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에서 만난 국악 큰 스승 기산 박헌봉"
2013-10-1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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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국악당' 내 '기산관' 모습 / 사진=위키트리] 생가에서 부활한 우리 음악의
['기산국악당' 내 '기산관' 모습 / 사진=위키트리]
생가에서 부활한 우리 음악의 혼
지난 달 6일 개막돼 이 달 20일까지 45일 간 열리는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산청엑스포를 다녀온 분들은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엑스포 관람에다 남사예담촌이나 구형왕릉 등 산청의 문화유적을 함께 즐겨 최고의 엑스포 여행이 됐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산청엑스포 '여행 팁'으로 꼭 하나 더 권하고 싶은 곳이 바로 '기산국악당'이다. 국악계 큰 스승으로 불리는 기산 박헌봉(朴憲鳳,1907∼1977)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기산국악당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박헌봉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새로 지어 지난 달 8일 개관했다. 이 국악당은 37억 5천여만원을 들여 5천600㎡의 터에 기산관, 기념관, 교육관 등 각각 129㎡ 규모의 전통 한옥 3채와 500여㎡의 옥외공연장을 갖추었다.
[기산국악당 / 사진=연합뉴스]
"국악연구로 열정 불 태운 청년기"
기산(岐山) 박헌봉 선생이 국악의 대부로 불리는 데 국악계 내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선생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이는 기산 선생이 국악 연주자나 예능인이 아니라, 학자, 행정가의 길을 고집해 온 이유다.
그래서 그는 '큰별'이 아니라 '큰 스승'이라 불린다. 선생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 오로지 국악발전을 위해 외길을 고집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어려서는 당시 여느 반가 자손들처럼 한학에 몰두하던 선생은 18세 되던 해인 1924년에 진주에서 김덕천(金德天)·임한수(林漢洙) 선생으로부터 국악을 접하게 된다.
2년 간 가야금풍류와 가야금병창, 고법(鼓法) 등 전통음악을 공부한 선생은 1934년에 진주음률연구회를 직접 조직하게 된다. 이것이 민속악에 뜻을 둔 선생의 첫 번째 사업이었다.
그 2년 후 상경한 선생은 정악견습소에서 정악을, 아악부에서 아악풍류를 연구했고, 1938년에 조선성악연구회에 근무하면서 2년간 전통음악을, 조선가무연구회에서 경서도(京西道) 가무를 연구했다. 국악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한 것이 이 시기다.
"녹음기 짊어지고 산간벽지로..."
이어 기산 선생은 1941년, 조선음악협회 산하에 조선악부를 창설하고 상무이사로 취임하여 공연과 교육활동에 매진한다. 1945년에 광복이 되자 국악건설본부를 창설하고 부위원장으로 취임하여 국악의 부흥과 계몽에 힘썼다.
1947년에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 대표 겸 이사장, 1948년에 문교부 예술위원을 거쳐 1956년에는 선생 주도로 대한국악원이 창설되기에 이른다. 또 1960년에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해 초대 교장으로 취임한다.
이 시기 선생이 녹음기를 짊어지고 산간벽지를 다니며 채집한 민요가 300여곡. 명인(名人)·명창(名唱)의 음반 200여곡까지 합하면 하루 2시간씩 6개월 간 들을 수 있는 방대한 분량이다. 몸소 전국을 돌며 국악보존을 위해 민악을 집대성한 셈이다.
중후반기, 관료로서 국악진흥에 헌신
이후 선생은 1963년에는 국립극장운영위원 및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이사장, 1964년에는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청년기까지는 연구활동에, 중-후반기에는 국악예술 관료로서 빛나는 공을 세운 것이다.
[기산 박헌봉 선생 / 사진=기산국악당]
선생이 국악진흥에 매진한 이 시기는 광복 후 미 군정 하에서 서양음악이 온 나라를 휩쓸고 민속악을 멸시하던 일제 잔재가 여전히 팽배했던 때라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이 시기 선생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우리 국악의 명맥이 지금처럼 생생하게 보존되지 않았을 거라는 게 사계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 1977년 임종 직전까지도 후진양성 등으로 평생을 국악을 위해 헌신한 선생은 저서 '창악대강(唱樂大綱'을 통해 국악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혼을 후세에 남겼다.
"대금 소리 금세 울려퍼질 듯..."
지난 달 3일, 산청엑스포 취재여행 길에 들렀던 기산국악당. 모든 건축공사를 마치고 개관을 눈앞에 둔 국악당은 우아한 자태부터가 기산 선생의 품격을 그대로 표현한 듯했다.
9월의 뜨거운 햇살이 방금 올린 듯한 검푸른 기왓장에 반짝반짝 빛났다. 너른 뜰은 가득 맑은 햇살을 품고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갓 대패질해 싱그러운 속살을 드러낸 채 거대한 한옥을 떠받든 목재들이 우리 전통과 국악의 향기를 진하게 느끼게 해 금시라도 어디선가 대금소리가 들릴 듯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아직 개관하지 않은 전시관 내부가 엿보이길래 들어섰다. '기산관'. 선생의 영정과 유품 등이 전시돼 있고, 기념관에선 가야금과 대금, 북 등 각종 국악기와 선생과 관련한 영상물을 볼 수 있었다.
[기산관에 전시된 선생의 유품, 악기들 / 사진=위키트리]
한방을 테마로 열리는 산청엑스포에서 기산 선생의 국악혼으로 또다른 '힐링여행'의 흥취에 흠뻑 빠졌다.