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 발언 두고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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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주장... 송민순 "동맹은 현실, 핵 잠재력 갖춰야"
외교안보 원로 좌담회서 북핵·한미동맹 놓고 정면충돌
한미동맹을 두고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외교안보 원로들 사이에 날 선 공방이 벌어졌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신 북미대화, 기로에 선 한반도: 국가원로에게 길을 묻다'를 주제로 21일 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특임교수는 "나는 개인적으로 동맹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라고 본다. 동맹하는 한 우리는 안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미국이 한국을 중국 견제를 위한 최전방 기지로 여기고 있다고 봤다. 이 때문에 한국이 미·중 패권 경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게 문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앞으로 20∼30년을 본다면 (한미동맹이) 축복이 아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문 교수는 집단방위 체제인 동맹을 집단안전보장 체제와 새로운 안보 공동체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진단은 달랐다. 송 전 장관은 "동맹은 축복도 저주도 아닌 현실"이라고 말했다. 동맹의 틀은 유지하되 그 안에서 한국의 자율성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송 전 장관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맞서 한국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능력을 확보해 핵 잠재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전 장관은 "일본과 독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핵 국가인가"라고 되물었다. 핵무기를 직접 갖지 않더라도 언제든 만들 수 있는 능력은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 교수는 이 주장에 곧바로 제동을 걸었다. 문 교수는 "차라리 우리는 원자력의 평화적·상업적 이용만 한다고 계속 강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지키겠다고 얘기해야 한다. 핵 잠재력을 자꾸 캠페인처럼 하고 다니니까 국제적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도 핵 잠재력 확보론에 대해 "실현 가능한 것이냐, 과연 추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는 상당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송 전 장관은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 능력을 갖추면 (핵 잠재력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송 전 장관은 “30평짜리 아파트는 있는데 땅 지분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와 똑같다”고 말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산업 경쟁력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래주의 외교에 맞서 조선·반도체·원전·배터리·방산 분야의 경쟁력을 앞세우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안보 공약과 원자력 협력에서 실질적인 이익을 얻어내야 한다는 게 윤 전 장관의 구상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열릴지를 두고도 원로들의 전망이 엇갈렸다. 문 교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대화로 전략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다만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기억이 김 위원장에게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쪽에서 구체적인 상응 조치나 사전 협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 교수는 지적했다. 문 교수는 "명분은 있어 보이는데 실리와 절차적 측면에서 상당히 어렵게 보인다"고 말했다.
송 전 장관도 회담 성사 가능성을 낮게 봤다. 송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야 할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 말고는 별로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이 북핵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데다 실질적인 합의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송 전 장관은 두 정상이 실질적인 합의보다 정치적 성과를 과시하려고 만날 가능성은 열어뒀다.
장 교수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장 교수는 "나는 관심이 대단히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노벨평화상에 대한 집착이 엄청 강한 사람 아니냐.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대화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가 성과를 내면 남북 간 긴장도 누그러질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그러면서도 윤 전 장관은 "미국과 북한에는 좋을 수 있지만 한국에는 나쁜 최종 결과물이 도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한미 간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북한을 믿을 만한 협상 상대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는 문 교수와 장 교수가 설전을 벌였다. 문 교수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역지사지하고 공감하면 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느끼는 체제 붕괴 우려를 이해해야 대화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건 좋지만, 그동안 협정 사항을 다 어긴 게 북한 아니냐"고 되물었다. 문 교수는 "북한 편을 드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맞받았다. 북핵 협상 과정에서 미국도 합의를 어겼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강대국들이 국제질서를 다시 짜는 과정에서 한국이 배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대국들이 자국 이익에 따라 움직이면서 새로운 '얄타 체제'나 '애치슨 라인'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빼놓은 채 전쟁 종식 문제를 논의하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장 교수는 "이런 현상이 한국에 나타날 가능성이 너무 커 보여 걱정"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의 한미동맹 관련 발언이 논란을 부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지냈다. 특보 시절 그의 발언은 정부 공식 입장과 엇갈릴 때마다 도마에 올랐다.
문 교수는 2017년 6월 미국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방미를 앞둔 시점이었다. 청와대는 문 교수의 발언이 한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을 문 교수에게 전달했다.
문 교수는 2017년 9월 국회 토론회에서 "한미동맹이 깨지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고 말해 보수 야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
2018년 5월에는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이 문제가 됐다. 문 교수는 이 글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취지로 썼다.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로 평화협정과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문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입장과 혼선이 빚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했다. 같은 달 문 교수는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과 인터뷰하면서 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을 없애는 게 최선이라는 취지로 말해 다시 논란이 일었다.
2020년 10월에는 한국이 미국의 중국 견제용 군사훈련에 참여하면 중국이 한국을 적으로 여길 것이라는 취지로 말해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