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군대 안 갑니다” 한마디에 재조명… 아시안게임 군면제, 정부가 1년 고민하고도 못 없앴다
선호 출처로 추가
선호 출처로 추가하면 Google 주요 뉴스에 위키트리 기사가 더 자주 표시됩니다.
2018·2023 아시안게임 편입자 98명 중 68명이 축구·야구
운동선수 20명이 한꺼번에 현역 복무 대신 체육요원이 되는 종목이 있다. 바로 축구다.

그리고 이런 일이 대회마다 되풀이되면서 아시안게임 병역특례 수혜자의 약 70%가 축구와 야구 두 종목에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뉴스가 14일 단독 보도한 내용이다.
8년 사이 체육요원 편입자 98명 중 68명이 축구·야구 선수
파이낸셜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병무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이날 공개했다. 김 의원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이다.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과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거쳐 체육요원으로 편입된 선수는 모두 98명이다. 이 가운데 축구가 40명이었고, 야구가 28명이었다. 두 종목 선수만 68명으로 전체의 69.4%를 차지했다.
대회별 수치도 비슷했다. 2018년에는 전체 41명 가운데 축구 20명과 야구 9명을 합쳐 29명이 편입됐다. 비율로는 70.7%다. 2023년에는 전체 57명 중 축구 20명과 야구 19명을 더해 39명이 혜택을 받았다. 이때 비율은 68.4%였다.

올해 열린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새로 체육요원 편입요건을 채운 선수는 56명이다. 그중 축구가 20명이고 야구가 16명이다. 두 종목 비중만 64.3%에 이른다. 여기에 농구 8명과 3대3 농구 4명까지 더하면 48명으로 늘어난다. 전체의 85.7%가 단체종목 선수인 셈이다.
개인종목과 단체종목의 격차도 갈수록 벌어졌다. 병무청 분류 기준으로 2018년 대회 편입자 중 단체종목 비중은 80.5%였다. 그런데 2023년에는 이 비중이 89.5%까지 올라갔다. 개인종목은 금메달 1개가 선수 1명의 편입으로 이어진다. 반면, 단체종목은 금메달 1개로 많게는 20명이 편입될 수 있다.
점수제부터 전면폐지까지 검토했지만 제도는 그대로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13년부터 2014년까지 국제대회 성적을 누적해 일정 점수를 넘기면 체육요원으로 편입하는 점수제를 검토했다. 그러나 병역특혜 논란을 근본적으로 풀기 어렵다고 판단해 도입을 미뤘다.
점수제는 2018년부터 2019년 사이 다시 논의됐다. 하지만 종목마다 국제대회 개최 주기와 횟수가 크게 달랐다. 그래서 공정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편입 인원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결국 이때도 채택되지 않았다.
2019년에는 제도를 아예 없애는 방안까지 테이블에 올랐다. 2018년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 선발 과정을 두고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프로선수와 사회인 선수가 맞붙는 경기 수준 차이도 논란이 됐다. 이에 국방부와 병무청,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TF는 약 1년 동안 논의했다. 그러나 결론은 제도 유지였다. 당시 정부는 다른 대체복무 제도와의 형평성과 비인기 종목이 위축될 가능성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2019년 7월 일반 국민과 현역 장병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제도 유지 찬성 의견이 47~66%로 나온 점도 고려했다.
현행 병역법상 올림픽 동메달 이상이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될 수 있다. 다만, 월드컵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성적은 대상이 아니다. 체육요원은 법률상 병역면제가 아니다. 이들은 군사교육을 받은 뒤 34개월 동안 해당 분야에서 복무한다. 그리고 이 기간 544시간의 특기활용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 현역병으로 복무하지 않기 때문에 흔히 '아시안게임 군면제', '아시안게임 병역특례' 등으로 불린다.
김 의원은 "1973년 도입된 제도가 53년 동안 이어지면서 야구와 축구 등 특정 단체종목에 혜택이 지나치게 쏠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BTS 멤버들조차 성실히 군 복무를 이행하는 상황”이라며 "금메달 하나로 대거 병역 혜택을 받는 현실을 청년들이 공정하다고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국방부와 병무청은 그동안 수많은 개선안을 검토하고도 제도를 방치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아시안게임 특례 폐지·축소를 포함해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한 전면 재정비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선수 발언 논란 뒤 국방부·정치권도 움직였다
이번 논란은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언행에서 다시 불붙었다. 축구대표팀 주장 이기혁은 경기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저 군대 안 갑니다"라고 말했다. 양민혁은 병역 혜택을 보상으로 바라보고 뛰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또한 박승수는 라커룸에서 이른바 '전역모'를 쓴 사진을 SNS에 올려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국방부는 지난 6일 예술·체육요원을 포함한 보충역을 단계적으로 줄이거나 없애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병역의무자 사이의 형평성, 공정성, 병역자원 감소 등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정치권에서도 목소리가 나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SNS에 "이 대통령께서는 결단하시라"는 글을 올렸다. 안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2021년 BTS 병역특례 논란 당시 "면제는 최대한 자제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한 사실을 다시 꺼냈다. 그러면서 "이제는 그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특히 안 의원은 선수 경력 보호 논리도 반박했다. 안 의원은 "경력 단절은 이 땅의 모든 청년이 똑같이 겪는 문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예술·체육요원 편입 대상은 병역법 시행령 제68조의11에 규정돼 있다"고 짚었다. 그래서 국회 논의 없이 대통령령 개정만으로 특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것이 안 의원의 주장이다.
해외 징병제 국가들은 한국과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싱가포르 국방부는 2024 파리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막시밀리안 매더를 두고 면제 주장이 나오자, 스포츠 성과를 이유로 국가복무를 면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다. 대신 매더에게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까지 입영을 연기해 줬다. 대만은 보충병역을 허용하되, 일정 기간 국가대표 활동을 의무로 정했다. 스위스는 엘리트 선수가 연간 최대 130일의 복무일을 훈련과 경기에 쓸 수 있도록 한다.
학계에서는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뉴시스에 "군 복무는 공동체 안보를 위한 국민 분담의 공적 의무"라고 말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도 "수십 년간 이어진 병역특례 제도를 전면적으로 다시 들여다볼 때"라고 했다.
다만, 제도를 없애기만 하면 선수 경력이 끊기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학계는 입영 연기 확대와 국군체육부대(상무) 확대·개편, 복무 중 훈련과 국제대회 참가 보장 등을 대안으로 내놨다. 유 연구위원은 "병역의무의 보편성과 엘리트 선수 육성이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