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사망설 급속확산 속 북한서 동시다발적 이상징후 포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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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이 MDL 인근 전방까지 내려온 것 자체가 이례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망설이 급속히 퍼지는 가운데 북한에서 이상징후라고 할 만한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의 행보다. 김 부장은 당과 군의 수뇌부를 이끌고 최전방을 찾았다. 확성기 방송 재개 같은 군사적 조치도 김 위원장이 아닌 김 부장이 직접 담화로 발표하고 있다. 김 부장은 메시지를 낼 때마다 김 위원장에게서 위임을 받았다거나 국가수반의 지시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은 21일 박정천 국방성 고문과 김 부장이 남부국경 요새화 공사 현장의 주요 지점을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시찰에는 리일환 노동당 비서와 인민군 총참모부 주요 지휘관들도 동행했다. 박 고문은 지난 8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다시 임명된 군부 핵심 인물이다. 북한군 2인자에 당 비서까지 대동한 시찰이었다. 당 내부 살림을 맡는 총무부장인 김 부장이 군사분계선(MDL) 인근 전방까지 내려온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부장은 시찰 현장에서 국가수반이 적대국과 맞닿은 국경선을 가장 영구적인 선으로 만들라고 명령했다며 남부국경 영구화 공정은 "절대로 거스를 수 없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부장이 그의 명령을 대신 전달했다.
김 부장은 전날 새벽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도 "(김 위원장) 위임에 따라 언명한다"고 못박았다. 김 부장은 "전 국경선에서 우리의 새로운 대응수단들은 임무대기태세에 들어갈 것이며 대한국 확성기들도 수일 안으로 대기상태에 들어가게 된다"고 밝혔다. 김 부장은 "만약 순간이나마 실수라도 범한다면 모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이것은 위협이 아니라 분명한 경고"라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 부장이 국가수반의 지시를 거듭 내세우는 데 대해 군 내부에 이를 주입해 결속을 다지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 부장은 19일부터 전날까지 나흘 사이 세 차례 담화를 냈다. 김 부장은 19일 담화에서 "전술적 타격수단들을 전 남부국경선 부근에 증강배치하는 문제와 대한국 확성기방송을 재개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21일 담화에서는 10월 중으로 "대한국 심리전 확성기들이 전 국경선에서 가동 상태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전방 화력 배치와 확성기 재개는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밝힐 만한 사안이다. 이런 조치를 김 부장이 모두 떠맡아 발표하고 있는 것이 심상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김 부장은 남측과 상대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런데도 우리 측 반응에 일일이 대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김병주 청와대 국방정책특별보좌관은 21일 페이스북에 "김 부장, 지뢰를 묻은 손으로 적대적 확성기를 잡지 마라"라는 글을 올렸다. 김 부장은 이튿날 새벽 담화에서 "청와대 국방정책특별보좌관이라는 자는 횡설수설 말고 입을 당장 닥쳐야 한다"고 곧바로 맞받았다.
해외에 나가 있는 북한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이상징후가 감지됐단 말이 나온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민인 고영환 전 통일교육원장은 전날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들은 첩보라며 베이징 주재 북한 공무원들에게 정위치하라는 지시가 내려갔다고 밝혔다. 정위치 지시는 국가 중대사태가 벌어졌거나 본국으로 소환될 일이 있을 때 언제든 복귀할 수 있도록 자리를 지키라는 뜻으로 내려진다.
그는 그는 "당 창건 기념일이라든가 김정은 생일이라든가 이럴 때만 내려오는 지시"라며 "왜 갑자기 저런 지시가 내려왔을까. 평양에서 뭔가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사망설까지는 믿지 않는다"면서도 김 위원장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수는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아프다든가 침대에 누웠다든가 우리에게 알려질 큰 사건 같은 게 생기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고 전 원장은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민이다.
북한 인터넷망에서도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20일 오전 11시쯤부터 조선중앙통신, 민주조선, 내나라, 외무성, 고려항공 홈페이지 등 ‘.kp’ 도메인을 쓰는 사이트 42곳이 한꺼번에 접속 장애를 일으켰다. 북한의 전자우편 서버도 같은 시각부터 멈췄다. 일부 사이트가 잠시 열렸다가 다시 끊기기를 되풀이하던 장애는 약 32시간 이어진 뒤 21일 밤 대부분 복구됐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 사망설은 미국에 사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쥔이 18~19일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시작됐다. 셰완쥔은 김 위원장이 뇌출혈로 쓰러져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주장도 함께 퍼졌다.
북한은 곧바로 김 위원장의 활동 사진을 내놨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20일 김 위원장이 19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 신발전시회-2026'을 둘러봤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김 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딸 주애와 함께 전시장을 돌아보는 모습이 담겼다.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 보도는 11일 국방혁명박물관 개관식 이후 8일 만이다. 북한은 그동안 최고지도자 사망설이 돌아도 별다른 언급 없이 넘어가곤 했다. 이번처럼 사진을 내놓으며 대응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셰완쥔은 사진이 공개되자 과거에 찍혔거나 연출된 사진이라며 대역을 내세운 것이라는 주장을 새로 내놨다.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는 꾸준히 관심사였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 위원장의 체중을 약 140㎏으로 추정했다. 국정원은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봤다. 다만 뚜렷한 건강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으며 전담 의료진의 관리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 사망설은 2020년 4월에도 돌았다. 김 위원장은 그해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생일 태양절 행사에 불참했다. 김 위원장은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