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1명 순직한 부천 공장 화재…'무전' 녹취록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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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 대피 후에도 내부 진입
대원 안전 우선순위 문제 수면 위로

경기 부천의 한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방관 1명이 순직한 가운데, 당시 건물 옥상에서도 소방관 3명이 고립됐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고립된 상태에서 공기호흡기 용량이 바닥나 추가 공기통을 요청했으며, 약 40분 만에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화재 당시 공장 작업자들이 모두 대피한 뒤에도 소방관들에게 건물 내부 진입 지시가 내려진 사실도 무전 기록을 통해 파악됐다. 현장에서는 인화성 물질의 존재 가능성이 보고된 상태였다. 소방당국이 대원들의 안전보다 적극적인 화재 진압을 우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중앙일보가 단독보도한 내용이다.

옥상에 고립된 소방관 3명…공기호흡기까지 바닥나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실이 확보한 '부천시 오정구 공장 화재 무전 녹취록' 전체본에 따르면, 부천소방서는 지난 16일 오전 8시 38분 최초 화재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했다.

화재 진압이 진행되던 오전 8시 53분쯤 현장 지휘단장은 서부119안전센터 소속 대원들에게 건물 4층으로 진입해 옥상문을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대원들은 건물 내부로 진입했고, 약 5분 뒤인 오전 8시 58분쯤 서부119안전센터 팀장은 옥상문 개방을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당시 옥상 부근까지 불길이 번지고 있다는 상황도 함께 전달됐다.

이후 화재가 확산하면서 대원들의 이동이 어려워졌다. 오전 9시 17분쯤 무전에서는 서부119안전센터 대원들이 옥상문을 개방한 뒤 옥상에 고립됐다는 보고가 나왔다.

고 김진석 소방위 영결식 / 뉴스1
고 김진석 소방위 영결식 / 뉴스1

1분 뒤에는 팀장을 포함한 소방관 3명이 본건물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달됐다. 상황실에서는 헬기를 이용한 구조가 필요한 상황인지 묻기도 했다.

옥상에 고립된 소방관들이 처한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긴박해졌다.

오전 9시 26분쯤 서부119안전센터 팀장은 무전을 통해 "옥상은 안전한데 공기 용량이 다 돼서 용기 3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고했다.

옥상 공간 자체는 비교적 안전했지만, 대원들이 착용한 공기호흡기의 공기 용량이 부족해진 것이다.

공기호흡기는 화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연기와 유독가스로부터 소방관의 호흡을 보호하는 장비다. 공기통에 저장된 압축공기를 이용하며, 실제 사용 가능 시간은 용기 용량과 대원의 호흡량, 작업 강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화재 진압처럼 체력 소모가 큰 활동에서는 공기 소모가 빨라질 수 있다. 건물 내부에 연기가 가득하거나 탈출 경로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기호흡기의 잔량이 부족해지면 대원의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현장에서는 고립된 대원들에게 공기통을 전달하기 위한 지원이 이어졌다. 다른 진압대가 건물 내부로 진입하는 등 구조와 탈출을 위한 조치가 진행됐다.

오전 9시 56분쯤에는 "옥상 서부대는 1층으로 대피 완료"라는 무전이 나왔다.

옥상 고립 상황이 처음 보고된 오전 9시 17분으로부터 약 39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소방관 3명은 약 40분 동안 옥상에 머문 끝에 건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작업자 전원 대피했는데…5분 뒤 내부 진입 지시

무전 녹취록에서는 순직한 고 김진석 소방위가 속한 진압대의 당시 상황도 드러났다.

김 소방위는 오정119안전센터 소속으로, 화재 당시 다른 대원 1명과 함께 건물 3층에 고립됐다.

주목되는 부분은 이들이 고립되기 전 이미 공장 작업자들의 대피가 완료됐다는 보고가 있었다는 점이다.

오전 9시 2분쯤 현장 지휘단장은 무전으로 "1, 2, 3층은 모두 대피한 상태"라고 알렸다.

그러나 불과 5분 뒤인 오전 9시 7분쯤에는 본건물 3층으로 진입해 화재를 진압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당시 현장에서는 화재가 발생한 건물 내부에 인화성 물질이 있을 가능성도 보고된 상태였다.

무전에는 신나 세척기에서 최초 발화가 확인됐다는 내용과 함께 인화물질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가 담겼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 / 뉴스1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 / 뉴스1

신나는 도료를 희석하거나 세척하는 데 사용하는 용제로, 제품 성분에 따라 인화성이 강할 수 있다. 인화성 액체나 증기가 있는 공간에서는 불길이 빠르게 확산하거나 급격한 연소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 진입 작전이 계속된 것이다.

오전 9시 17분쯤에는 김 소방위 등 2명이 건물 3층에 고립된 상태였고, 같은 시각 옥상에서도 소방관 3명의 고립 상황이 보고됐다.

건물 안팎에서 대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동시에 발생한 셈이다.

오전 9시 28분쯤에는 진압 작업을 진행하던 오정119안전센터 팀장이 공기호흡기 잔량 부족을 이유로 탈출하겠다는 무전을 보냈다.

옥상에 고립된 대원들뿐 아니라 다른 진압대에서도 공기호흡기 잔량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번 무전 기록을 통해 화재 진압 과정에서 여러 대원이 고립되거나 공기호흡기 부족을 겪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완도 화재 이후 방어적 진압 강조했지만…석 달 만에 또 순직

이번 사고를 둘러싼 논란은 소방청이 앞서 발표한 화재 대응 방침과도 연결된다.

소방청은 지난 7월 소방관 2명이 순직한 전남 완도 저온창고 화재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인명구조 가능성이 없는 화재 현장에서는 방어적 진압 전략을 우선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화재 현장의 진압 전략은 크게 공격적 진압과 방어적 진압으로 구분된다.

공격적 진압은 소방관이 건물 내부로 진입하거나 화점에 가까이 접근해 직접 불을 끄는 방식이다. 화재를 신속하게 진압하거나 내부에 고립된 사람을 구조해야 할 때 활용된다.

반면 방어적 진압은 건물 내부 진입에 따른 위험이 크다고 판단될 경우 외부에서 물을 뿌리거나 불길이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방식이다.

두 방식 중 어떤 전략을 선택할지는 건물 구조와 화재 규모, 붕괴 위험, 인명구조 필요성, 내부 위험물질의 존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

소방관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화재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방청이 완도 화재 이후 방어적 진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구조 대상자가 없는 상황에서 대원들이 불필요하게 위험에 노출되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약 석 달 만에 발생한 부천 공장 화재에서는 작업자들이 대피했다는 보고 이후에도 건물 내부로 진입하는 공격적 진압 방식이 이어졌다.

당시 지휘관이 어떤 정보를 토대로 내부 진입을 결정했는지, 화재 확산 상황과 위험물질 관련 보고를 충분히 반영했는지 등이 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또 현장에 투입된 대원들의 공기호흡기 잔량과 탈출 가능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도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장동혁 대표 '소방관을 위한 묵념'
장동혁 대표 '소방관을 위한 묵념'

유족·소방노조 진상규명 요구…소방청 합동조사 착수

김 소방위의 순직 이후 소방공무원 노동조합과 유족들은 당시 진압 지시의 적절성을 문제 삼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와 한국노총 소속 한국소방공무원노동조합은 화재 대응 과정에서 무리한 진압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규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소방관이 위험한 현장에 투입되는 과정에서 지휘 판단이 적절했는지, 대원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가 충분했는지 살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소방위의 유족도 화재 이후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유족은 "이미 공장 작업자들은 모두 밖으로 대피해 추가 인명 구조가 필요 없는 상황이었는데 최소한의 상황 파악조차 없이 퇴근 직전의 대원을 사지로 보낸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유족의 문제 제기는 작업자 대피가 완료된 뒤에도 위험한 건물 내부로 소방관을 투입한 이유에 집중돼 있다.

2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번 사고와 관련한 질의가 이어졌다.

최용철 소방청장은 현장 진압 전략에 대해 "현장 지휘관이 대원들과 함께 공격 전술을 할 건지 (같은) 전략에 대해서는 현장 지휘관이 판단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많은 물음표가 있는 부분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현장 지휘관이 진압 전략을 결정하는 구조이지만, 이번 사고 당시 판단 과정에는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소방청은 현재 경기도소방본부와 국립소방연구원,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조사에서는 최초 발화 원인과 화재 확산 과정뿐 아니라 현장 지휘 체계, 내부 진입 지시의 적정성, 대원들의 고립 경위, 공기호흡기 관리 및 구조 대응 과정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번에 공개된 무전 녹취록은 사고 당시 현장에서 어떤 지시와 보고가 오갔는지 보여주는 자료다. 작업자 대피 보고 이후 내부 진입 지시가 내려진 경위와 소방관 5명이 각각 3층과 옥상에 고립된 과정이 주요 조사 쟁점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