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흉기 난동'으로 의사 부상...다시 떠오른 8년 전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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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사망 사건이 만든 '임세원법', 병원은 정말 안전해졌나
2018년 마지막 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진료 중이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였다.
임 교수는 가해자를 피해 달아나는 과정에서 간호사에게 대피하라고 알렸으며, 이후 자신을 뒤쫓아온 가해자의 공격으로 숨졌다. 사건은 의료기관 종사자의 안전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고, 의료법과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2018년 12월 31일 오후 5시 44분…병원에서 벌어진 참극
사건은 2018년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발생했다.
당시 30세였던 박모 씨는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임세원 교수의 진료를 받았다. 박 씨는 과거 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으며, 임 교수에게 외래진료도 받아왔다.
박 씨는 2015년 양극성 정동장애로 입원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었다. 양극성 정동장애는 조증과 우울증 등의 기분 삽화가 나타나는 정신질환이다.
사건 당일 박 씨는 사전 예약 없이 병원을 찾았고, 임 교수는 진료를 진행했다. 박 씨는 당시 임 교수의 마지막 환자였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박 씨는 진료실에 들어간 지 15분이 지나기 전에 임 교수를 흉기로 위협하고 공격했다.
위협을 느낀 임 교수는 자신의 진료실에서 옆 진료실로 연결된 문을 통해 이동했다. 이후 다른 진료실 문으로 빠져나와 복도로 대피했다.
그러나 박 씨는 임 교수를 뒤쫓았다.
임 교수는 오후 5시 44분쯤 박 씨가 휘두른 흉기에 가슴 부위를 여러 차례 찔렸다.
병원 의료진은 임 교수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수술에 들어갔다. 하지만 흉부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임 교수는 이날 오후 7시 30분쯤 사망했다.
"도망쳐"…CCTV에 포착된 임 교수의 마지막 행동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은 병원 내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당시 상황을 확인했다.
2019년 1월 2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임 교수가 자신을 위협하는 가해자를 피해 이동하면서 간호사의 대피를 돕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영상에 포착됐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임 교수는 옆 진료실을 거쳐 복도로 나온 뒤 문 앞에 있던 간호사에게 도망치라고 알렸다.
이후 임 교수는 간호사가 있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특히 임 교수가 이동하던 중 잠시 멈춰 간호사 쪽을 돌아보는 모습도 CCTV에 담겼다.
경찰은 임 교수가 간호사의 대피 여부를 확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라고 밝혔다.
임 교수는 이후 다시 달아났지만 자신을 쫓아온 박 씨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경찰이 확인한 영상에는 임 교수가 간호사의 안전을 신경 쓰며 대피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인의 마지막 행동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임 교수의 사망 이후 의료계에서는 추모가 이어졌으며, 의료진이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진료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가해자 징역 25년 확정…대법원 판단은?
박 씨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 과정에서는 박 씨가 과거 임 교수에게 치료받은 이력과 범행 당시의 정신건강 상태 등이 조사됐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병원 측이 자신의 머릿속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등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수사 당시 피의자의 진술로,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판에서는 범행의 중대성과 피고인의 정신질환이 양형 판단의 주요 요소로 다뤄졌다.
2019년 5월 서울중앙지법은 박 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20년 부착을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범행의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피고인이 성장 과정에서 겪은 가정폭력과 학교폭력 등이 정신질환 발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고, 정신질환이 범행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점도 양형에 반영했다.
검찰과 피고인 측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도 징역 25년이 유지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사전에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점과 피해자가 아무런 잘못 없이 생명을 잃은 점 등을 고려해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2020년 5월 29일 대법원 3부는 박 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가해자에 대한 형사재판은 징역 25년 확정으로 마무리됐다.

2020년 의사자 인정…사건 이후 '임세원법' 제정
임 교수의 사망 이후에는 고인의 행동을 의사상자법에 따른 구조행위로 인정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법적 절차도 진행됐다.
의사자는 자신의 직무와 관계없이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를 구하기 위해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한 사람을 뜻한다.
유족은 임 교수가 사건 당시 간호사의 대피를 도우려 했다는 점을 근거로 의사자 인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의사상자심사위원회는 2019년 두 차례 심사에서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구조행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9월 10일 서울행정법원은 사건 당시 임 교수의 행동을 구조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같은 달 24일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했다.
사건은 의료기관 내 폭력에 대한 처벌과 안전시설 설치 기준을 강화하는 법률 개정으로도 이어졌다.
국회는 2019년 4월 5일 이른바 '임세원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및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 의료법에는 의료인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의료인에게 중상해를 입힌 경우에는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규정했다. 상해를 입힌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의료기관이 일정한 기준에 따라 보안장비를 설치하고 보안인력을 배치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함께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치료가 중단될 위험이 있는 일부 정신질환자에 대한 외래치료 지원과 지역사회 연계 등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2019년 4월 의료기관의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 방안도 발표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과 정신의료기관에 보안인력과 비상경보장치 등을 갖추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2020년에는 관련 시행규칙에 따라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의료기관에 보안인력 배치와 비상경보장치 설치 의무가 적용됐다.
임 교수 사건 이후 마련된 법과 제도는 의료인의 안전한 진료환경 확보와 정신질환자의 지속적인 치료 지원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함께 다루게 됐다.
한편 2026년 11월 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부상을 입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1명이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피의자는 현장에서 붙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교수는 약 5㎝ 길이의 자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교수는 사건 직후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해 50대로 추정되는 피의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피의자는 사건 당시 진료 순서를 기다리던 환자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피의자를 상대로 범행 동기와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