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가 경제활동 주도하는 시대, 크립토가 가치 이동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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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강국 한국, 크립토로 금융 강국 도약 시작
미중 사이 제3의 축, 'G3 Korea' 실현 가능할까

▲	(왼쪽부터 7번째) 박종백 SCI 대표와 SCI 연구위원 및 내빈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서울크립토인스티튜트 제공
▲ (왼쪽부터 7번째) 박종백 SCI 대표와 SCI 연구위원 및 내빈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서울크립토인스티튜트 제공

크립토 생태계를 제도화하고 정책을 연구하는 것을 핵심 사업으로 삼는 민간 싱크탱크 SCI(서울크립토인스티튜트)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에서 창립 세미나를 개최하며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국회 사무처 승인을 거쳐 국회 산하에 등록된 사단법인인 SCI는 기조연설과 주제발표 두 편, 이어서 종합토론으로 이어지는 구성의 행사를 진행했다.

현재 한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배터리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거래와 결제, 금융 분야에서는 여전히 다른 나라의 인프라와 규칙에 의존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날 발표자들은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한 기회로서 크립토 전환의 중요성을 제시했다.

축사를 맡은 김상수 국회사무차장은 "우리의 세계적인 제조 경쟁력을 금융과 디지털 기술의 혁신으로 연결해 새로운 국제 질서와 제도적 기준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라며 SCI의 역할에 기대를 나타냈다. 조경식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도 "AI와 블록체인의 결합은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박종백 SCI 대표(법무법인 태평양 파트너 변호사)의 기조연설에서는 크립토 전환의 근본적 의미가 강조됐다. 박 대표는 "크립토 전환은 단순히 가상자산생태계를 수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실세계의 자산(real world assets)을 포함하여 경제적 가치가 만들어지고 소유되고 이전되고 거래되는 방식이 크립토기반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디지털화가 종이 주식을 전자증권으로 바꾸는 '전자화'에 그쳤다면, 블록체인은 공유 원장과 스마트계약으로 거래 구조 자체를 재설계한다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또한 크립토 전환을 평가하는 기준이 거래량이 아니라 제조업, 무역, 금융, 자본시장에 만드는 새로운 가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에이전트가 계약부터 대금 지급까지 수행하는 경제에서는 "AI가 경제활동의 지능을, 크립토가 가치와 권리의 이동을 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대표가 제시한 SCI의 비전은 제조와 기술, 금융, 제도를 결합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세계 경제의 '제3의 축'이 되자는 'G3 Korea'다. 이를 위해 제조와 무역의 디지털 전환, 자본시장의 토큰화와 인프라 혁신, 디지털자산과 지급결제 생태계의 세 가지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이제는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크립토 전환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고, 그 가치를 위해 어떤 제도를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할 때"라며 "위험관리와 혁신 촉진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강형구 한양대 경영대 교수(SCI 부대표)는 '공급망 재편기 한국의 전략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강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기술과 결제 관문을 무기로 삼는 시대에 한국은 "산업 경쟁력과 거래 경로의 선택권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씨티뱅크의 '디지털 빌', 중국 외환관리국의 국경간 금융 플랫폼(누적 4,300억 달러 조달), 싱가포르의 무역문서 표준 '트레이드트러스트' 등 무역금융 주도권 경쟁이 이미 시작됐음을 설명했다.

강 교수는 한국의 상품 수출 약 7,100억 달러와 콘텐츠 수출 약 141억 달러에 이르는 수출 기반을 금융으로 잇기 위해 무역과 공급망(T), 기업 내부정산(I), 국내 결제망 방어(D), AI와 데이터 등 신산업 정산(E)의 'T.I.D.E' 네 가지 정산 수요를 제시했다. 실행 방안으로는 AI 에이전트가 계약에 따라 은행망, 토큰화 예금, 허용된 스테이블코인 가운데 경로를 골라 지급을 실행하는 '에이전트형 결제'를 제안했다. 강 교수는 "한국이 여러 경제권 기업이 함께 쓰는 계약과 정산 기반을 제공하는 중립적 거래 거점이 돼야 한다"며, 개방의 범위는 수출통제, 제재, 외환 질서 안의 적법한 거래로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창호 엔코아 경영전략본부장(SCI 연구위원)은 '크립토 시장의 대안 질서'를 발표하며 전 세계가 규칙을 다시 쓰는 상황을 지적했다. 지난 18개월간 미국의 GENIUS법 시행, 일본의 크립토 금융상품 편입, 홍콩의 첫 스테이블코인 인가 등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은 통제 위주 정책에 머물렀다는 설명이다.

2026년 상반기 국내 가상자산 거래대금은 555조 원으로 직전 반기보다 44.6% 감소했고, 거래소에서 빠져나간 자산의 83%가 해외와 개인지갑으로 향했다. 거래소 계좌 1,113만 개 가운데 법인 계좌는 588개에 그쳤다. 진 본부장은 "일본, 홍콩, 싱가포르가 사전에 공표된 규칙으로 '선택받는 관할'로 옮겨가는 동안 한국만 '관문 통제형'에 머물러 있다"며 "유출의 원인은 아무도 한국을 관할로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장중혁 블록체인경제연구소장(SCI 부대표)는 "한국에 없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열린 문과 예측 가능한 법"이라며 두 가지 인프라를 제시했다. 시장 인프라로는 크립토 특구와 실물자산 토큰화, 해외 투자자용 통합수탁 계좌,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제안했다. 법 인프라로는 가상자산의 민법상 '물건' 포섭, 도산 시 고객 자산 보호, 탈중앙화 조직 법인격(K-DUNA), 온체인 중재 등을 꼽았다. 이를 위해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민법과 채무자회생법, 국제사법 개정, 중재법 개정, 사법 특구 특별법의 '입법 4대 패키지'를 제안했다. 장 소장은 두바이국제금융센터(DIFC)처럼 특구에서 먼저 검증한 뒤 전국으로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국내외 기업과 DAO가 스스로 한국법과 한국 법원을 고르는 '한국 창설 관할'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형사, 조세, 자금세탁방지 등 공법 영역은 기존 관할을 유지한다는 전제 위에서다. 장 소장은 정부, 국회, 산업계, 학계와 해외 전문가가 함께하는 '범사회적 크립토 제도화 논의기구' 설립을 제안했다.

박종백 SCI(서울크립토인스티튜트) 대표가 28일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에서 열린 SCI 창립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서울크립토인스티튜트 제공
박종백 SCI(서울크립토인스티튜트) 대표가 28일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에서 열린 SCI 창립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서울크립토인스티튜트 제공

종합토론에서는 발표자들과 함께 홍준기 보고펀드랩 대표(SCI 부대표), 김준현 에이빅스랩 대표(SCI 사무총장), 오현옥 한양대 교수(SCI 연구위원),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SCI 연구위원), 유민호 아이오트러스트 최고전략책임자(SCI 연구위원), 이석준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부장판사(SCI 연구위원), 최기억 한스경제 대표(SCI 연구위원), 필립 갠트 레규러터리 에코시스템스 그룹 디렉터(SCI 연구위원)가 참석했다. 토론자들은 산업 분야에서 수출기업이 먼저 쓸 결제 수단과 무역 스테이블코인의 역할, 제도 분야에서 한국 창설 관할의 현실적 첫 단추와 특구, 특별법의 순서, 실행 분야에서 입법 1순위와 SCI '제도 및 정책 개선 협의회'의 첫 과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SCI는 1년 안의 출발점으로 산업 분야의 'Agentic 무역 컨소시엄' 실증, 제도 분야의 크립토 특구법, 민사법, 외환거래법, 블록체인기본법 등 포괄적 법령 제·개정 방향과 필요성 제안, 실행 분야의 '제도 및 정책 개선 협의회' 가동을 제시했다. 박 대표는 "SCI는 연구에서 멈추지 않고 제도와 실행까지 잇는 액션탱크로서 정부, 국회, 기업, 전문가들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이 제조 강국에서 디지털 금융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 크립토 생태계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 SCI의 이번 출범과 그들이 제시한 'G3 Korea' 비전은 한국이 세계 경제 질서에서 새로운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국회가 제도권 내에서 얼마나 신속하게 입법을 추진하고 산업 주체들이 실증 과정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지가 한국의 크립토 시대 리더십을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