어 캐나다에서 태어난 세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카슨이 학위 3개를 받은 모교 토론토대의 멜라니 우딘 총장은 "동문 앤 카슨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밝혔다.
카슨의 출세작 '빨강의 자서전'은 미국에서만 10만부 가까이 팔렸다. 미국 출판사 크노프가 이 수치를 공개했다.
카슨은 2024년 8월 영국 문예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같은 해 시와 산문, 그림을 엮은 '잘못된 규범(Wrong Norma)'을 펴냈다. 이 책의 스웨덴어판은 올해 1000부 한정으로 출간됐다.
시상식은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지난해 수상자는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