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리노공업 62일 파업의 대가…일감은 해외로, 고용불안은 부산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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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대만 경쟁업체로 생산물량 이탈…내년 상반기 수주 공백 우려
- 2000억원 신공장 투자·200명 신규 고용 기대…부산 반도체 산업에도 부담
- 13일 제13차 노사교섭 예정…금속노조 상급단체 역할과 책임도 주목
[부산=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 파업은 끝났지만 떠나간 일감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부산을 대표하는 반도체 부품기업 리노공업이 62일간의 전면파업을 끝낸 뒤 마주한 현실이다.

지난 7월 23일부터 9월 23일까지 이어진 전면파업으로 생산에 차질이 발생했고, 그동안 확보했던 일부 고객사 물량이 일본과 대만 경쟁업체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상반기 생산물량 확보에도 어려움이 제기되면서 순환휴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다만 순환휴직 시행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리노공업은 1978년 창업 이후 반도체 검사용 핀과 테스트 소켓을 국산화하며 성장한 부산의 향토기업이다. 수도권에 반도체 산업이 집중된 상황에서도 부산에 생산 기반을 유지하며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2429억원, 영업이익은 120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출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리노공업은 부산 강서구 에코델타시티에 약 2000억원을 투자해 본사와 생산시설을 확장하고 있다. 부산시는 기업유치 전용구역의 첫 투자기업으로 리노공업을 선정했고, 200여 명의 신규 고용과 지역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기대했다.
에코델타시티는 한국수자원공사와 부산시, 부산도시공사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다. 공공부문이 산업 기반을 마련하고 기업이 투자해 지역경제를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리노공업의 신공장 역시 이러한 지역 산업 육성의 흐름 속에서 추진됐다.
그런데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기업이 정작 내년 상반기 생산물량 확보에 차질을 겪고 있다. 부산의 미래 산업을 키우기 위해 추진한 투자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운 대목이다.
반도체 부품시장은 기다려주는 시장이 아니다. 고객사는 정해진 납기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받아야 한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더라도 생산과 공급이 불안정하면 다른 업체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한번 다른 업체로 넘어간 물량을 다시 확보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번 장기파업 과정에서 리노공업의 일부 생산물량이 일본 야마이치와 요코오, 대만 윈웨이 등 해외 경쟁업체로 이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간 생산 차질로 납기 대응이 어려워진 것이 주요 배경으로 거론된다. 다만 업체별 이전 물량과 계약 규모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더욱 아쉬운 것은 노사협상 과정이다.
리노공업 노사는 임금과 성과급 등을 놓고 여러 차례 교섭을 벌였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특히 협상이 상당 부분 진전됐다가 결렬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파업이 장기화했고, 그 사이 생산 차질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의 역할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장 노사가 어렵게 합의점을 찾아가더라도 상급단체와의 협의 및 의사결정 과정에서 타결이 지연된다면 그 구조가 과연 현장 근로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
물론 교섭 결렬의 책임을 상급단체에만 돌릴 수는 없다. 노조는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고, 회사는 경영상 부담과 지속 가능한 보상체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양측의 견해차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파업이 남긴 경제적 결과만큼은 노사 모두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지난 9월 23일 노조가 전면파업을 중단하고 현장에 복귀했지만 생산이 재개됐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해외로 이전된 고객사 물량을 되찾아야 하고, 흔들린 공급 신뢰도 회복해야 한다.
내년 상반기 생산물량 부족으로 순환휴직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은 특히 우려스럽다. 실제 시행된다면 근로자들의 소득과 고용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던 근로자들이 오히려 일감 부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금속노조 역시 현장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과 함께 기업의 생산 경쟁력과 고용안정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야 한다. 회사 또한 근로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보상체계와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마련할 책임이 있다.
리노공업은 부산에서 수십 년간 기술력을 축적하며 성장한 기업이다. 그 과정에는 경영진의 투자와 판단뿐 아니라 생산현장 근로자들의 노력도 있었다. 어느 한쪽의 성과만으로 오늘의 리노공업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부산시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기업이 새로운 공장을 짓는 이유도 결국 지속적인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있다. 노사갈등이 장기화해 고객사가 이탈하고 생산물량이 줄어든다면 그 피해는 기업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협상에서 이겼느냐가 아니다. 해외로 넘어간 일감을 어떻게 되찾고, 고객사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다.
오는 13일 리노공업 노사는 제13차 단체교섭을 앞두고 있다. 62일간의 전면파업은 끝났지만 해외 경쟁업체로 넘어간 물량과 내년 상반기 생산 차질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교섭에서도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그 부담은 생산현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금속노조를 비롯한 상급단체 역시 현장의 고용안정과 기업의 경쟁력을 함께 고려하는 책임 있는 판단이 요구된다. 회사 또한 갈등을 끝내기 위한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리노공업이 수십 년간 쌓아온 기술력과 글로벌 고객사의 신뢰는 노사 모두가 지켜야 할 자산이다. 더 이상의 대립으로 해외 경쟁업체에 기회를 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싸워야 할 상대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사가 아니라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하는 해외 기업들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지만 국내 반도체 산업이 그 온기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특히 세계시장에서 기술력 하나로 경쟁해 온 기업이 노사갈등으로 경쟁력을 잃는다면 그 피해는 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렵게 쌓아 올린 기술과 고객의 신뢰는 한순간에 흔들릴 수 있지만, 이를 되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노사가 지켜야 할 것은 당장의 이해관계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다.
오는 13일 교섭은 단순한 노사협상의 자리가 아니다. 장기 갈등으로 흔들린 생산현장을 정상화하고, 세계시장에서 쌓아 올린 리노공업의 기술력과 신뢰를 지켜낼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더 이상의 교섭 결렬로 잃어버릴 시간은 없다. 노사갈등의 대가는 결국 기업과 근로자 모두가 치르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분을 앞세운 대립이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