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리노공업 13차 노사교섭 결렬…일본·대만에 넘어간 물량, 되찾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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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20일 교섭 결렬 확인…실무교섭은 계속
- 62일 전면파업에 해외 경쟁사로 공급물량 이탈…내년 상반기 일감 확보 우려
- 중국 반도체 추격까지 거세지는 글로벌 시장…노사갈등 장기화에 고용불안 그림자

[부산=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 부산의 대표적인 반도체 검사 부품기업 리노공업이 62일간의 전면파업을 끝내고 생산을 재개했지만 노사갈등은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제13차 임금·단체협약 교섭마저 결렬된 가운데 파업 기간 해외 경쟁업체로 넘어간 공급물량을 얼마나 되찾을 수 있을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리노공업 전경. / 사진=최학봉 선임기자. <저작권자(c) 위키트리,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리노공업 전경. / 사진=최학봉 선임기자. <저작권자(c) 위키트리,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일 위키트리 취재 결과,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관계자는 리노공업의 제13차 노사교섭이 결렬됐으며 현재 실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키트리는 앞서 회사 측 입장을 취재한 데 이어 이날 노조 상급단체와 직접 통화해 교섭 결과를 확인했다.

정식 교섭에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실무교섭은 계속되고 있다. 노사 간 대화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닌 셈이다. 다만 이번 교섭에서 양측이 어떤 쟁점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는지, 실무교섭에서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리노공업 노조는 지난 7월 23일 전면파업에 들어가 9월 23일 현장에 복귀했다. 62일간 이어진 파업은 끝났지만 그 여파는 생산현장에 남아 있다.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해외 경쟁업체로의 공급물량 이탈이다.

파업 기간 리노공업이 공급하던 반도체 검사 부품 물량 일부가 일본 야마이치와 요코오, 대만 윈웨이 등 경쟁업체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간 생산 차질이 이어지면서 납기 준수가 어려워진 품목을 중심으로 고객사들이 대체 공급업체를 찾았고, 이 과정에서 일부 물량이 해외 경쟁사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다만 업체별 이전 물량과 계약 규모, 생산 재개 이후 회복된 물량은 확인되지 않았다.

반도체 검사 부품 시장에서 납기는 품질 못지않게 중요한 경쟁력이다. 고객사는 생산 일정에 맞춰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기존 거래업체에서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다른 업체의 제품을 검증하고 공급선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

리노공업의 주력 제품인 테스트 핀과 소켓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의 전기적 특성과 성능을 검사하는 데 사용되는 부품으로, 정밀한 기술력과 안정적인 공급 능력이 요구된다.

문제는 한 번 바뀐 공급선을 다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새로운 공급업체가 고객사의 품질 검증을 통과하고 안정적으로 납품하기 시작하면 기존 업체가 생산을 정상화하더라도 물량이 곧바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가격과 품질, 납기 등에서 다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리노공업이 파업 이전의 생산 수준을 회복하는 것과 잃어버린 거래물량을 되찾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상반기 생산물량 확보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수주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순환휴직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순환휴직 시행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외로 이탈한 물량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할 경우 생산설비 가동률과 인력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다.

더욱이 리노공업이 처한 상황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기술 추격과 차세대 D램 시장 진출 움직임은 국내 반도체 산업에 새로운 경쟁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도 반도체 업종을 둘러싼 불안감이 커졌다. 지난 13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7.39%, 10.09% 급락했다. 인공지능 투자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과 외국인 매도세,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경쟁 심화에 대한 경계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시장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중국 기업의 기술 추격을 주가 급락의 단일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또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CXMT와 반도체 검사 부품을 만드는 리노공업은 사업 영역도 다르다.

그러나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력뿐 아니라 공급망과 고객사 확보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런 가운데 리노공업의 장기 노사분규가 중국 언론에서도 보도된 사실이 확인됐다. 중국 기업들이 이번 분규로 직접적인 이익을 얻었다고 볼 근거는 없지만, 부산의 한 반도체 부품기업에서 발생한 노사갈등이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리노공업은 올해 상반기 매출 2429억 원, 영업이익 1208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49%를 웃돌 만큼 높은 수익성을 갖춘 기업이다. 해외 매출 비중도 80%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회사 실적을 좌우하는 구조다.

이처럼 탄탄한 실적을 올리던 기업이 장기간의 노사분규 이후 해외 거래물량 회복과 향후 일감 확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노조는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 노동자의 권익 보장을 요구해 왔다. 반면 회사 측은 노조의 일부 요구가 경영과 인사권을 제약하고 기업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노동자의 권익 보장과 기업의 안정적인 생산활동은 어느 한쪽만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노사 간 이견이 길어지는 동안 거래처와 시장 상황은 계속 달라지고 있다.

이번 제13차 교섭 결렬이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업 이전에는 임금과 근로조건을 둘러싼 갈등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해외로 넘어간 물량을 회복하고 앞으로의 일감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더해졌다.

일감이 줄어들면 그 부담은 결국 생산현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회사의 매출과 수익성이 영향을 받고, 상황이 악화하면 근로자들의 고용안정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현재 거론되는 수주 공백과 순환휴직 가능성이 실제 어느 정도의 경영 부담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해외로 이전된 물량의 규모와 회복 여부 역시 앞으로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분명한 것은 62일간의 파업이 끝났다고 해서 그동안 발생한 생산 차질과 거래처 이탈 문제가 함께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사가 실무교섭을 이어가는 사이에도 고객사들은 납기와 품질, 가격을 기준으로 공급업체를 선택하고 있다. 해외 경쟁업체 역시 어렵게 확보한 거래물량을 쉽게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리노공업은 이제 임단협 타결과 함께 해외로 넘어간 물량을 되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노사 모두에게 시간이 넉넉한 상황은 아니다.

62일간의 파업은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리노공업의 노사 합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