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사망설 일파만파... '미국, 후계자로 김한솔 내정' 주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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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근거 부족한 루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망설을 토대로 한 미확인 루머들이 퍼지고 있다. 이 루머는 김 위원장 조카 김한솔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보호 아래 북한의 차기 후계자로 내정됐다는 주장, 주한미군이 북한에 평화유지군으로 투입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김정남(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 이복형) 아들인 김한솔. / 연합뉴스
김정남(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 이복형) 아들인 김한솔. / 연합뉴스

김 위원장 사망설은 해외 소셜미디어(SNS)에서 시작돼 국내로 번졌다. 북한이 김 위원장의 활동 사진을 공개한 뒤에도 사망설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국내 메신저와 단체대화방에서 김 위원장 사망을 기정사실로 놓고 그 이후 상황까지 담은 '받은 글'이 돌고 있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메신저와 단체대화방에서 전날 퍼진 이른바 '받은 글'은 김 위원장이 뇌혈관 질환으로 숨졌다는 것을 확정된 사실처럼 전제한다. 이어 CIA의 보호를 받아 온 김한솔이 차기 후계자로 비밀리에 내정됐다고 주장한다. 주한미군이 북한 신정권 보호와 중국 개입 차단을 위해 평화유지군으로 즉시 투입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글은 앞서 해외 소셜미디어(SNS)에서 퍼진 사망설을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사망설은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쥔이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시작됐다. 셰완쥔은 김 위원장이 뇌출혈로 쓰러져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숨졌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김 위원장의 딸 김주애의 승계를 돕기 위해 병력 9000명을 평양에 보냈다는 주장도 내놨다. 받은 글은 여기에 CIA와 김한솔, 미군 진입 시나리오를 덧붙인 형태다.

사망설의 전제부터 근거가 없다. 셰완쥔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는 김 위원장이 19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피복, 신발전시회-2026'을 부인 리설주, 딸 김주애와 함께 둘러봤다고 20일 보도했다. 사진의 실제 촬영 시점은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 당국도 사망설을 뒷받침하는 발표를 하지 않았다.

김한솔은 김 위원장 이복형인 김정남의 아들이다. 1995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맏손자이기도 하다. 그는 보스니아의 국제학교인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르아브르 캠퍼스에서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에는 핀란드 방송 인터뷰에 나와 한반도 통일을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남(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 이복형) 아들인 김한솔. 그는 2017년 8일 'KHS Video'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게시된 40초 분량의 영상에서 '내 이름은 김한솔로, 북한 김씨 가문의 일원'이라고 영어로 말했다.
김정남(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 이복형) 아들인 김한솔. 그는 2017년 8일 'KHS Video'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게시된 40초 분량의 영상에서 "내 이름은 김한솔로, 북한 김씨 가문의 일원"이라고 영어로 말했다.

그의 삶은 2017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크게 바뀌었다. 김정남은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고 숨졌다. 이후 김한솔 가족의 탈출을 도운 곳은 북한 반체제 단체인 천리마민방위였다. 이 단체는 현재 자유조선으로 이름을 바꿨다.

김한솔은 그해 3월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 직접 나와 자신이 김정남의 아들이라고 밝혔다. 천리마민방위는 미국 등 여러 정부가 인도적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탈출 경로와 정착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김한솔의 행방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받은 글‘이 ‘CIA 보호'를 내세운 데는 2017년 탈출 과정에 CIA가 관여했다는 과거 보도가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2020년 11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키 김의 기사를 통해 김한솔 가족의 탈출 과정을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김한솔 가족은 마카오를 떠나 대만을 거쳐 네덜란드로 향했다. 대만 공항에서 CIA 요원이라고 밝힌 남성 두 명이 접근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도착한 뒤 가족은 자취를 감췄다. 자유조선 관계자들은 CIA가 가족을 데려갔다고 주장했다. CIA는 당시 뉴요커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받은 글‘의 핵심은 미국이 김한솔을 북한의 차기 후계자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내놓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북한 후계 문제와 관련해 이 같은 입장을 밝힌 적도 없다. 한국 정보당국의 판단과도 다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김주애가 군사 분야를 넘어 경제와 정치, 외교 분야로 공개 활동 범위를 넓히며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한미군 투입설도 확인된 사실이 없다. 주한미군이나 한국 정부가 관련 작전계획이나 병력 이동을 발표한 적은 없다. 주한미군의 이례적인 움직임도 보도되지 않았다.

’받은 글‘이 내세운 '평화유지군'이라는 표현 자체도 맞지 않는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되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임무 승인과 분쟁 당사자의 동의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주한미군이 북한에 들어간다고 해서 자동으로 평화유지군 지위를 얻는 것은 아니다.

사망설을 반박하려는 ’받은 글‘도 돌고 있다. 주한미군의 부대방호태세(FPCON)가 '브라보' 단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사망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역시 근거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FPCON은 테러 위협으로부터 미군 병력과 군사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방호태세로, 정상과 알파, 브라보, 찰리, 델타 등 5단계로 나뉜다. 북한의 군사 활동을 감시하는 한미연합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WATCHCON), 전투준비태세인 데프콘(DEFCON)과는 다른 개념이다. 주한미군은 지난해 6월 이미 1년 넘게 브라보 단계를 유지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FPCON은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을 판단하는 지표가 아닌 셈이다.

북한에서는 최근 이례적인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박정천 국방성 고문과 리일환 노동당 비서 등 당과 군 수뇌부를 이끌고 군사분계선(MDL) 인근 최전방을 찾았다. 당 내부 살림을 맡는 총무부장이 전방까지 내려온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부장은 나흘 사이 세 차례 담화를 냈다. 전방 화력 배치와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처럼 최고지도자가 직접 밝힐 만한 군사 조치를 김 부장이 대신 발표했다. 그때마다 김 위원장의 위임이나 지시라는 점을 내세웠다. 조선중앙통신과 외무성, 고려항공 등 ‘.kp’ 도메인을 쓰는 사이트 42곳은 20일 오전부터 약 32시간 동안 접속 장애를 겪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을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과 직접 연결할 근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김한솔 / '자유조선 - Free Joseon'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