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과 얼굴까지 공개됐는데... 미국도 못 잡은 '북한 해커'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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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원대 해킹 배후 북한, 8년 공개수배 해커 박진혁 재조명
소니픽처스·방글라데시 중앙은행 공격…북한 해커의 국제 범죄 수기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약 63억 달러(약 8조4000억원) 규모의 가상자산이 탈취된 사건의 배후로 북한 해킹조직이 지목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8년째 공개수배 중인 북한 해커 박진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북한의 대형 사이버 공격에 가담한 혐의로 처음 형사 기소한 북한 국적 해커다.

8조원대 가상자산 해킹에 북한 지목…다시 주목받는 박진혁

8일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바이낸스에서 60억 달러가 넘는 가상자산이 탈취됐다. FBI는 지난달 31일 해당 공격이 북한 해킹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트레이더트레이터는 가상자산 거래소와 금융 관련 기업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아온 북한 연계 해킹 세력이다. 미국 정부는 이 조직의 활동을 북한의 대표적인 해킹조직인 라자루스 등과 연관 지어왔다.

FBI는 탈취된 가상자산이 주로 이더리움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해커들이 탈중앙화 금융서비스와 가상자산 교환 서비스를 이용해 자금세탁을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수사당국은 가상자산 거래소와 블록체인 분석업체 등에 해커들이 사용하는 전자지갑 주소를 공개하고 관련 거래를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사건은 탈취 규모에서도 주목받았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는 피해 규모를 약 64억 달러로 집계하며 가상자산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킹 사건으로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해커 박진혁의 과거 범행 혐의와 수배 이력이 다시 거론됐다. 프랑스 가상자산 전문매체 코인트리뷴도 지난 1일 바이낸스 해킹 사건을 다루면서 그의 이름을 소개했다.

박진혁은 미국 수사당국이 북한의 주요 사이버 공격에 가담했다고 지목한 인물이다. 다만 이번 바이낸스 해킹에 박진혁이 직접 참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FBI는 공격 주체를 북한 해킹조직으로 특정했으며, 박진혁 개인의 가담 여부는 별도로 발표하지 않았다.

FBI 박진혁 공개수배 전단 한국어 버전
FBI 박진혁 공개수배 전단 한국어 버전

김책공대 출신 프로그래머…미국이 얼굴까지 공개한 이유

박진혁의 이름과 얼굴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8년 9월 6일이다. 당시 미국 법무부는 그가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사이버 공격에 가담한 혐의가 있다며 형사소장을 공개했다.

미국 정부가 북한 국적 해커를 특정해 형사 기소한 첫 사례였다. 미국 법원은 그보다 앞선 2018년 6월 8일 박진혁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미국 수사당국에 따르면 박진혁은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공부한 프로그래머로, 조선엑스포합영회사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조선엑스포합영회사는 겉으로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로 활동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 회사가 북한의 사이버 작전을 지원하는 위장회사라고 판단했다.

미국은 이 회사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조직과 연결돼 있으며, 박진혁이 회사의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뿐 아니라 사이버 공격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진혁은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도 조선엑스포 직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수사당국은 그의 중국 체류 이력과 전자우편 계정, 온라인 활동 기록 등을 추적해 범행 연관성을 조사했다.

FBI가 공개한 수배 전단에는 박진혁의 사진과 함께 출생연도가 1981년 또는 1984년으로 기재돼 있다. 박광진(Pak Kwang Jin) 등의 가명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 언어에는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가 포함돼 있다. 마지막으로 알려진 소재지는 북한이다.

대남 확성기 옆 경계 근무 중인 북한군 / 뉴스1
대남 확성기 옆 경계 근무 중인 북한군 / 뉴스1

김정은 암살 영화에 보복 해킹…소니픽처스 공격 혐의

박진혁이 연루된 것으로 지목된 대표적인 사건은 2014년 미국 영화사 소니픽처스 해킹이다.

당시 소니픽처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인터뷰'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소니픽처스 내부 전산망이 해킹 공격을 받았다. 해커들은 회사 시스템에 침입해 미공개 영화와 임직원 이메일, 개인정보 등 방대한 자료를 빼돌렸다.

일부 자료는 외부에 공개됐으며, 회사 내부 컴퓨터와 전산 시스템도 파괴됐다. 소니픽처스는 업무에 상당한 차질을 겪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김정은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에 반발해 공격을 벌였다고 판단했다. 박진혁은 이 공격에 가담한 혐의로 2018년 미국 법무부의 형사소장에 이름이 올랐다.

이 사건은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단순한 정보 수집이나 금전 탈취를 넘어 외국 기업의 업무를 마비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거론된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서 8100만 달러 탈취…10억 달러 노렸다

박진혁은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자금 탈취 사건에도 연루된 혐의를 받는다.

당시 해커들은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의 전산망에 침입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시스템을 이용한 허위 송금 지시를 작성했다.

SWIFT는 전 세계 은행들이 해외 송금 등에 필요한 금융거래 정보를 주고받는 국제 금융통신망이다. 은행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자금을 어디로 얼마나 보내야 하는지에 관한 지시를 전달한다.

해커들은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명의로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허위 송금 지시를 보냈다. 이를 통해 해외 계좌로 거액을 이체하려 한 것이다.

당초 탈취하려 했던 금액은 약 1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일부 거래가 차단되면서 실제로 빠져나간 돈은 약 8100만 달러였다.

이 사건은 은행의 금융거래 시스템을 악용해 막대한 금액을 탈취한 대표적인 국제 사이버 범죄로 기록됐다.

미국 수사당국은 박진혁이 속한 해킹조직이 이 같은 금융기관 공격에 관여한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 뉴스1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 뉴스1

전 세계 병원과 기업 마비시킨 '워너크라이'도 연루

2017년 발생한 워너크라이(WannaCry) 랜섬웨어 공격 역시 박진혁이 연루된 것으로 지목된 사건이다.

랜섬웨어는 컴퓨터에 침입해 파일을 암호화하거나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든 뒤 이를 복구해 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이다.

워너크라이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운영체제의 보안 취약점을 이용해 빠르게 확산했다. 감염된 컴퓨터에서는 파일에 접근하기 어려워졌으며, 해커들은 복구 대가로 가상자산을 요구했다.

피해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생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산하 의료기관에서는 컴퓨터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진료 예약과 의료 업무에 차질이 빚어졌다.

병원뿐 아니라 기업과 공공기관도 공격을 받았다. 워너크라이는 짧은 기간에 전 세계 수많은 컴퓨터를 감염시키며 국제적인 사이버 보안 위기를 일으켰다.

미국 정부는 이 공격의 배후로 북한 해킹조직을 지목했고, 박진혁도 관련 범행에 가담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2016~2017년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을 상대로 한 해킹 시도에도 연루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해커들은 악성코드가 포함된 이메일을 보내 회사 내부 시스템에 침입하려 했다. 일부 이메일에는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내용이 담겼다.

미국 법무부는 록히드마틴을 겨냥한 해당 침입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021년 공범 2명 추가 기소…8년째 신병 확보 못 해

미국 법무부는 2021년 2월 박진혁과 전창혁, 김일 등 북한 해커 3명을 대상으로 한 확대 공소장을 공개했다.

2020년 12월 제출된 공소장에는 이들이 전 세계 금융기관과 기업을 상대로 13억 달러 이상의 현금과 가상자산을 탈취하거나 갈취하려 했다는 혐의가 담겼다.

해커들이 악성 가상자산 거래 프로그램을 제작해 배포하고, 이를 이용해 금융기관과 가상자산 관련 기업을 공격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은 2020년 12월 박진혁에 대한 새로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은행사기 공모와 컴퓨터 관련 사기 공모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그러나 박진혁은 2018년 처음 수배된 이후 현재까지 미국 수사당국에 체포되지 않았다.

FBI는 지금도 공식 홈페이지에 박진혁의 사진과 인적 사항을 공개하고 제보를 받고 있다. 수배 전단에는 그가 북한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해킹조직에 가담해 세계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일으킨 사이버 공격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적혀 있다.

북한은 박진혁과 관련한 미국의 주장을 부인해 왔다. 2018년 9월 북한 외무성 당국자는 그를 실체가 없는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기소를 비난했다.

북한은 이번 바이낸스 해킹에 대해서도 관여 사실을 부인했다. 미국 FBI가 북한 해킹조직을 공격 주체로 지목한 것과는 상반된 입장이다.

미국 수사당국은 바이낸스 해킹으로 탈취된 가상자산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FBI가 공개한 박진혁의 수배 전단 역시 8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