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남한 위협 담화 쏟아내면서... 정작 북한 주민에겐 숨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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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은 확성기·지뢰 갈등 모른다
무인기 땐 주민 총동원… 이번엔 침묵

북한이 남측을 향해서는 연일 위협 담화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국 주민에게는 이 내용을 알리지 않고 있다.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의 대남 담화가 이어지는 동안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 지면에는 관련 기사가 한 줄도 실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의 김정은(왼쪽)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 / 연합뉴스
북한의 김정은(왼쪽)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 / 연합뉴스

23일 당국에 따르면 남북 갈등은 지난 9월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고에서 시작됐다. 우리 군과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군이 묻은 지뢰가 터진 것으로 결론 냈다. 북한은 이를 부인했다. 이후 우리 군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국경선 요새화' 공사를 하며 정전협정을 어길 때마다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으로 맞섰다. 북한은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와 MDL 일대 무력 증강 배치를 꺼내 들며 맞불을 놓고 있다.

북한의 입장은 주로 김 부장 입을 통해 나왔다. 김 부장은 지뢰 폭발 사고 이후 7차례 담화를 냈다. 처음 두 차례 담화에서는 사고 책임을 부인했다. 이어 사고를 남측의 '자작극'으로 몰아가며 우리 정부의 의료지원 계획까지 문제 삼았다. 이달 19일부터는 확성기 방송 재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21일 담화에서는 10월 안에 대남 심리전 확성기를 전 국경선에서 가동하겠다고 예고했다. 전날 담화에서는 새로운 대응수단이 임무대기태세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위협 수위도 높아졌다. 김 부장은 전날 담화에서 "만약 순간이나마 실수라도 범한다면 모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이것은 위협이 아니라 분명한 경고"라고 했다. 남측 인사의 발언에도 곧바로 반응했다. 김병주 청와대 국방정책특별보좌관(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페이스북에 "김 부장, 지뢰를 묻은 손으로 적대적 확성기를 잡지 마라"라는 글을 올렸다. 김 부장은 이튿날 새벽 담화에서 "청와대 국방정책특별보좌관이라는 자는 횡설수설 말고 입을 당장 닥쳐야 한다"고 맞받았다.

이들 담화는 모두 조선중앙통신으로 나왔다. 조선중앙통신은 인터넷으로만 기사를 공개한다. 일반 북한 주민이 접할 수 있는 관영매체는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국영방송인 조선중앙TV 정도다. 두 매체가 담화를 받아 전하지 않으면 주민들은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소개한 노동신문 지면 구성을 확인해 보니 김 부장의 담화는 지면에 오르지 않았다. 담화가 나온 직후인 이달 2일, 9일, 10일, 19일, 20일, 21일자 노동신문 1~6면 어디에도 김 부장의 담화나 확성기 관련 기사는 없었다.

김 부장이 확성기 방송 재개를 처음 언급한 뒤 나온 20일자 노동신문은 1면을 김정은 국무위원장 기사로 채웠다. 김 위원장이 평양의 경공업 부문 피복·신발 전시회장을 둘러본 소식과 사진이다. 2면에는 김 위원장이 베트남 지도자에게서 받은 답전이 실렸다. 남측을 겨냥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21일자도 마찬가지였다. 1면에는 노동당 구호를 해설하는 글과 전국 벼 수확 실적이 실렸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박정천 국방성 고문과 김 부장이 남부 국경 요새화 공사 현장을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노동신문 지면에는 이 소식도 없었다. 6면 국제면은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한국을 직접 다룬 기사는 없었다.

과거와는 딴판이다. 북한은 남북 갈등이 생길 때마다 노동신문을 앞세워 주민들의 적개심을 끌어올려 왔다.

2020년 6월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삐라) 살포를 문제 삼아 대남 공세에 나섰다. 당시 노동당 제1부부장이던 김 부장의 비난 담화는 노동신문에 그대로 실렸다. 평양과 개성 등에서는 청년학생과 노동자들이 참여한 규탄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노동신문은 이 집회 소식과 주민들의 비난 목소리를 연일 지면에 실었다. 북한은 그달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2024년 10월 '평양 무인기 침투' 주장 때도 비슷했다. 북한은 외무성 중대 성명을 통해 한국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이튿날 1면에 성명 전문을 실었다. 제목은 '주권 사수, 안전 수호의 방아쇠는 주저 없이 당겨질 것이다'였다. 며칠 뒤에는 주민들의 분노를 앞세운 기사를 내보내며 보복 여론을 키웠다. 남측을 압박하는 동시에 내부 결속을 다지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확성기 방송 재개에 무력 증강 배치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도 주민을 동원한 규탄집회나 노동신문을 통한 선전전은 보이지 않는다. 최전방에서 높아진 긴장이 북한 내부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남부 국경 시찰에는 리일환 노동당 비서와 인민군 총참모부 주요 지휘관들도 동행했다. 김 위원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부장은 시찰 현장에서 국가수반이 적대국과 맞닿은 국경선을 가장 영구적인 선으로 만들라고 명령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부 국경 영구화 공정은 "절대로 거스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담화를 낼 때마다 김 위원장의 위임이나 지시라는 점도 내세웠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 부장이 국가수반의 지시를 거듭 내세우는 것을 두고 군 내부에 이를 주입해 결속을 다지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