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체 가격만 무려 1억... 그 회사도 알고 보니 삼성전자 소유였다

Google 검색에서
선호 출처로 추가

선호 출처로 추가하면 Google 주요 뉴스에 위키트리 기사가 더 자주 표시됩니다.

B&W서 마크레빈슨·데논까지… 알고 보면 다 '삼성 집안'

JBL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 놓고 AKG 헤드폰을 쓴다. 집에서는 데논 앰프에 바워스앤드윌킨스(B&W) 스피커를 물려 영화를 본다. 차에 타면 하만카돈 오디오가 흘러나온다. 브랜드 이름만 보면 미국, 영국, 일본, 오스트리아를 오가는 다국적 조합이다. 그런데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끝에는 한 이름이 나온다. 삼성전자다.

데논 턴테이블 / 데논 홈페이지
데논 턴테이블 / 데논 홈페이지

삼성전자는 2017년 미국 하만 인터내셔널을 품은 데 이어 지난해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까지 사들였다. 하이파이 오디오부터 홈시어터, 차량용 오디오, 휴대용 스피커까지 이름난 음향 브랜드 상당수가 이제 삼성전자 아래 있다. 매장에서 삼성 로고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이들 브랜드 제품이 팔리면 그 매출은 삼성전자 연결 실적에 잡힌다.

9조원짜리 '오디오 왕국' 입성

출발점은 하만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14일 이사회를 열고 하만 인수를 의결했다. 인수 가격은 주당 112달러, 총 80억달러였다. 당시 환율로 약 9조3760억원이다.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 가운데 당시 최대 규모였다.

삼성전자는 2017년 3월 인수 절차를 마무리했다. 하만 지분 100%는 삼성전자 미국법인(SEA)이 갖게 됐다. 지배구조로 따지면 하만은 삼성전자의 손자회사인 셈이다.

마란츠 오디오 시스템 / 마란츠 홈페이지
마란츠 오디오 시스템 / 마란츠 홈페이지

하만은 원래 커넥티드카용 인포테인먼트와 텔레매틱스 등 전장 사업이 주력인 회사였다. 인수 당시 하만의 연간 매출은 약 70억달러, 영업이익은 7억달러 수준이었다. 매출의 65%가 전장에서 나왔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에게 더 친숙한 것은 하만이 거느린 오디오 브랜드들이다. JBL, 하만카돈, AKG, 마크레빈슨, 인피니티, 렉시콘, 레벨 등이 이때 한꺼번에 삼성 식구가 됐다.

하만은 인수 이후 덩치를 키웠다. 하만의 글로벌 매출은 2017년 7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15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의료기기 회사 거쳐 온 B&W·데논·마란츠

두 번째 퍼즐은 조금 독특한 경로로 맞춰졌다. B&W, 데논, 마란츠, 폴크 오디오,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는 원래 음향 전문 기업 사운드 유나이티드 소속이었다. 그런데 2022년 미국 의료기기 업체 마시모가 사운드 유나이티드를 약 10억2500만달러에 인수했다. 맥박산소측정기로 알려진 회사가 하이파이 오디오 명가들을 사들이자 시장에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워스앤드윌킨스(B&W)  헤드폰 /  B&W 홈페이지
바워스앤드윌킨스(B&W) 헤드폰 / B&W 홈페이지

마시모는 결국 오디오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하만은 지난해 5월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를 3억5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인수 절차는 지난해 9월 마무리됐다. 마시모가 산 가격의 3분의 1 남짓한 금액이다. 삼성전자로서는 하만 이후 8년 만의 대형 인수합병이었다.

케이티 시맨 마시모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데이브 로저스 하만 라이프스타일 사업부문 사장은 "하만은 75년 역사의 오디오 전문기업으로, 여기에 B&W를 더해 세계 최고의 오디오 명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운드 유나이티드는 현재 하만 라이프스타일 사업부 안에서 독립 사업부로 운영된다. 삼성전자에서 시작해 미국법인과 하만, 사운드 유나이티드를 거쳐 B&W와 데논에 이르는 긴 가계도가 완성된 셈이다.

JBL, 영화관과 록 페스티벌을 울린 이름

면면을 하나씩 뜯어보면 오디오 애호가들이 놀랄 만하다. 맏형 격인 JBL은 미국 음향 엔지니어 제임스 B. 랜싱이 1946년 세운 회사다. 회사 이름도 창립자 이름의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랜싱은 JBL 설립 전부터 영화 음향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참여한 MGM-랜싱 음향 시스템은 193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다.

JBL 어센틱 300 스피커 / JBL 홈페이지
JBL 어센틱 300 스피커 / JBL 홈페이지

영화관에서도 존재감이 크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만든 극장 음향 인증 규격 THX는 1983년 극장 오디오 시스템 개발 파트너로 JBL을 택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미국 영화관의 40%, 전 세계 영화관의 25%가 JBL 스피커를 쓴다. JBL 엔지니어들은 2002년 미국 아카데미 과학기술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기술 부문 그래미상도 거머쥐었다. 하만은 오스카와 그래미를 모두 받은 오디오 브랜드는 JBL뿐이라고 소개한다. 휴대용 스피커는 1억대 넘게 팔렸다.

하만카돈·AKG·마크레빈슨, 하만 형제들

하만카돈은 시드니 하먼과 버나드 카돈이 1953년 함께 세운 브랜드다. 첫 제품은 같은 해 내놓은 FM 튜너였다. 1958년에는 세계 최초의 스테레오 리시버로 꼽히는 '페스티벌 TA230'을 선보였다. 1999년 출시된 반투명 스피커 '사운드스틱스'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선정되며 디자인으로도 인정받았다. 자동차 오디오에서는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레인지로버 등에 들어갔다. 2018년부터는 현대자동차와 기아 차량에도 공급되고 있다.

AKG는 194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물리학자 루돌프 괴리케와 엔지니어 에른스트 플레스가 세운 회사다. 1953년 세계 최초의 다이내믹 카디오이드 마이크를 내놨다. 스튜디오용 콘덴서 마이크 ‘C414’ 계열도 AKG 제품이다. AKG 더미헤드 제품은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에도 실렸다. 2010년에는 녹음 분야 기여를 인정받아 기술 부문 그래미상을 받았다.

AKG 헤드폰 / AKG 홈페이지
AKG 헤드폰 / AKG 홈페이지

하만 아래에는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마크레빈슨과 레벨, 디지털 음향 처리 장비로 이름난 렉시콘, 스피커 브랜드 인피니티 등도 줄줄이 있다. 이 가운데 마크 레빈슨은 전 세계 하이파이 업계에서 '하이엔드 오디오'라는 장르 자체를 정립한 전설적인 브랜드다.

초기 출시한 모듈형 프리앰프 ‘LNP-2’는 왜곡 없는 극도의 정밀한 신호 증폭을 선보이며 당시 방송국 스튜디오와 프로 엔지니어들의 레퍼런스 장비로 자리 잡았다. 음을 과장하거나 착색하지 않고 원음 그대로를 투명하고 묵직하게 밀어주는 순수 A클래스 증폭 기술과 초정밀 회로 설계는 마크 레빈슨을 상징하는 독보적 자산이다.

특유의 견고한 블랙 아노다이징 알루미늄 패널과 레드 폰트 디스플레이는 반세기 동안 최고급 분리형 앰프의 표준 디자인으로 통했다.

마크 레빈슨 No.536 모노블록 파워 앰프 / 마크 레빈슨 홈페이지
마크 레빈슨 No.536 모노블록 파워 앰프 / 마크 레빈슨 홈페이지

마크 레빈슨은 가격 면에서도 초하이엔드의 위용을 자랑한다. 엔트리급 인티앰프조차 1000만~2000만 원대부터 시작하며, 최상위 플래그십 모노블록 파워앰프(No. 536 등)나 프리앰프(No. 526 등)를 한 쌍으로 맞추면 시스템 본체 가격만 7000만~1억 원을 가볍게 웃돈다. 플래그십 턴테이블인 'No. 5105' 역시 1000만 원 안팎, 럭셔리 무선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No. 5909'는 100만 원대 중후반에 이르는 등 전 라인업이 일반 가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초고가 명품군으로 분류된다.

1990년 하만 인터내셔널로 편입된 이후에는 플래그십 인티앰프, SACD 플레이어, 스트리밍 프리앰프, 헤드폰 등 제품군을 확장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 토요타의 럭셔리 브랜드 '렉서스(Lexus)'의 플래그십 전용 사운드 시스템으로 독점 탑재되면서 거실 리스닝 룸을 넘어 차량용 최고급 카오디오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B&W, 애비 로드가 택한 스피커

새로 합류한 브랜드들의 이력도 만만치 않다. B&W는 1966년 영국에서 존 바워스가 세운 회사다. 출발 일화가 독특하다. 바워스의 지식과 스피커에 감명받은 한 고객이 1만파운드를 유산으로 남겼다. 이 돈이 회사 설립의 밑천이 됐다.

B&W를 상징하는 이름은 비틀스의 녹음 장소로 유명한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다. B&W에 따르면 애비 로드는 1980년 세계 녹음 스튜디오 가운데 처음으로 B&W의 ‘801’ 스피커를 상시 모니터링용으로 들였다. 이후 45년 동안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B&W는 이 스튜디오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007 스카이폴' 등의 영화 음악 작업이 B&W 스피커로 이뤄졌다고 소개한다. 지난해에는 ‘801 애비 로드 리미티드 에디션' 140쌍을 한정 출시했다. 한 쌍 가격은 7만달러에 이른다.

1993년에는 앵무조개 껍데기를 닮은 스피커 '노틸러스'를 내놨다. 2007년에는 아이팟용 스피커 '제플린'을 내놓으며 생활 오디오 시장으로 발을 넓혔다.

데논·마란츠, 디지털 녹음과 진공관 앰프의 전설

데논의 뿌리는 1910년 일본에서 출발한 일본컬럼비아다. 이 회사는 1970년대 초 PCM 방식 디지털 녹음기를 자체 개발했다. 1972년 만든 녹음기 ‘DN-023R’은 무게가 400kg에 달했다. 일본컬럼비아는 디지털 녹음 음반을 세계 최초로 상업 발매한 회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데논은 상업용 CD플레이어를 세계 최초로 선보인 기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마란츠는 1953년 미국에서 솔 마란츠가 세웠다. 1958년 데뷔한 진공관 프리앰프 '모델 7'은 13만대 넘게 팔렸다. 마란츠 공식 자료는 이 제품을 프리앰프 설계의 대표 사례로 소개한다. 미국 스피커 브랜드 폴크 오디오와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도 이번에 함께 삼성 식구가 됐다.

간판은 그대로…서울서 JBL 80주년 잔치

삼성전자 식구가 됐다고 해서 로고에 '삼성'이 붙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 당시부터 각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제품만 봐서는 JBL이나 B&W가 삼성 계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마크 레빈슨 턴테이블 / 마크 레빈슨 홈페이지
마크 레빈슨 턴테이블 / 마크 레빈슨 홈페이지

삼성전자 제품과의 연결고리는 곳곳에 있다. 갤럭시 스마트폰 기본 이어폰과 무선 이어폰 '갤럭시 버즈'에 AKG 튜닝이 들어간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마시모 오디오 사업부 인수로 스마트폰과 TV, 가전을 아우르는 오디오 시너지를 기대했다. 하만은 이미 휴대용 오디오 시장에서 약 60%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컨슈머 오디오 시장이 지난해 608억달러에서 2029년 70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올해는 마침 JBL 창립 80주년이자 B&W 창립 60주년이다.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를 발표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한 '사운드 레전드-JBL 80주년 기념전시 및 바워스앤윌킨스 60주년 기념 전시'가 서울 강남구 프로젝트 스페이스 라인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렉시콘 8채널 멀티채널 파워앰프 / 렉시콘 홈페이지
렉시콘 8채널 멀티채널 파워앰프 / 렉시콘 홈페이지

전시장에는 1920년대 '잭슨-벨 라디오'와 1957년 출시된 JBL 스피커 '파라곤'이 나왔다. 파라곤은 1983년까지 약 1000대만 생산된 모델이다. 1970년 출시된 ‘L100 센츄리'도 함께 전시된다. ‘JBL 서밋 K2’는 이번 전시에서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국내 아티스트 던(DAWN)과 협업한 80주년 기념 로고 아트워크도 걸렸다. DJ 소울스케이프와 함께하는 ‘JBL 뮤직 토크'도 마련됐다. 이번 전시는 하만이 세계 각지를 돌며 여는 ‘JBL 플레이백 갤러리' 행사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