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풍문으로 들었소'·조용필 '상처' 작사가 장경수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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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곡의 노랫말을 남긴 작사가 장경수, 향년 73세로 별세
조용필 '상처'부터 장기하와 얼굴들 커버곡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세대를 넘은 히트곡 작사가
조용필의 '상처', 장기하와 얼굴들이 다시 불러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은 '풍문으로 들었소' 등 수많은 히트곡의 노랫말을 쓴 원로 작사가 장경수(본명 장희원)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29일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등 가요계에 따르면 간암으로 투병하던 고인은 이날 오전 9시께 숨을 거뒀다. 고인은 최근 간암 진단을 받은 뒤 경기 가평에서 투병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서 평론가는 이날 자신의 SNS에 추모 글을 올려 부고를 전하며 "한 시대의 삶과 감정을 노래로 남긴 사람. 이제 그가 남긴 노랫말은 우리 곁에 남아 저마다의 추억 속에서 다시 불릴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고인을 기렸다.
빈소는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장례식장 특8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오는 31일 오전 6시 30분이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 예비군 훈련장에서 시작된 인연…'꿈이었나봐'로 첫발
고인은 1953년 강원 속초에서 태어났다. 작사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뜻밖의 장소에서 찾아왔다. 1977년 예비군 훈련장에서 가수 함중아를 만난 것이다. 이 인연으로 함중아의 친형인 작곡가 함정필을 소개받으면서 고인은 본격적으로 대중음악계에 발을 들였다.
데뷔작은 같은 해 발표된 윤수일의 '꿈이었나봐'다. 함정필이 곡을 쓰고 고인이 노랫말을 붙인 이 노래를 시작으로, 고인은 40여 년 동안 쉼 없이 펜을 들었다. 그렇게 세상에 내놓은 노랫말은 1300여 편에 이른다.
고인의 작품 세계는 특정 장르에 머물지 않았다. 발라드와 성인가요는 물론 록과 댄스음악까지 넘나들었다. 노랫말에 담긴 정서도 폭넓었다. 청춘의 열정과 사랑, 이별의 아픔, 서민의 애환, 삶에 대한 성찰까지 시대의 감정을 고루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상처'부터 '천년바위'까지…세대를 넘은 노랫말
고인의 이름 앞에 가장 먼저 붙는 곡은 '가왕' 조용필의 '상처'다. 여기에 최진희의 '꼬마인형', 박정식의 '천년바위'가 연이어 사랑받으며 고인은 히트곡 제조기로 자리매김했다. 송대관의 '정 때문에',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 윤희상의 '카스바의 여인' 역시 고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노래들이다. 장르도, 부른 가수의 색깔도 저마다 다르지만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노랫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젊은 세대에게 고인의 이름을 알린 곡은 함중아와 양키스의 '풍문으로 들었소'다. 고인을 작사의 길로 이끈 함중아·함정필 형제와의 인연이 녹아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훗날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다시 불렀고, 2012년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OST로 삽입되면서 원곡을 모르던 2030세대까지 사로잡았다. 수십 년 전 쓰인 노랫말이 새 목소리를 만나 다시 생명력을 얻은 셈이다.
고인은 작사가로서뿐 아니라 시인으로서도 글쓰기를 이어갔다. 2007년에는 시집 '강물은 바다로 갈까?'를 펴내기도 했다.

◆ 창작자 권익 위해 앞장…방송서 건강 이상 고백도
고인은 동료 창작자들의 권익을 지키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작사·작곡가들의 모임인 한국가요작가협회 제9대 회장과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를 지내며 작사가들의 권익 보호와 저작권 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에 참여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한국가요창작인 공로대상, 2011년 올해의 창작인상을 받았다. 가요 프로그램과 각종 행사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며 후배 창작인들과 호흡을 맞췄다.
방송을 통해 대중과 만나기도 했다. 고인은 2018년 3월 KBS 2TV '불후의 명곡'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특집을 통해 후배 가수들이 부르는 자신의 노래를 지켜봤다. 지난해 9월에는 MBN '특종세상'에 출연해 근황을 전했다. 당시 고인은 녹음 도중 쓰러져 아내가 119를 불러 병원으로 옮겨졌던 일을 털어놓으며, 의사로부터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고인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최근까지 꾸준히 근황을 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 끝내 오르지 못한 고향 무대…'장경수 가요제'의 아쉬움
가요계가 더욱 안타까워하는 대목은 고향 속초에서 준비하던 무대다. 고인은 자신의 이름을 건 '제1회 장경수 스타발굴 가요제'를 통해 고향에서 새로운 가수를 발굴하겠다는 꿈을 키워왔다. 이 가요제는 지난 25일 속초 엑스포광장 특설무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고인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의사의 만류로 행사는 1년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가요제 예정일이었던 25일로부터 나흘 뒤 끝내 눈을 감았다. 온라인에서는 "우리에게 좋은 가사를 남겨주시고 하늘 나라로 떠나셨군요...", "'상처' '천년바위'를 이분이 썼는지 처음 알았다", "노래는 영원히 남을 것",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통 없는 천상에서 편히 영면하시길 기도한다" 등 고인을 추모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